문대림 전 제도개선비서관이 7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현직인 원희룡 도지사에게 패배한 지 8개월 만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문 이사장의 취임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미 지역 정가에서는 문대림 전 제도개선비서관이 JDC 이사장에 낙점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재선 도의원에 도의회 의장까지 지냈고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알려진 문 씨의 행보는 관심일 수밖에 없었다.

현직 프리미엄에도 원희룡 지사는 조심 또 조심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사정은 달랐다.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인식이 파다했다.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원희룡 지사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당내에 팽배했다. 민주당 경선은 김우남 전 국회의원과 문대림 전 비서관의 양강 구도였다. ‘모’ 아니면 ‘도’의 대결이었다. 대결은 치열했고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변수가 터져 나왔다. ‘유리의 성’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당내 경선에 뛰어들었던 박희수 예비후보는 도덕성 검증을 회피한 문대림 예비후보를 두고 자격 상실이라면서 후보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컨벤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당내 경선이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당원명부 유출 의혹도 불거졌다.지방선거 과정에서 당시 문대림 후보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도덕성 논란이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이라는 여론이 높았다. 경선 전만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승리가 예상됐다. 2018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를 넘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50%대였다. 현직인 원희룡 지사가 2018년 4월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이유도 지지부진한 보수 세력의 집결을 ‘무소속’으로 넘어보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의 손을 들어줬던 제주의 표심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지방선거마다 번번이 고비를 마셨던 더불어민주당이었다. 12년 만에 민주당 간판을 단 도지사를 당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결과는 현직인 원희룡 지사의 재선이었다. 이길 수 있었던 선거에서 졌다는 열패감에 더불어민주당은 자중지란을 겪었다. 지난 지방선거는 제주 정치사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판에 전해져 오는 말이 있다. ‘질 때 잘 져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심이 그만큼 무겁다. 승자독식이라는 현행 선거구도에서 1등에게 모든 조명이 쏟아진다. 하지만 2등에게 던진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 군주민수(君舟民水). 번번이 실패할 줄 알면서도 지역 구도를 깨겠다며 도전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도 언제나 2등이었던 그의 진심을 알아봤던 국민의 선택이었다. 선거에서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하지만 지더라도 진심을 다해 져야 한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진심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1등의 승리에 환호하기보다 2등의 패배에 눈물을 흘리는 선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정치가 보여주는 감동이고 과정의 진실이다.

◎상복(喪服)을 입어도 모자랄 판에 ‘금의환향’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 문대림 후보가 보여준 태도는 전혀 달랐다. 도덕성 검증을 흑색선전이라고 받아쳤고 해명은 꼼수로 일관했다. 도민들, 특히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내심 지지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진실한 사과를 하는 것.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소 불리하더라도 도덕성과 진실성을 무기로 삼고 도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결과론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서 패배했다. 도의회에서 다수당이 됐다고는 하나 도지사 선거 패배의 충격은 컸다.

당을 자중지란에 빠지게 만들고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던 문대림 전 비서관이었다. 그런데 3월 7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 선거 패배에 대해서 반성할 시간이 8개월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의 도덕적 기준이 낮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지방선거를 복기한 것은 문대림 이사장의 복귀가 도의적으로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현안마다 엇박자를 내는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의 분란.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방선거의 앙금이 여전하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중하도 모자란데 JDC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상복을 입어도 모자랄 판에 금의환향인 셈이다.

◎‘낙하산’ 아니라지만…

백번 양보해서 문대림 이사장에게 전문성이 있다고 치자. 도의원, 도의회의장, 청와대비서관을 지냈으니 공공기관장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에 당시 문대림 후보는 개발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국제자유도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약 발표회에서 직접 한 말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한라일보와의 인터뷰 기사의 일부다. 기자는 문대림 후보에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를 제주도로 귀속시킬 의향’에 대해서 질문한다. 문대림 후보의 답변은 이렇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관련 대목을 그대로 인용한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제주국제자유도시 7대 선도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제주도 개발을 촉진하는 개발전담 기구였다. 그리고 현재 그 역할은 다했다. 자치권의 강화, 지속가능한 개발, 개발 이익에 대한 제주도 귀속 또는 환원이라는 요구와 더불어 JDC 제주도 이전은 제주개발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기능전환으로서 필요요구가 있다. JDC는 제주도로 귀속돼야 한다.”

◎‘양아치 조직’이라는 도의회 비판…문대림 이사장 체제에도 유효할까

JDC의 역할이 다 했다면서 제주도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했던 그다.(문대림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JDC 제주 귀속 발언은 일부 언론의 오보였다고 반박했다. JDC 문제는 지난 지방선거 최대 이슈였다. 후보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만약 언론 보도가 오보였다면 문대림 후보 캠프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했어야 했다. 당시 문대림 캠프는 도덕성 검증 문제로 사소한 언론기사까지 반응했었다. 그런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으면서 지금에 와서 오보라고 말하는 걸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 지 의문이다.)

지금 JDC가 처한 법적 조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공존”을 경영철학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제주도민의 민주적 견제는 받아들이지 않는 게 JDC다. 지난 10월 제주도의회 행정사무조사에 JDC 전 김한욱 이사장과 임춘봉 권한 대행은 출석하지 않았다. 임춘봉 권한 대행의 불출석 사유는 ‘국정감사 출석 및 후속조치 협의’였다. 하지만 국정감사는 행정사무조사 출석 요구일 전날에 이미 끝났다. 제주도의회 의원들은 JDC의 태도에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날 박원철 위원장은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다. 왜 도민들이 JDC에 대해 분노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JDC가 속된말로 ‘양아치 짓’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대림 도지사 읍소하던 도의원, 문대림 이사장 상대 행정사무조사 해야

박원철 위원장의 논리라면 문대림 이사장은 ‘양아치 조직의 수장’이 된 거다. 당시 의원들 비판의 요지는 이런 거였다. 땅 값이 쌀 때 땅을 샀다가 환경영향평가, 기반 정비를 ‘합법’으로 포장해 비싸게 되파는 사실상 ‘땅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행정사무조사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행정사무조사 대상 중 많은 부분이 JDC와 연관이 되어있다. 당장 제주도의회 의원들은 지방선거에서 자당의 도지사 후보로 뛰었던 인사를 향해 JDC의 문제를 비판해야 한다. 아이러니다. 선거 때에는 문대림 도지사를 만들기 위해 도민들에게 읍소했던 도의원들이 이제는 문대림 ‘이사장’에게 JDC의 무능과 무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과연 제대로 될까. 문대림 전 비서관의 JDC 이사장 취임이 부절한 이유 중 하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호랑이 굴을 막아버려야

JDC 조직 입장에서는 문대림 이사장의 취임 카드가 든든한 뒷배를 얻은 거나 다름없다. 정권 실세에 당장 JDC라면 도끼눈을 뜨고 덤벼드는 도의원들과는 오랜 선후배 관계다. 방패도 이런 방패가 없다. 하지만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제주도민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제주지역 시민사회연대회도 문대림 이사장의 취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문대림 씨 본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심정이라고 할 지 모른다. 한국 정치사에서 호랑이를 잡겠다면서 호랑이굴에 들어간 정치인은 차고도 넘친다. 저 멀리 3당 합당부터 많은 진보 인사들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된다면서 결기에 찬 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 역정을 보면 호랑이를 잡기는커녕 고양이도 못 된 경우가 많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할 게 아니라 호랑이 굴을 막아버려야 된다.

참고로 공공기관 공시 정보에 따르면 JDC 이사장의 연봉은 1억2천만원이다. 여기에 기본 연봉의 120%의 성과금도 지급된다. 이 둘을 합치면 문대림 이사장의 연봉은 2억 5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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