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은 단순히 한국의 한 섬지역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4·3은 동아시아, 어쩌면 전세계를 지배했던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재편 과정에서 나타난 크나큰 희생이었다.

따라서 제주4·3은 제주와 한국을 넘어서 동아시아의 역사와 함께 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었던 희생자들이 이번 제3회 제주4·3평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그런 배경이다.

이번 특별상 수상에는 '응우 옌티 탄'이라는 똑같은 이름을 지닌 두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선정됐다. 한 여성은 베트남 하미마을에서, 다른 한 여성은 퐁니-퐁넛마을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이들이다.

왼쪽부터 베트남 하미마을의 응우 옌티 탄, 퐁니-퐁넛마을의 응우 옌티 탄(사진=김관모 기자)

이들은 2018년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참석했다. 이들은 여기서 당시 피해를 증언하면서 평화인권운동가로 거듭나고 있다.

◎베트남에 되물림된 한국 역사의 비극

하미마을과 퐁니-퐁넛마을은 베트남 중남부 지방에 있는 곳이다. 1968년 베트남전쟁이 발발했었을 당시, 이곳은 한국 부대의 주요 주둔지였다.

당시 베트콩(베트남 인민군)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사이에서 격전이 이뤄지고 있었을 당시, 1월(음력) 하미마을에서는 135명이 한국군에게 살해당해 가매장됐었다.

1968년 당시 베트남 퐁니-퐁넛마을에서 한국군에 희생된 마을 주민들의 모습(사진출처=U.S.Marine)

당시 11살이었던 응우 옌티 탄(하미) 씨는 어머니와 남동생, 숙모, 사촌동생 두 명을 잃었다. 또한 본인도 수류탄에 맞아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왼쪽 다리와 허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 퐁니-퐁넛마을에서도 74명의 주민들이 한국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 8살이었던 또다른 응우 옌티 탄(퐁니) 씨 또한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 이종사촌동생, 이모를 여의었다. 그 또한 왼쪽 옆구리에 총을 맞았다. 

이후 2000년 12월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하미마을에 3만 달러를 기부해 마을에 위령비를 세우기도 했다. 퐁니-퐁넛 마을에도 한국 시민단체의 성금으로 추모비가 세워졌다. 하지만 4·3과 마찬가지로 이 두 마을에는 아픔의 기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아니 이 두 곳만이 아니다. 빈빈성, 카누아성, 푸엔성 등 베트남 중부에서는 광범위한 학살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베트남정치국 전쟁범죄조사보고서>를 통해 밝혀진 한국군의 학살 희생자만 5천여 명이 넘는다. 

베트남 하미마을에 있는 위령비(사진출처=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4·3과 베트남은 닮았다"

하미마을의 응우 옌티 탄

제주4·3평화상 수상에 두 여인들은 무척 기뻐했다. 하미마을의 탄 씨는 이 소식을 접한 뒤, 국영방송에서 연락이 오고 주변으로부터 축하의 인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상이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험난한 길을 동행했던 한국친구에게, 그리고 저와 비슷한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베트남 피해자와 함께 받는 상입니다."

이들은 작년에 서울에서 시민법정을 통해 자신들이 한국에게 피해를 입었음을 한국인들에게 시인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년만에 그들은 다시 한국에 오게 됐다.

"기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시민법정이 열렸을 때 4·3 피해자 할머니와 만나서 부둥켜안았던 게 생각납니다. 그리고 다시 제주에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들은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하면서 이곳 제주가 자신들이 살던 베트남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퐁니-퐁넛마을의 탄 씨는 "4·3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받은 피해와 같았다"며 "베트남과 제주의 차이를 알 수 없을만큼 우리는 닮아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제3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 기자회견에서의 수상자들의 모습(사진=김관모 기자)


◎조사나 보상은 미흡..."과거를 닫을 수 있어도 고통과 상처는 닫을 수 없다"

"너무 어렸을 때여서 학살의 전모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옆에 있는 곳을 통해서 그 규모를 전해듣고는 했습니다."

당시 베트남전의 참상을 묻는 질문에 하미마을의 탄 씨는 이렇게 답했다. 

퐁니-퐁넛마을의 응우 옌티 탄

이들의 희생에는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가해자가 한국군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국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피해 내용을 확인하고 있지만, 그 외에 배보상 등을 진행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103명의 베트남 피해자들의 서명을 모아서 한국에 왔다. 이들은 4·3추념식 참석을 마친 뒤 다음날인 4월 4일 청와대를 방문해 이 피해자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한국 정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하미마을의 탄 씨는 "시민평화법정으로 한국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정적 한국정부에게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며 "한국의 진상규명과 공식사과, 피해복구 조치를 요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탄 씨는 "이는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 세대들에게 과거를 극복하고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는 '과거를 닫고 미래를 향하자'는 입장입니다. 피해자는 과거를 닫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고통과 상처는 닫을 수 없습니다."

한편, 이들은 4월 1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 제주4·3평화상 수상식에 참석해 평화사 수상자 현기영 작가와 함께 수상을 받는다. 이후 이들은 제주4·3 71주년 추념식에 참가한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