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제주4·3 71주년은 그야말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각명비나 묘지에서 고인의 이름과 묘비를 닦을 때조차, 추념식 내내 가슴 속에 슬픔을 꾹꾹 누르던 유족들이었다. 하지만 한 여자아이의 발표로 그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정향신 양이 4.3 추념식에서 유족사연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출처=KTV)

4·3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던 자기 할머니(김연옥, 77세)의 사연을 담담하게 읽어내려간 정향심 양(23세)의 유족사연 발표 때문이다.

정 양은 "저는 할머니에 대해서 모르는게 많았다. 머리에 '아기 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었는데 그것이 4·3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작년에서야 알았다"고 고백했다. 또한,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고, 10살까지 신발도 못 신었던 고아였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정 양에게 할머니는 그저 화사하게 잘 웃고 따뜻한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혼자서 자주 바닷가에 나가고는 했는데 그저 '아, 할머니가 바다를 참 좋아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저 바다를 좋아하는 할머니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 바다는 자기 아빠와 엄마, 오빠, 동생을 삼킨 바다였다. 제주 바다의 모습(사진=제주투데이DB)

그런데 작년에서야 정 양은 할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오빠, 동생이 4·3 폭도로 몰려서 모두 바다에 던져져서 없어졌다는 사실을... 그 때 김연옥 할머니의 나이는 고작 7살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대구와 부산, 서울을 전전긍긍해야 했다. 한강에서 빨래를 하거나 아이스께끼를 팔면서 하루하루 목구멍에 풀칠을 해야 했단다. 그러다가 18살에 김연옥 할머니는 자기 가족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제주로 내려왔다. 거기서 자기 가족들을 위한 헛묘를 지었다고 한다.

"저희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뜯겨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대요. 어릴때부터 꾹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할머니께서 그러셨어요.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가면 어멍이며 아방이 '우리 연옥아'하면서 두 팔 벌령 오는 것 닮앙'... '그래서 나도 두 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 뻔 했져'라고..."

이런 사연을 읽어가는 자기 손녀의 모습에 김연옥 할머니는 대성통곡을 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숙연해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손녀의 유족사연을 들으면서 통곡하고 있는 김연옥 할머니(사진출처=KTV)
정향신 양의 사연에 눈물 흘리는 유족들의 모습(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

그래도 정 양은 할머니가 좋다며 희망을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 자식들에게 못 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온 멋진 사람이에요. 저랑 오늘 약속 하나 해요. 울지 않고 매일매일 웃겠다고..."

이날 추념식에는 1만여명의 유족과 도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손녀와 할머니의 사연을 들으면서 숙연해지면서, 그 마음에 공감했다.

71년이 지났지만,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고 그 기억은 다음 세대들에게 전승되고 새로운 의미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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