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 나라 텐리시가 철거한 야나기모토비행장 조선인 설명판, 시민단체가 다시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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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이야기] 나라 텐리시가 철거한 야나기모토비행장 조선인 설명판, 시민단체가 다시 설치
  • 제주투데이
  • 승인 2019.04.17 17: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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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지방자치체가 부당하다고 철거한 설치물을 여러 시민단체가 그거야말로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다시 설치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일관계의 역사인식 문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일관계가 최대의 악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누구나가 인식하고 있는 지금, 일방적으로 한국 국내에서 세운 설치물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일본 오사카부에 인접해 있는 나라현(奈良縣)에서 일어난 일이니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인구 약 6만 5천명의 텐리(天理)시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천리교의 총 본산지로서 천리교의 성지이다. 종교 단체의 이름으로 시명(市名)을 바꾼 곳은 텐리시가 일본 국내에서 처음이지만 보수적인 나라현(奈良縣)에 있는 텐리시는 종교와는 달리 보수성이 강한 도시이다.

이러한 텐리시에 1943년 일본 해군에 의해 <야마토해군항공대야마토기지:大和海軍航空隊大和基地(통칭.야나기모토(柳本)비행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노동자 부족으로 인해 이 공사장에 한반도에서 강제연행된 노동자가 약 2천명에서 3천명의 조선인이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조선인 3명이 사망하여 가까운 절에 안치되었으며, 증언에 의하면 약 20명의 조선인 여성이 경상남도에서 강제연행되어 해군시설부내의 <위안소>로 보내졌다. 여성들은 해방 전후에 구출되었지만 한 사람이 유골이 되어 고향인 한국 통영시에 귀국하였다.

1991년에 나라현내에 있는 역사의 발굴, 조사를 하는 시민회 (정식명. 나라현에서의 조선인 강제연행 등에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는 회)가 발족되었다. 이 시민회에 의해 밝혀진 역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95년 8월 8일 텐리시와 텐리시교육위원회에 의해 역사의 사실을 쓴 설명판을 시내 공원에 설치했다.

역사 공부의 일환으로 설명판이 있는 공원에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역사학자와 젊은 학생들도 방문했었다. 지금도 재일외국인의 지도 지침:指針(주로 한국, 조선인 어린이 생도에 관한 지도 지침)에서는 "야나기모토비행장 건설에 관련된 다수의 조선인이 강제연행 속에 노동과 다대한 희생을 감수했다."는 <야나기모토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설명판 설치와 더불어 큰 재산이었다.

그런데 식민지 지배 역사를 직시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설명판이 2014년 4월 18일 갑자기 철거되었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이유의 메일이 텐리시에 투고된 것과 헤이트 스피치 등의 항의를 계기로 "시의 공식 견해로서 해석되는 제시를 행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는 판단 속에 일단 간판을 철거 보존하고 있다는 취지의 회답을 텐리시는 메스컴 보도에 발표하고 정당화 했다.   

설명판 철거 후, 나라현내의 시민운동단체가 "텐리.야나기모토비행장유적설명판 철거에 대해서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원상회복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재설치를 원하는 서명운동에 일본에서는 5,300여명, 한국에서도 1천여명의 서명을 갖고 왔으나 텐리시장은 "시외의 사람들은 안 만나다."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만나지 않았었다.

한국의 서명운동은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송도자 씨가 갖고 온 것인데, 위안부 피해 여성 한 사람이 통영시 출신이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로 있는 송도자 씨와 연락을 취할 수 있어서 서명한 것이었다.

텐리시의 강한 거절에 대해서 '철거에 대해서 생각하는 모임'에서는 텐리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충청남도 서산 시민에게도 연락을 해서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2016년 10월 25일 서산시의 시민운동단체 관계자와 만나서 텐리시의 상황을 설명하여 새로운 설명판 동시 설치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서산시와 텐리시가 자매결연을 맺게된 것은 조선 4대 세종대왕 시대의 안견 화가가 서산 출신으로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그림이 텐리대학교도서관에 소속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1년 11월 7일 자매결연을 맺고 서산시와 텐리시는 연수차 서로 직원을 파견하고 있었다.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황 속에 2019년 4월 13일 새로운 <텐리야나기모토비행장유적설명판 일.한 동시 설치, 집회제막식>이 있었다. '철거에 대해서 생각하는 모임'에는 13개의 단체가 가입했다. 제막식에 앞서 텐리시 단바이치(丹波市)공민관에서 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카와세 슌지(川瀬 俊治) 사무국장으로부터 경과보고와 '집회어필문' 낭독을 하고 채택했다. 또 이 자리에는 서산에서 온 인권단체 김호철 씨의 인사말도 있었다.

경과보고와 '집회어필문' 낭독하고 있는 카와세 슌지 사무국장

제막식은 야나기모토비행장이 있었던 현지에 이동해서 있었다. 설명판은 개인소유의 논밭의 가장자리에 세워졌는데, 필자는 설명판의 한국어 번역자로서 색동천으로 가려진 설명판의 제막식 끈을 당기는데도 당사자로서 참가했다.

제막식 후에 통영에서 온 송도자 씨의 인사말과 타카노 마사유키(高野 眞幸) 씨의 설명판에 대한 설명과 안내로 비행장 주변의 필드워크가 있었다. 비행장유적지 주변을 돌아보는 필드워크에 참가한 필자는 제주 알뜨르비행장이 떠올랐다.

알뜨르비행장에는 몇개의 비행기 격납고 등도 있지만 야나기모토비행장은 농경지로 변해서 방공호 두개와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모를 정도의 유적 밖에 없었다. 식민지시대에 한.일역사가 점철된 양국의 비행장을 탐방한 필자의 심정은 맑은 봄 날씨와는 달리 착잡했다. 

설명판 집회와 제막식에는 관할 지역으로서 민단 나라현본부 김현성 감찰위원장, 나라현조총련 소철진 위원장과 분회장, 오사카에서는 민단 오사카본부 박청 부단장, 민단 오사카 야오지부 허옥희 부단장, 필자는 민단 이쿠노남지부 지단장으로서가 아니라 취재를 겸해 참가했다. 주최자 측에서는 민단, 조총련 재일민족 두 단체가 같이 참가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자매도시 충남 서산시에 세워지는 설명판은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양지교회 안에 세워지는데 6월에 일본 관계자들이 갈 수 있는 시기에 제막식을 갖는다. 꼬일대로 꼬여 가는 한.일정치와는 달리 양국의 민간교류로서 역사인식의 공유성을 갖고 양국에 똑 같은 설명판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의 주도하에 보수적인 텐리시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더욱 그렇다.

설명판 내용을 전달하는 타카노 마사유키씨

한.일양국어로 이번에 새로 세운 설명판 한국어 전문을 소개한다.

                '야마토해군항공대 야마토기지(통칭. 야나기모토비행장)에 관해서'
"1943년 가을 무렵부터 해군(해군시설부)에 의해 비행장의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건설을 맡은 회사는 오오바야시구미(大林組)였습니다. 공사는 강을 바꾸고 신사, 절을 이전, 농지 폐기를 수반하는 것으로 켄(현)내의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대학생 등의 노동봉사와 조선인 노동자도 포함되어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행장 용지는 300핵터. 노동자가 부족하여 조선에서 조선인을 강제연행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는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수는 2,000명이나 3,000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제연행된 남성은 전쟁 후에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4명이 있었다. 어쨌든 한국인이 많았다.'(宋將用씨. 충청남도 논산)
'화물열차에 실려 야나기모토에 도착했다. 귀국할 때는 일본인이 인솔했다.'(嚴占秀씨. 충청남도 공주)

증언에 따르면, 약 20명의 조선인 여성이 경상남도에서 강제연행되어 해군사령부내의 <위안소>로 보내졌습니다. 여성들은 (해방)전후에 구출되었지만 한 사람이 현재의 한국 통영시의 고향으로 유골이 되어 귀국하였습니다. 또한 강제연행된 金海永씨, 金哲九씨, 張廣先씨가 사망하여 근처 절에 안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장에 미군에 의한 공격으로 조선인 여성, 동원열차 사고로 일본인 초등학생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밝혀서 바르게 후세에 전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희망하고 원하는 한.일양국의 시민들이(자매도시 텐리시와 한국 충청남도 서산시) 이와 같이 설명판을 설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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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019-04-18 09:51:15
그래도 일본에 양심적인 분들이 계셔서 이런 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 가닥 희망을 가져 봅니다. 올바른 인권을 생각하며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한일관계는 좋아질 것이고 세계평화도 앞당겨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