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 30여년 숙원사업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너무 뜨거워 받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인 것이다.

제주 제2공항(이하 제2공항)이야기다.

정부는 1990년 4월 ‘공항 인프라 확충 제주 권 신 국제공항 개발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 당시 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항공수요 증가 및 기존공항 확장의 한계성’ 등을 이유로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2005년 12월, ‘제3차 공항개발 중장기(2006~2010)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국토부는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 용역’을 실시했고 2015년 11월 10일 성산읍 일대를 ‘최종 입지’로 발표했다.

‘최종 입지’ 발표 후 제2공항 문제는 제주의 가장 뜨거운 핫 이슈가 되었다.

찬-반 갈등이 첨예했다. 지역 주민 사이의 갈등과 분열도 심화됐다.

제2공항 건설 자체의 찬․반에서부터 입지 선정의 절차적 문제와 타당성 여부 등 논란의 내용은 복잡했고 갈등 고리는 꼬이기만 했다.

논란은 입지 발표 후 3년5개월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국토부는 ‘제주 제2공항 입지 선정 타당성 재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마쳤다.

이를 통해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제2공항 개발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 했다.

오는 6월 목표로 공항의 규모 배치, 운영계획, 재원조달 방안, 환경관리 계획 및 그밖에 공항 개발에 필요한 사항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반대의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고 불신의 벽은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 문제 해결의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토부, 성산읍 반대 대책 위원회가 제2공항 갈등 문제 해법으로 ‘공론화’를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제 는 더욱 꼬이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9일 제주도의회 도정 질문 답변에서 “제2공항 공론조사는 제주도가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법적 근거가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원지사는 ‘공론화 트라우마’를 앓고 있을 터였다. 녹지국제병원 공론화 결정 처리과정에서 심한 내상(內傷)을 입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은 18일 도의회 임시회 6차 본회의 폐회사를 통해 ‘제2공항 문제에 대한 도민 공론조사 실시’를 제안했다.

원지사를 향해서다. “도민 주권을 제일의 목적으로 하는 의회 의장으로서 도민 공론조사를 실시해 도민의 뜻을 중앙정부에 전달 할 수 있도록 도지사에게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김의장은 “지난 2월 27일 제2공항 사업 주관부서인 국토교통부가 ‘당정 협의 결과를 통해 제주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한다‘는 내용을 발표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공론조사에 필요한 절차적 기반 및 명분은 충분한 상황”이라는 주장이었다.

또 ‘공론조사란 결국 도민의 자기 결정권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지방자치의 의미이자 목적의 주요 수단 중 하나’, 도민 주권의 민주주의 실현에 주요한 내용‘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공론조사의 함정‘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공론조사’가 뜨거운 정책 의제에 대한 책임회피용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책 사업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결정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공론조사에 참여하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얄팍한 정책 추진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제2공항 건설’은 국책사업이다. 국토부가 주체다. 그렇다면 (공론조사의 함정에 관계없이) ‘공론조사’는 사업주체인 국토부가 담당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당정 협의에 의한 ‘공론조사’를 말하면서도 그 일을 사실상 제주도에 떠밀어버리고 있다.

도의회 김의장과 함께 짝짜꿍 ‘제2공항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공론조사‘는 만능일 수가 없다.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여론조사의 한 방법일 뿐이다.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인 것이다.

그래서 국가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국가 정책을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고 추진하겠다는 것은 여간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의기관의 수장인 도의회 김의장이 ‘공론조사 실시’를 촉구한 것은 어의가 없다. 귀를 의심케 했다.

제2공항 갈등의 시발은 3년5개월 전이었다. 도의회 의장은 지금까지 ‘제2공항 갈등 해결’을 위해 어디서 무었을 했는가.

여태껏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다가 당정청의 ‘공론화 합의’에 올라타 생뚱맞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썩 보기가 좋지 않다.

스스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도의회는 어떤 조직인가. 도민의 대의기구다. 도민이 뽑은 도의원들로 구성된 집합체다. 도민의 뜻에 따라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조직이다.

도민의 가려운 곳, 아픈 곳을 헤아려 도민의 뜻과 목소리를 의정 활동에 반영하는 의무를 지닌다.

이것이 대의기관인 도의회의 역할이다. 대의 민주주의 본영이기도 하다.

‘공론조사’는 그 자체로서 헌법이 정의하는 대의제를 대신 할 수 없다. 아무런 실정법적 근거가 없는 수단이다.

여론조사로 정책 결정을 한다면 도의원과 도의회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제2공항 공론조사’ 문제는 사실상, 그리고 마땅히 도의회의 몫일 수밖에 없다.

도의회가 도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조직이라면 그러하다.

도의회가 ‘공론조사’를 제주도 당국에 떠넘기지 말아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회 김의장의 ‘제2공항 공론조사’ 촉구는 (비약하자면) 도민 대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도의회의 기능이나 역할을 약화시키는 잘못된 발언이다. 발언의 진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할 일이다.

따라서 ‘공론조사를 도민의 자기 결정권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지방자치의 의미‘라는 김의장의 주장은 견강부회(牽强附會)다. 발언의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여론조사(공론조사)’가 어떻게 지방자치의 의미이며 도민 주권민주주의 실현에 주요한 내용일 수 있는가. 참고 사항일 수는 있다.

‘지방자치’나 ‘도민주권 민주주의’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여론조사 정치’의 위험성과 ‘여론 포퓰리즘’의 속내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물론 일정부분 ‘공론조사’의 순기능도 있을 것이다. 숙의(熟議)형 토론에 의한 여론조사가 일반 여론조사에 비해 신뢰성을 더 확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이 의회의 결정보다 낫다”고 판단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근본적으로 민주정치, 의회정치의 근간을 흔들어 버릴 수 있어서 그렇다.

가정을 전제로, ‘제2공항 공론화 결정’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공항 건설 반대 결정’이 나온다면 정부는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국책사업인 ‘제2공항 건설 사업’을 백지화 할 것인가.

‘제2공항 건설’을 없었던 것으로 한다면, 그동안의 논란은 불식되고 갈등과 분열은 봉합되고 해결될 것인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적 입장에서 분명히 말하자면 ‘제2공항 공론화 결정’은 더 크고 복잡한 새로운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제주도민들은 ‘녹지국제병원(영리병원) 공론화 결정’이후에 드러났던 심각한 새로운 갈등과 분열구조를 경험 한 바 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던 제주도의 행정착오도 지켜봤다. 문제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정부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막고 타협안을 도출하기 위해 도입했던 ‘공론화’ 과정이 되레 갈등을 증폭시키고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비용 부담 등 역효과를 낳았던 경우는 많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관련’, ‘대입제도 개선 관련’ 등도 찬․반이 명확하고 첨예했던 이슈였다.

공론화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적 대결 구도만 확대 재생산 됐던 사례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일이다.

‘제2공항 문제’는 국토부가 전면에 나서서 이끌고 제주도와 도의회가 적극 뒤에서 미는 ‘삼각 구도’가 해결의 정답이다.

서로 ‘장대밀기‘나 ’폭탄 돌리기 게임’으로의 문제 해결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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