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 개정안 상정 보류...민주주의 기본도 무시

제주도보전지역 관리조례 개정안 상정이 무산됐다. 조례 개정안 발의부터 거센 논란이 있었던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조례 제·개정은 지방의원의 권한 중 하나다. 지방 의원이 제출한 조례 제·개정안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조례 개정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입법권 침해다. 이번 제주도의회의 조례 개정안 상정 보류는 의회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한다면 반대 토론을 하면 그만이다.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은 건 민주주의 기본을 저버린 행위다.

의원은 표결로 말한다. 조례 제개정은 선출직 의원에게 도민이 부여한 권한이다. 이미 김태석 의장은 본회의 석상에서 도민의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공론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조례 개정안에 대해서 법리적 해석이 다를 수는 있다. 이미 제주도가 재의 요구하겠다고 했다. 원희룡 도지사도 관련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그건 제주도의 입장이다. 제주도의회가 제주도의 거수기가 아니라면 조례 개정안을 두고 열띤 찬반 토론을 했어야 한다. 전체 의원 간담회라는 꼼수로 이번 논란을 피하려고 한 것 자체가 문제다.

의원 간담회, 책임 회피용 꼼수

홍명환 의원이 발의한 조례 개정안의 핵심은 보전지역 1등급 지역에 건설이 가능한 공공시설의 범위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절대보전지역, 관리보전지역은 제주 환경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다. 관련 법과 조례에 따라 개발 행위는 엄격히 제한되고 개발사업이 필요한 경우에도 그 형태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관리보전지역 1등급 지역에는 원칙적으로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다만 공공시설의 경우, 개발사업의 공공적 목적을 감안해 개발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홍명환 의원의 조례안에는 공공시설에서 항만과 공항을 빼고, 만약 관리보전 1등급 지역을 행정이 해제하려고 할 경우에는 도의회 동의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개정안, 도의회 견제 권한 강화를 위한 제도 마련이 핵심

항만과 공항. 결국 따져보면 이번 조례 개정안 발의부터 상정보류까지, 공항 두 글자가 거센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조례 개정안은 개발 행위와 관련한 도의회의 동의 절차를 명문화하면서 도의회의 견제 감시 권한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제주도의회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각종 개발행위 과정에서 그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제2공항과 관련한 논란은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있다. 공공시설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공공시설이라고 하더라도 관리보전지역의 생태 환경적 가치를 훼손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두자는 거다.

‘닥치고 공항’ 제주도는 폭주하는데…

조례 개정안이 발의되자마자 이런 취지는 사라지고 오로지 제2공항을 막기 위한 ‘핀셋 조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비난의 진원지는 제주도였다. 조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재의 요구’를 하겠다는 발언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접수도 되지 않은 개정안에 대한 반응치고는 ‘이례적’이었다. 그 특별한 반응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제2공항’. 한 때 유행했던 ‘나꼼수’식 표현을 빌리자면 ‘닥치고 공항’이 지금 제주도의 입장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명운’을 걸겠다고 하고,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제2공항 반대 단체들을 비판하고 있다. 지사가 이러니 공무원들은 알아서 심기를 살피고 있다. 공식적인 법제처 유권 해석도 나오기 전에 상위법에 위배된다, 어차피 대법원에 가면 진다는 등의 발언들이 언론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마침 제2공항 건설 찬성 단체들은 조례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의원실까지 찾아가 목청을 높였다.

궁색한 상정보류 이유

이런 상황에서 조례 개정안은 가까스로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21일 환경도시위원회 안건심사에서 격론 끝에 찬성 4, 반대 3으로 개정안은 통과됐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생겼다. 김태석 의장이 본회의 표결을 한 시간 앞둔 오후 1시 전체 의원 간담회를 열었다. 결론은 격론 끝에 의장 직권으로 상정 보류. 제주도의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한 조례 개정안이 본회의 상정 보류 된 사례는 2013년 한진 지하수 증산 동의안에 이어서 이번이 두 번째다. 2013년 상정보류는 지하수 사유화를 막겠다는 명분이었다. 당시 박희수 의장의 결단에 도민사회는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 상정 보류는 그때와 전혀 다르다.

일단 상정 보류 명분이 궁색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태석 의장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내부갈등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이번 상정보류의 이유는 의원 간의 갈등, 좁혀보자면 당내 갈등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제2공항과 관련, 찬반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곤혹스러운 입장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상정 보류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이번 도의회의 상정 보류 결정은 조례 개정안에 대한 법리적 해석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판단이다. ‘급한 소나기는 피해보자’는 꼼수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의원의 정치적 소신이 같을 수는 없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적 소신을 놓고 찬반 토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입으로만 노무현 정신 계승하자는 민주당 제주도당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1990년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이 3당 합당에 반대하며 한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에 하나가 토론이라는 점을 온 몸으로 보여준 정치인이다.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이라고 해서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이 같을 수는 없다. 다르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제2공항 문제도 그렇다. ‘제2공항 건설이 제주의 백년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제주 환경 수용능력을 감안하지 않는 제2공항은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제2공항 문제의 핵심은 도민의 자기결정권이다. 제2공항 부지가 성산으로 결정됐던 2015년 11월. 국토부의 일방적 부지 선정이 지금 제2공항 갈등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김태석 의장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도의회에 있다. 조례 개정안은 이런 자기결정권을 도의회가 합법적으로 가져보자는 제안이었다. 이런 제안에 대해서 의회는 의회적 실천을 해야 한다. 상임위에서 거센 토론을 하고 본회의에서 찬반 토론을 했어야 한다. 하루 안에 결정을 못 내리면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끝장 토론’을 벌였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당의 ‘필리버스터’가 국민들에게 줬던 감동은 의회는,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의원들 사이의 이견, 갈등”.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자기 입으로 내뱉었던 의장이 할 말은 아니다.

말로만 훈계... 김태석 의장 자격 없어

도민의 자기결정권은 본회의 의장석에 앉아서 근엄하게 내려다보면서 했던 연설만으로는 부족하다. 합당한 실천을 했어야 한다. 본회의에 상정하고 찬반 토론을 하고 표결을 해서 가부간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 찬성이든 반대든 그에 따른 비판과 질책은 정치인이 마땅히 감내해야할 될 책임이다. 당장의 책임을 회피하자고 전체 의원간담회를 열어서 상정 보류를 결정한 김태석 의장은 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정치적 책임은 지기 싫고 자리는 욕심이 나고, 만약 이번 상정보류 결정에 이런 자기 욕심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제2공항 문제가 제주도 최대 현안이다. 그런데도 언제 한번 제주도의회에서 이 문제를 두고 토론을 해봤는가. 전문가 몇 명 불러놓고 점잖게 훈수두지 말고 찬성이 됐든 반대가 됐든 의원들 간에 토론의 장이라도 마련해봤는가.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면서 노무현 정신 운운하는 그 입이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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