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야, 우리 귤나무에 물 줘야 하는데, 물을 줘야해.

광진아, 내가 더이상 부의장직에 있으면 안될 것 같다. 전해다오.

광진아, 그리고 말야. 송악산 개발을 중단해야 해. 반대하는 이유는...

반대하는 이유는...

허창옥 부의장의 영결식에 마련된 제단의 모습(사진=김관모 기자)

허창옥 제주도의회 부의장의 영결식이 28일 오전 9시 제주도의회 앞에서 거행됐다. 

그는 마지막까지 과수원 귤나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의회를 걱정했으며, 제주도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허 부의장은 암투병을 하는 도중에 온전히 정신을 가누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상황도 많았다고...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왔을 말들이었을 거다. 하지만 평생의 마지막 순간, 정신을 차렸던 찰나의 순간 그가 던진 말이었기에 그 가치가 남다르다.

이날 도의회에는 제주도의 주요 인사들을 비롯해 많은 농민들이 자리를 메웠다. 

제주도의회 앞에서 허창옥 부의장의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사진제공=제주도의회)

허 부의장이 가졌던 위치 때문일까. 농민회와 도의회는 서로 장례식에 앞장서겠다고 나섰다. 

도의회는 도의회장(葬)으로 모시고 싶었고, 농민회는 농민회장(葬)으로 모시고 싶어했다.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지만, 허 부의장이 어떤 길을 걸어온 인물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기도 하다.

허 부의장의 인생은 투쟁과 열정의 연속이었다.

20대에는 송악산 공군기지 반대투쟁에 앞장섰으며, 제주지역의 초창기 농민운동 조직화에 앞장서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의장과 부의장을 역임했던 인물. 그리고 2012년부터는 제주도의원으로 당선돼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2014년 한중FTA를 앞뒀을 때는 감귤 등 제주농산물 11개 품목의 양허 제외를 지키기 위해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최근 그가 우리에게 기억에 남겼던 것은 제주도 내 대규모사업장의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 창설이다. 

지난해 9월 18일 허 부의장은 신화워터파크의 오수 역류 사태를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 설립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요구안은 도의원들의 반대와 기권으로 무산될 뻔했다. 하지만, 도민들이 한마음으로 도의원들을 비판하고 나섰고, 여론에 밀려 도의회는 특별위원회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허창옥 부의장의 제단에 헌화하고 있는 (오른쪽부터)김태석 의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위성곤 국회의원(사진제공=제주도의회)
허창옥 부의장의 제단에 선 유족들의 모습(사진제공=제주도의회)

그리고 말년에 허 부의장은 송악산 개발사업과 JDC의 첨단농식품단지사업을 크게 우려했다. 이 사업들이 제주도민과 농업인의 미래를 뒤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숙제는 뒤에 남겨진 이들에게 남겨졌다. 

이날 조사(弔辭)에서 김태석 도의회 의장은 "이 땅의 농업과 농민의 미래를 노심초사하시던 그 마음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만, 님의 몫까지 다 해내겠다는 각오를 가슴에  담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남은 우리가 생전에 늘 희구하셨던 제주농업,  그리고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며 "비록 영혼은 하늘에 계시더라도 항상 제주의 농민과 함께하시면서 제주를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달라"고 넋을 향해 요청했다.

허 부의장을 애도하는 목소리와 애도가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유가족들은 덤덤히 행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도의회에 마련된 대형스크린에서 고인의 살아 생전의 모습이 나오자, 그들은 오열을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스크린에 나타난 허 부의장의 표정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창옥 부의장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자 오열하고 있는 부인 김옥임 여사와 아들의 모습(사진=김관모 기자)

헌화와 분향이 끝나고 운구차가 도의회를 떠나는 동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를 끝내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너무도 컸다.

그가 생전 즐겨불렀던 농민가를 힘차게 불렀지만, 애석함은 더했다.

허창옥 부의장을 보내는 아침은 티없이 너무도, 너무도 맑았다.

제주도의회 영결식장을 빠져나가는 허창옥 부의장의 운구차(사진제공=제주도의회)
허창옥 의장의 운구차를 보내면서 일부 도민들이 송악산 개발 반대의 유지를 잇겠다는 대자보를 펴보이고 있다.(사진=김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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