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유엔본부에서 제주4·3을 주제로 하는 인권 심포지엄은 처음으로 성사됐다. 

강우일 한국천주교 제주교구장(오른쪽)이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4.3인권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UN외교관과 38개 국내외 협력단체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제주4·3 인권 심포지엄'이 제주특별자치도와 강창일 국회의원, 제주4·3평화재단 주관, 주UN대한민국대표부 주최로 20일 오후 3시(현지시각)부터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4·3 과정에서 일어난 과잉진압과 학살 사건에 대해 당시 미군정이 책임이 있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4·3은 미군정과 한국정부가 저지른 범죄...미국 입장 밝혀야"

주최측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조태열 대사는 환영사를 통해 “이 심포지엄은 제주4·3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아직도 전세계에서 학살과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이 사건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면서 “제주4·3의 교훈이 이와같은 비극의 재발을 예방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며 세계 방방곡곡에서 평화와 인권을 증진하기 소망한다”고 말했다. 

협력단체의 대표로 축사에 나선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CUSA) 짐 윙클러 회장은 “4·3이라는 참극은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학살의 하나이나 제주도민들이 이 끔찍한 비극을 이겨내고 4·3을 평화, 인권, 화해, 공존의 모델로 만들어 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4.3인권심포지엄의 모습(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이날 심포지엄의 기조발표에는 한국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를 비롯해,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 미 국무부 동북아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 등이 나섰다.

먼저 강 주교는 "1948년 파리에서 열린 UN총회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했지만 같은 시기 제주도에서는 경찰과 군대가 민간인을 대량학살하는 일이 있었다"며 "오늘 심포지엄은 희생자와 유가족이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 희생의 역사를 국제사회에 처음 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주교는 "어떤 이유로든 이런 비인간적인 재앙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학살당한 희생자의 한 맺힌 절규를 전하고 미군정과 한국정부의 부당행위를 국제사회에 명명백백 밝혀 궁극적으로 정의와 책임, 화해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강 주교는 "4·3은 미국과 한국 정부가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며 "미국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해주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지식인들도 미국 책임에 동감..."북핵문제 해결도 함께 해결 위해 폭넓은 합의해야"

이어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제주4·3과 미국의 책임’이라는 발표를 통해 “미국인 대다수가 2차대전 종전 후의 한국상황과 무관한 방관자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일제에 부역했던 한국인들을 지원하여 3년간 한국 군부와 군경을 이끌었다”면서 “결국 당시 제주도민 인구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명 가량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실질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존 메릴 박사는 “한국은 1948년 8월까지 미군정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미국 역시 상당한 책임을 져야한다 “미군은 결과에만 주목하느라 종종 지역 치안부대의 폭행을 못 본 체했고 진압작전은 악랄하고 무자비하게 전개되었다”고 미국의 책임에 뜻을 같이 했다.

그러면서도 존 메릴 박사는 남로당과 박헌영의 책임도 따져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1940년대 후반 경쟁 관계에 있던 두 체제가 형성한 한반도의 역학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던 냉전 갈등과 결합됐었다"며 "제주4·3은 이런 사태가 언제든지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재래식 무기와 더불어 핵무기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까지 높아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존 메릴 박사는 "미국의 외교정책 엘리트들이 항상 역사적으로 완전한 이해를 가지고 타국을 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더욱 폭넓은 합의가 이뤄져야만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수립하고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따른 위협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UN 제주4.3 인권 심포지엄에서 전세계 대표단들이 기조발제를 듣고 있다.(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살해된 제주 1만5천명이 게릴라부대?...오보 이어졌단 1948년의 외신들

노근리사건을 집중 보도한 공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찰스 핸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은 4·3 당시 미국 양대 언론인 AP통신과 뉴욕타임스의 보도태도를 분석해서 발표했다.

찰스 핸리 전 부국장에 따르면, 1948년 당시 제주 현지를 방문한 취재기자는 전무했으며, AP통신은 사망자 수가 1만5천명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중무장한 게릴라부대 1만5천명을 모두 살해했다고 보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들 언론의 제주4·3에 대한 보도는 한 단락 내지는 길어야 예닐곱 단락에 불과했고, 정보의 출처는 서울에 주둔 중인 미 육군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면서 “철저하게 냉전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찰스 핸리 기자는 “두 언론은 미군의 제주도 주둔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사의 내용은 미군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이는 무엇보다도 브라운 대령, 로버츠 장군, 딘 장군의 관리감독 역할을 간과한 보도였다”며 "역사의 초고가 현실과 맞먹는 분량의 허구를 담은 기록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는 4·3당시 북촌학살사건의 유족 대표로 고완순 할머니가 나와서 증언을 했다. 고 할머니는 일가족 6명의 피해 상황을 증언한 뒤, “유엔의 설립 취지에 맞게 미국이 4·3의 진실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심포지엄 이후 오후 6시30분부터는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대강당에서 리셉션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뉴욕주 출신으로 연방 하원의원 23선의 최다 기록을 세운 전설같은 인물인 찰스 랭글 전 의원과 한미 외교의 가교역할을 해온 코리아 소사이어티 토마스 번 회장 등이 참석, 축사를 해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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