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은 헝클어졌고 변명은 구차스러웠다. 거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방자한 위세는 그들의 완장이나 다름없다.

제 역할을 남에게 떠넘기는 교묘한 직무유기, 공무원 위에 군림하는 ‘갑질’ 행태까지, 최근 도의회 의원들을 보는 일반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교과서 적 일반론이지만 도의회는 도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다.

도민의 의견을 가감 없이 수렴하여 도정에 반영하는 역할이다. 공공이익을 위해 도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주민대표로서의 기능, 자치입법 기능, 행정 감시 기능은 도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이자 권한이다. 도민의 명령인 것이다.

그런데 도민의 눈에는 이러한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일주일 후면 제11대 제주도의회가 출범한지 1주년이 된다. 20일에는 제주도의회 2019년 상반기 의정활동을 마무리했다.

이때 도의회는 무엇을 했나. 여기서 도의회의 소신 없고 책임 없는 의사 결정 행태가 노출됐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 부동산에 대한 중과세 감면 연장 조례 개정안 의결’은 줏대 없는 오락가락 의사 결정의 결정판이었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2010년부터 시행했다.

제주도지사로부터 시행승인을 받는 10만 평방미터 이상 대규모 관광사업장 내 5억 원 이상의 체류시설을 매입한 후 5년 동안 보유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국세(법인세․소득세)와 지방세, 각종 부담금 등을 면제 또는 감면해주고 있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 부동산에 대한 중과세 유예도 이러한 혜택의 일환이었다.

부동산 중과세 감면 유예는 사실상 지난해 12월 30일로 유예기간이 끝난 조례였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관련 부동산에 대한 중과세를 부과했어야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제주도는 중과세 유예기간이 끝난 지 반년이 넘은 시점에서 ‘투자 이민제 부동산 중과세 감면 연장 조례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유예 기간을 ‘2021년 12월 31일까지 3년간 연장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투자 이민자들에 대한 ‘신뢰 보호’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신뢰 보호’라니,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지난 4월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이하 행자위)는 관련 조례에 대해 심사했었다.

여기서 행자위는 ‘중과세 감면 특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해당 개정 조례안에 대해 심사 보류 결정을 했다.

부동산 투기 조장 및 국내 납세자들과의 형평성, 관련 규정 등의 문제를 들어 ‘불가론’을 폈던 것이다.

사실상의 ‘부동산 투자 이민제 중과세 감면 불가’ 결론이었다.

이처럼 ‘불가론’을 쏟아내며 심사를 보류했던 행자위는 지난 13일, “이번에는 동의해 주고 3년 후에는 없애기로 했다”며 관련 조례안을 전격 의결 했다.

‘손바닥 뒤집기’ 식이었다. 줏대도 없고 소신도 없고 책임감까지 내 팽개쳐버린 뒤죽박죽의 의사 결정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투자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감면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2개월 전 ‘불가론’이 두 달도 안 돼 ‘불가피론’으로 입장이 전격적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본회의에서도 큰 논란이 없이 관련 조례는 표결을 거쳐 통과시켰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고 해괴한 입장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역겨운 표리부동(表裏不同)이었다.

누가 이들을 도민의 대의기관으로 신뢰 할 수 있을 것인가. 공익을 위한 대변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부동산 투자 이민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부정적 견해가 다수였다.

난 개발로 인해 제주지역의 생태 환경적 또는 인문 환경적 자원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불러 임대료 부담 등으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역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사실상 제주에서는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여기서 이익은 누가 봤나. 부동산 보유자, 개발업자, 그리고 재정 수입에 올라탄 제주 행정이 수혜자였다.

피해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며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과 건물과 상가 등을 임차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다수 서민 일 수밖에 없다.

제주의 소중한 자연 생태환경이 파괴되거나 훼손되고 서민들의 삶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피폐해 지고 있다.

그래서 진작부터 ‘부동산 투자 이민제’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 이민제’라는 달갑지 않은 비판이 거세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 부동산에 대한 중과세 감면은 투자 유치를 빙자해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도의회는 이를 외면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다. 이번 도의회 부동산 중과세 감면 유예 의결을 미루어 보면 도의회의 앞날이 걱정이 된다.

도민 대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야바위 협잡’의 의정활동은 도민에 대한 배신이며 불충이다.

김태석 도의장의 지난 20일 제373회 정례회 폐회사도 그냥 지나 칠 수는 없다.

폐회사에서 김의장은 제2공항 갈등 상황의 원인을 제주도정의 ‘공론화 과정 생략’으로 정리 했다.

갈등 해결의 해법을 ‘공론화’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개발을 정당화 하는데 악용되는 전문가들의 식견보다는 도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탁월함과 지혜에서 답을 구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과 ‘공론적 여론조사’에 대한 무한 신뢰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공론화’는 여론조사의 한 기법이다. 문제해결의 만능 키일 수는 없다.

국가의 주요 정책 추진을 ‘공론화(여론조사)’에만 의존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그것은 대의기관의 수장임을 망각한 처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도의회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공론화’로 정책결정을 하겠다면 도의회는 해산해야 마땅하다. 도의회 무용론이 제기 될 수도 있을 터이다.

김의장의 ‘공론화 주장’을 긍정한다고 해도 그렇다. 대의기관은 도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론화’의 담당기관은 도가 아닌 도민의견 집약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제주도의회여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기에 김의장의 제주도정을 향한 ‘공론화’ 촉구는 도의회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교묘하게 도정으로 돌리려는 꼼수다. 직무유기고 책임 회피이기도 하다.

대중영합주의 적인 ‘공론화 담론’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공론화 결과’ 이후의 혼돈과 새로운 갈등 유발 등 후폭풍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

도민들이 도의회에 바라는 것은 새로운 갈등 유발이 아니다.

낮은 자세로 도민에게 다가서는 진실성을 보고 싶은 것이다. 도민의 무엇을 원하는 지를 헤아려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겸손한 심부름꾼을 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의원들이 도민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비판적 시각이 처처에서 번득이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머리를 조아리며 한 표를 구걸하다가 당선 된 후에는 목에 심줄을 세우고 거들먹 거린다”는 표현도 서슴 없다.

“공무원들에게는 호통이나 치며 아랫사람 다루듯 한다”는 공무원 사회의 비판은 시니컬하다.

오죽해야 서귀포시 공무원 노동조합이 지난해 10월, 성명을 내고 “일 부 도의원들의 집행부에 대한 무시와, 소위 ‘갑질’이 극에 달했다”는 주장까지 했었겠는가.

“공무원들을 인격적으로 깔아뭉개도록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기도 했다.

제주시 지역에서도 최근 사회적으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공조직의 한 인사가 아홉 살 연하의 도의원으로부터 인간적 수모와 무시를 당하고 공직을 떠났다는 소문도 나돌았었다.

이러한 주장들은 빗나간 도의원들에 대한 도민 적 경고음이다.

도의원들은 도민의 심부름꾼이지 상전이 아니다. 도민이나 공무원 위에 군림하여 호통이나 치는 권력 기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원들의 일탈에 대한 구설수를 향후의정활동의 교훈으로 여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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