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원희룡 제주지사의 유튜브 영상 갈무리)

원희룡 제주지사가 김태석 제주도의장과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을 겨냥해 묵직한 펀치를 날렸다. 원 지사는 지난 19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민주당 국회의원, 도의원, 제주도의회를 다그쳤다. 원 지사는 김현미 국토부장관의 말을 인용하며 당정협의 결과에 따라 제2공항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니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제2공항이 추진된다면서 도민공론조사의 가능성도 일축했다.

원 지사는 마치 손바닥 위에 강창일·오영훈·위성곤 국회의원과 김태석 제주도의장을 올려놓고 내려다보는 것처럼 ‘말걸음’이 가벼웠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보다 민주당의 속내를 더욱 분명하게 아는 듯 보인다. 김태석 의장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민주당의 소속 정치인으로서 행해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모습. 민주당 소속 제주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원희룡 지사, 사실상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제2공항 가이드라인 제시

제주도의회는 갈등해결을 위한 도민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제2공항에 대한 갈등해결 방안 마련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김태석 의장은 현재도 제2공항 도민공론조사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지난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김 의장은 원 지사가 지방선거 당시 제주지사 후보로서 공론조사 얘기를 먼저 꺼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장의 이 같은 발언에 큰 무게가 실리지 않는 모습이다. 공항 등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제주도의회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하 보전지역관리 조례 개정안)’을 김 의장이 직권으로 상정 보류했기 때문이다.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가 이뤄진 뒤, 제2공항에 대한 개입을 할 수 없는 ‘식물 조례 개정안’을 상정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도민들은 김 의장과 제주도의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보전지역관리 조례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3275명의 서명을 모아 제주도의회에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안건 통과는 물론이거니와 언제 상정할지, 상정하기는 할지조차 미지수다. 이에 조례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원 지사에게 도민 공론조사를 촉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압박 수단을 김 의장과 제주도의회가 스스로 포기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원 지사의 가볍고 현란한 스텝. 제주도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수를 모두 읽고 있다는 표정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김태석 의장이 보전지역 관리 조례 개정안을 기본계획 고시 전에는 상정하지 못할 것이고, 상정한다한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통과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쩔쩔매며 울상짓고 있는 중국 바둑기사 커제를 앞에 둔 알파고처럼 여유가 있다. 급이 한참 떨어지는 하수를 상대하는 모습이다.

지난 18일 김현미 장관과의 면담이 원 지사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원 지사는 그날 김현미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장관도 민주당이고 제주도의회, 제주 국회의원들 모두 민주당인데 당정협의의 결과에 따라서 진행된 현재의 검토위원회 결과, 국토부의 입장에 대해서 왜 이렇게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나.”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제2공항과 관련해 ‘콩가루 집안’ 꼴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더불어 현재 제2공항 갈등의 책임을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게 떠넘긴 셈이다. 이에 대해 김현미 장관은 (원 지사의 말에 따르면) “당정협의는 국토부와 민주당 사이의 구속력 있는 협의사항이었고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나 아니면 부분적으로 다른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당정협의 결과대로 간다”는 입장을 전했다.

원 지사와 김현미 장관의 대화를 볼 때 김태석 의장은 ‘車’도 잃고 ‘包’도 잃은 모양새다. 이런 상태로 일개 지방의회 민주당 소속 의장이 원 지사·국토부에 맞서 소신있는 정치를 펼칠 수 있을까. 남은 것은 ‘卒’뿐이다. 지속가능한 제주를 바라는 도민들. 제주도의회가 중앙정부와 대등한 힘을 갖고 제2공항 갈등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라는, 보전지역 관리 조례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에 동참한 3275명. 그 서명지를 캐비닛에 던져 넣었다면 다시 꺼내서 들여다봐야 한다.

제주도의회는 보전지역 관리 조례 개정안을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 이전에 상정해야 한다. 힘을 가질 수 있을 때 가져야 한다. 주어진 힘을 어떻게 쓸지는 일단 힘을 가진 뒤에 고민해도 충분하다. 법적 실효성을 지닌 힘을 갖게 될까 두려워 하는 도의원들이 보인다. 그들은 ‘정치’를 무엇으로 여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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