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업무와 관련한 내용을 취재하다보면 기자들은 한번씩 공무원들과 부딪히는 일이 생긴다. 바로 심의 및 의결위원회의 회의록이나 명단 공개다.

중요한 행정처리 과정은 항상 심의위원회나 의결위원회를 거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계획위원회나 기금심의위원회, 정책심의위원회처럼 중요한 결정을 하는 위원회들이다.

기자들은 이런 중요 위원회들의 회의가 열릴 때면 가장 먼저 명단과 회의록, 자료부터 챙긴다. 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돼있으며,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공공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명단을 대체로 공개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씩 명단 공개를 거부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위원회가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어서 위원들이 압박을 받을 경우나 위원들이 자신의 명단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이름이나 소속을 공개할 수 없다"라는 경우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명단을 받다가 갑자기 이름조차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 기자들은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여야만 한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가 시작된다.

결국 기자들은 최후의 보루로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이렇게 되면 기자들은 약 50%의 확률로 명단이나 자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답을 주더라도 공무원들은 10일 기한 만기를 반드시 다 채운다. 민감한 사안이면 10일을 더 연장해서 기어이 20일 기한을 채우기도 한다. 공휴일은 제외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 달이다.

그러고서는 딱 한마디의 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비공개 사유, 정보공개법 제9조(비공개대상정보)'. 이럴 때면 기자는 이 말이 '나 귀찮게 했지? 엿 먹어봐라'로 읽힌다.

결국 이런 구태의연함은 위원들과 행정기관이 결탁했다거나 짬짜미 행정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부추긴다.

그래서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일찌감치 각종 '심의·의결위원회의 공정성/투명성 제고방안'을 정부부처와 지자체들에게 전달해왔다. 여기서 국민권익위는 위원회 회의를 기록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들이 위원회의 명단이나 회의록을 문제없이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여전히 낮다.

최근 기자는 제주도청에게 제2기 청년정책심의위원 명단을 요청했다. 지난주에 위촉된 심의위원 중 선거사범이 포함돼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심의위원 전체명단부터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도청은 명단 공개를 거부하면서 "이름은 알려줄 수 있지만 소속을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소속을 알게 되면 연락처도 자동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차원에서 줄 수 없다"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결국 기자는 제주도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답을 받으려면 적게는 10일, 길게는 한달을 걸린다는 것을 안다. 어디 한두번 겪은 일인가. 

심의위원들은 한번 회의를 할 때면 약 10만 원 정도의 수당을 행정으로부터 받는다. 이것은 모두 세금이다. 세금을 받으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민들은 이들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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