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행정학박사, 前언론인

오래전, 어려웠던 시절. 정든 집을 나가기만 하면,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다시피 하였다. 누구든 객지(客地)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생활에 곤란을 겪을 때였으니,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왜 반갑지 않을까 마는, 미처 돌보아 줄 겨를은 없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은 조금이라도 서로 도우며 없는 힘이라도 보태면서 살아가고자, 향우회를 결성하고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려는 게 아닌가.

우연한 기회에, 30년 전 어느 한 마을사람들이 향우회를 결성하면서 작성한 ‘창립취지문’을 보게 되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심경을 구구절절이 표현한 글이었다. 이 내용 중에 ‘올레 바깥에만 나가면 객지다’라는 구절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 때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대망의 90년대 첫해를 맞으면서 이와 같은 향우회모임을 발족시키게 된 것은 앞으로 우리들 상호간의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고향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의의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재 제주시내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마을출신들은 칠순의 할아버지에서부터 이십대 청년들까지 무려150여 세대에 이르고 있다. 가히 ‘제2의 우리 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고향가족들이 바로 이 제주시내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이처럼 많은 고향사람들이 같은 시내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 모르는 채로 지낼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동안 전혀 연락이 없이 지내온 것은 아니다. 친목회와 청년회가 별도로 조직되어, 상부상조를 하면서 나름대로 잘 운영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두 단체에 가입하고 있는 회원 수는 실제 제주시내 거주자의 절반도 안 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제주시내에 정착하고 있는 우리 마을출신 전체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끔 어떤 단체가 있어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본 향우회를 발족시키게 된 동기인 것이다. 어떤 분은 ‘동일통화권에다가 40~50분이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고향인데, 번잡스럽게 따로 모임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이 당시만 하더라도 휴대전화는 아예 없었고, 자가용 승용차도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올레 바깥에만 나가면 객지”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고향을 떠나 외로운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여기에서 올레는 요즘 말하는 ‘올레길’과는 다른, 전통적인 우리 고향의 올레를 이른다).

고향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고향은 우리 조상들이 묻혀있고 그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다. 정든 땅,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들이 그 곳에 계신다. 고향을 아끼고 그리워하는 일은 우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고향은 영원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고향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지’를 묻기 전에 ‘내가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숙고(熟考)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 취지문을 보면서 혼자서 웃음을 띠던 옛일이 떠올랐다. 35~6년 전의 일이다. 제주시내 도심 5개동(건입․삼도․용담․이도․일도동)에 거주하는 노형동출신들이, 같은 제주시내임에도 불구하고 ‘노형향우회(친목회)’를 구성하고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향은 자석(磁石)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우리들을 이토록 끌어당긴단 말인가. 아무리 세계화가 어떻고 글로벌이 무엇이고 하는 세상이지만, 진정 찾아야 할 것은 찾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해야 한다.

고향을 사랑하는 애향심, 내 삶의 터전인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은 우리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다. 아!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올레 바깥에만 나가면 객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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