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손님, 장마

금방이라도 퍼부어 내릴 듯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자연의 냄새를 품고 있는 흙내음 속에 묻혀

퇴비에서 나는 시골 냄새랄까?

구수한 소똥 냄새는 바람 타고 잔잔하게 퍼진다.

제주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즈넉한 중산간 들길

웃뜨르 작은 중산간마을 덕천리의 '팔자 좋아 길'

그 길을 따라가본다.

화산섬이라 물이 귀했던 다른 산간마을과 달리

'모산이물'이라는 하늘이 내린 큰물이 있어 식수와 말을 먹이는 물이 풍부하여

'덕이 있는 물'이라는 덕천리 팔자 좋아 길은

덕천의 천기를 모아주는 웃못에서 시작해

북오름, 주체오름, 사근이오름을 돌아오는 팔자길을 걸으면

아무리 고민이 많아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팔자가 좋아지는 길이다.

한라산 동쪽의 중산간마을

'덕이 있는 물의 땅' 구좌읍 덕천리

한라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크고 작은 오름들이 군락을 이루고

토질이 검고 비가 오면 질퍽질퍽하며 돌동산이 많아

옛날에는 검흘동(하덕천)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이 검흘동 위쪽에 오름새끼(작은 오름)가 위치해 있어 오름새끼동(상덕천)이라 칭하였는데

현재는 자연마을로 하덕천리와 상덕천리로 부르고 있다.

덕천리는 동쪽으로 한동리, 서쪽으로 선흘리, 남쪽으로 송당리,

북쪽으로 김녕리와 접해있는 중산간 마을로

구좌읍 12개 마을 중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마을이

덕천리와 송당리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은 밀려난 듯 하지만

축사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까지도 향기롭게 느껴지는 좁은 농로길에는

배고픔을 달래주던 조랑조랑 매달린 모습에 손이 가는

분칠한 듯 새하얀 줄기가 도드라진 '복분자딸기'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겹꽃이 아름다운 짙은 향기로 유혹하는 '꽃치자'

장모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위질빵'

꽃잎을 열고 속을 보여주는 '여뀌'

해가 질 무렵에 피는 귀화식물 '큰달맞이꽃'

눈에 띄는 노란색 아름다움으로 사랑을 나누는 '큰뱀무'

거칠고 억센 느낌의 분홍 입술 모양의 '개곽향'

들꽃들은 인정이 넘치는 소박한 마을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덕천 지경의 총면적은 비교적 넓지만 농경지보다

임야지와 잡종지가 대부분으로 주요 소득작물은 축산, 감자, 더덕이다.

들판에는 무더기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하얀 메밀꽃,

오름 주변으로 개간하지 않은 채 고사리밭, 허허벌판 황무지와 목장이 펼쳐진다.

농로길 따라 걷는 내내 한 발짝 그냥 스치기엔

장맛비를 기다리는 들꽃들의 매력에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농로길을 지나 꼬불꼬불한 들길을 지나고,

무성하게 자란 풀은 흙길을 덮어버렸고 광할한 목야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하늘을 가린 길게 이어진 숲터널

시간이 멎은 듯 녹색의 나뭇잎 사이로

오고생이 곱앙이신(고스란히 숨어있는) 낭만이 있는 숲터널

멈취진 초록의 시간, 드디어 신비의 문이 열린다.

덕천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짙은 초록의 잎이 만들어낸 구실잣밤나무 숲터널

밤꽃 향기 나는 작은 도토리모양의 열매가

밤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구실잣밤나무'는

향기만큼이나 짙은 빛깔로 많은 열매를 달고 늦은 도시락이 되어준다.

 

구실잣밤나무는 참나무과의 상록활엽교목으로

남해안에서 제주도를 비롯한 해안지대에 이르는 난대상록수림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후박나무와 함께 활동력이 왕성한 나무이다.

꽃은 5월 연한 노란색으로 풍성하게 피는데 암수한그루로

수꽃은 밤꽃처럼 길게 늘어지고 밤꽃 향기처럼 강렬한 짙은 향기가 난다.

높이는 15m까지 자라는 키 큰 나무로 내음성이 강한 나무이지만

햇빛을 좋아하고 다습한 조건에서도 잘 자라고

특히 공해에 잘 견뎌 가로수로 많이 심어지고 있다.

제주에서는 '제밤낭', '조밤낭'이라 부르며

옛날에는 흉년을 대비해 저장해 두었다고 한다.

숲터널을 지나니 눈 앞에 체오름이 버티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중산간마을의 고즈넉한 들길은

최근 방영된 드라마와 웨딩촬영 장소로 인기를 끌면서

쓰레기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는 관리인의 하소연에

미안한 마음을 가져본다.

깔끔하게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자연과 동화된 듯

들길을 가득 채워주는 들꽃향기는 소소한 일상으로 들어온다.

마을 중심에 서 있는 큰 폭낭(팽나무)

자잘한 열매 익어가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깨끗하고 맑은 연못 하덕천 마을의 '모산이못(노사수)'

옛부터 본리에는 '모산이물' 이라는 못(池)이 있어서

주민들은 항시 이 물이 '덕이 있는 물'이라 해서 리명을 '덕천리(德泉里)'라 호칭하게 됐다.

덕천리의 지세는 바위가 많고 굴이 많다는 데서

행사왓(行蛇왓), 사근이동(蛇近이洞), 사수락(蛇首落), 사수두(蛇首頭), 노사수(老蛇水 모사니물) 등

뱀사(蛇)자가 붙은 지명이 많음은 굴과 뱀과의 관계가 있다는데 뜻이 있다는 것이다.

안내글에서 옮겨온 글이다.

자연연못에는 수련을 비롯해 노랑어리연꽃,

마름, 가래 등 수생식물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났다.

 

문화예술의 마을로 거듭 발전하는 마을 덕천리

오름 사잇길 농로따라 가는 길은 한적하지만 축사에서 흘러나오는

코를 자극하는 냄새까지도 낭만적인 길을 만들어주고

특별한 매력의 구실잣밤나무숲과 고사리밭, 깨끗하고 맑은 모산이못

시골 냄새 나는 한적한 목장길 농촌 풍경에 쉼표를 찍어본다.

쉼터에서 만난 '아가판서스'

꽃말처럼 사랑스럽게 생긴 종모양의 보랏빛 꽃과 진한 향까지

덕이 있는 물의 땅 '덕천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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