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일본이 기어코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자기 나라에서 열린 세계무역회의에서 자유무역을 주창한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반도체 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여 자신의 주장을 뒤엎더니, 이번에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백색국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런 행동은 문명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만행이다. 일본에서는 비공식적으로는 이러한 조치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에 우리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얘기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우리의 수출입규제가 미비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물자들이 적성국에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일본이 더욱 문제가 있다는 우리의 주장에는 일언반구도 못 하면서 딴청을 부리고 있다.

물론 이런 사태가 불거진 데에는 우리 정부의 잘못도 있다. 근본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와 아베라는 인물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 하였다. 수차례나 일본 정부가 불만을 표시하고 시정을 요구하였지만 그에 알맞은 외교적 대응을 하지 못 하고 여러 달 째 마이동풍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일본으로서도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1940년대에만 하여도 국민소득이 일본의 33% 수준이었는데, 2018년에 일본의 94%까지 따라잡으니 일본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일본이란 나라는 문명국이 아니니 올바름이란 문제에 둔감하여 아직도 조선을 강제 합병한 것을 조선을 위한 것이었다고 여기며, 위안부 제도를 운영한 것에 대해 죄의식이 없거나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강제징용도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으로 모두 해결 되었다고 여기고 있어서 우리가 생떼를 쓰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인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의해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된 것만 부각하면서 마치 전쟁 피해국인양 처신하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특히 아베 수상은 전범으로 낙인찍힌 외조부 기시 수상의 명예를 되살리려고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고 군국주의를 꿈꾸며 2차 대전을 일으킨 것에 대해 일말의 반성도 없는 사람이라,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외교적 노력을 다방면으로 펼쳤어야 하는데, 일본의 공세를 받은 다음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손자병법에 보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 不殆)고 하였으며,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지상책(上之上策)이며(이것은 외교적으로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하지하책(下之下策)은 전쟁을 해서 이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쟁을 하면 어차피 우리도 피해를 입게 되는 까닭이다. 우리 속담에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으라.’라는 말이 있다. 싸움을 걸 때에는 적어도 이길 확률이 확실히 높아야 한다. 그런 것을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모양으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가 일방적으로 당하면 그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이겼다 하더라도 많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남한산성이 청군에 둘러싸여 물과 군량미마저 바닥나는 상황에서 계속 싸우자고 하는 것이 과연 상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미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적전분열이며 적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열을 올린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본인이 잘못은 얘기하지 않으면서 사태가 벌어진 다음의 얘기만 하면 국민들의 힘을 모으기가 쉽지 않게 된다. 더구나 잘못을 지적하는 국민들을 친일파나 매국노라고 매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만일 이 사태에서 국민들이 알지 못 하는 상황이 있었다면 솔직히 국민들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싸움은 벌어졌다. 이럴 때에 최선책은 피해를 적게 입으면서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싸움이 총알이 오가는 싸움이 아니라 경제전쟁이라는 것이다. 민사재판을 보면 재판에서는 이겼는데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 모두가 망하는 것을 가끔 본다. 건물을 짓다가 분쟁이 나서 재판을 하게 되면 그 동안 건축 공사가 중단되어 건물임대에 따르는 수익은 올릴 수 없는데 이자는 계속 내어야 하고, 이자를 제때에 내지 못하면 연체이자라고 하여 이율이 무섭게 오르는데다, 재판에 따르는 소송비용이나 변호사 수임료 등을 감당할 수가 없어 결국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쟁도 그리될 공산이 크다. 국제여론에 호소하고 국제재판소에 제소하면 우리가 이길 확률이 무척 높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회사들은 망한다. 물건을 만들 소재가 모자라 물건을 만들지 못하면 회사의 수입은 곤두박질치는데, 임금과 세금은 계속 나가고, 그 동안 거래선들은 모두 끊기니 설사 몇 달 후 타협이 되고 소재들을 다시 수입할 수 있게 되어 상품을 만들어 낸다 하여도 회복은 무척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근로자들이 일심단결하여 봉급을 낮추고 지급을 늦추는 등 협조를 하여야 하나 우리나라 노조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 1조 원 정도 긴급자금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피해 입을 회사들의 임금을 계산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어쨌든 싸움은 벌어졌다. 적전분열은 필패다. 책임추궁은 나중에 하고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야당에서도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전폭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겠고, 정부에서도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친일이나 매국이라 매도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국민의 힘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 온갖 지혜와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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