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방인이다. 어디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멸시와 차별을 받아온 ‘슬픈 이방인’이다.

언론인 조맹수(제주언론인클럽 부회장․제민일보 전 주일특파원)가 내놨던 ‘한국은 조국, 일본은 모국’(1995․도서출판 높은 오름)은 이처럼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재일동포들의 ‘처연(悽然)했던 삶의 기록’이다.

책이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책속에는 오늘날의 ‘재일동포 정체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시공(時空)을 초월해 오늘을 관통하는 현상이다.

사실 많은 수의 2, 3, 4세 재일동포들은 ‘한국’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조상)할아버지 나라 ‘조국(祖國)’이라고 말하고 ‘일본’은 자신이 나고 자란 어머니 나라 ‘모국(母國)’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현실적 재일동포의 정체성이다.

저자가 주일(駐日)특파원 시절, 현장에서 발로 뛰며 전후(戰後)재일동포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서, 짓밟혀도 잡초처럼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과 역경과 애환을 녹여낸 기록이었다.

이문웅 서울대 명예교수(철학박사)는 발문(跋文)에서 재일동포를 ‘주변인간들(marginal men)'이라는 사회과학적 용어를 빌려 썼다.

그들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원이 겹치는 교집합의 영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는 한국 사람으로 차별 받고 한국에서는 일본사람으로 멸시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중간 치기 반쪽’인 ‘주도함빠(中途半端)’라고 표현되는 ‘슬픈 경계인’이라고 자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오래전 책을 불러와 인용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일간 감정적 앙금이 아교처럼 달라 붙어있고 이것을 떼어내지 못하면 두 나라의 미래가 암담해 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교훈에서 현실을 읽지 못하면 미래는 암담해지고 그것이 쌓이면 참담해 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일간의 갈등은 이러한 참담함의 그림자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이를 겨냥한 일본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소재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촉발된 한일 무역경제 전쟁은 막다른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대통령과 문재인정권의 청와대 참모들과 집권 여당은 국민의 반일(反日)감정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애국과 매국’, ‘의병과 죽창’ 등을 거론하며 반일 감정을 선동하는 데 서슴없었다.

집권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반일 감정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는 유치한 선거 공작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시민들이 나서서 일본 여행 취소, 일본제품 거부 또는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여기서 재일동포들의 입지가 고단하고 곤궁해 질 수밖에 없다. 어느 편에 설지가 난감하다.

외교부가 집계했던 2015년 기준 재일동포는 85만6000명이다. 일본귀화인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법무무의 2015년 기준 통계의 한국․조선인 수는 49만8000명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이중 제주출신 재일동포는 귀화한 사람까지 포함하여 12만3천~4천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재일 제주도민협회 자체 조사자료 로는 그렇다.

아무튼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의 수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중국인 다음으로 많다.

귀화인을 포함하면 한국계 재일동포는 중국인의 수를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극과 극을 달리는 최근의 한일 갈등은 이들 재일동포들에게는 가슴에 맺혀 삭이지 못하는 체증이나 다름없다.

일본 여행 거부 운동이나 일본 제품 안사기의 한국 국민들의 반일 운동은 재일동포들에게 직간접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그러하다.

한국의 아웃바운드 여행사나 일본 상품을 수입해서 판매하여 생계를 꾸리는 한국인들에게도 치명적 일수밖에 없다.

한국인이나 일본인, 재일동포 모두에게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함께 사는 게임이 아니라 함께 죽는 길을 가는 셈이다.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선동적 국민감정에 편승하여 해결하려는 천박한 선동정치는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망조(亡兆)다. 나라가 망할 조짐인 것이다.

한․일 양국, 또는 한․일 양국 국민의 감성적 민족주의나 감정적 집단 발작보다는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한 냉정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例)의 발문을 썼던 이 교수는 “재일동포는 해외로 이민 간 어느 나라의 교민들과는 성격을 달리 한다”고 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바로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현대사를 압축해서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재일동포는 단지 같은 민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자원이라고도 했다.

이 교수의 발문은 이어진다.

“우리는 적어도 지정학적으로 일본과는 운명적 관계에 있고 역사적으로는 항상 일방적으로 당해 왔지만, 그렇다고 문을 닫고 살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 든 상호 협력관계를 이루어 낸다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고 했다.

“일본과 잘해 보자”고 하면, ‘친일파’로 내몰아 ‘적폐 세력’으로 윽박지르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비문명적이고 야만적이다.

한번쯤 귀 기우려 잠자던 이성을 일깨워 무엇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 한 일인지 헤아려 볼 일이다.

특히 제주도민과 제주출신 재일동포는 떼 내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다. 혈연적 연결고리도 강고하다.

제주가 어려웠던 시절,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은 이국땅 일본에서 멸시와 차별 속에 온갖 고초와 역경을 딛고 피땀 흘리며 한푼 두푼 모은 돈을 고향에 보내 왔다.

1930년 당시 (일본 돈으로) 20엔 벌면 17엔을 고향으로 보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는 부지기 수였다.

용천수나 빗물에 의존했던 고향 사람들에게 수도를 놓아주었다. 각지불의 깜깜했던 마을에 전기도 걸어 줬다.

제주의 감귤 산업은 이들 재일동포들의 감귤 묘목 기중과 애향 정성이 만들어 준 환금경제 산업이다.

재일 동포 자본이 제주관광산업에 기여한 공로 역시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지금도 다방면에서 교류가 활발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주에서 만큼은 재일동포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겨줘서는 곤란하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삼가야 옳다.

집단적이고 야만적인 반일 히스테리나 지나친 반일 감정이 자칫 혐한 분위기의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在日)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을 업신여기고 차별하는 새로운 공격의 빌미로 작용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도민 사회에서는 일본 여행 거부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재일 동포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한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의 한국시장 ‘츠루하시’ 등의 관광을 종용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어렵사리 생계를 꾸리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그들을 찾아 위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것이 제주를 위해 정성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도리가 될 것이다.

강압적 일본여행 거부 운동이나 군중심리에 의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이들 일본 내 재일동포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하는 소리다.

마주달리는 열차 중간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경계인’이자 ‘슬픈 이방인’, 재일동포는 우리가 보듬어야 할 동족이자 핏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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