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광복절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도발 덕분에 이번 광복절의 의미는 더욱 깊게 새겨진다. 평화헌법을 개헌해 군대를 보유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야욕이 올해 여실히 드러났다. 아베 총리는 한일 갈등을 유발해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정족수를 채우겠다는 목적으로 경제도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 보수세력이 정권 유지를 위해 ‘경쟁적 공생관계’로 남북 관계를 설정해왔듯, 한일 간 갈등은 아베 총리가 지지자를 결집하는 '마법카드'이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에 대항해 한국인 개개인이 취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정치 행위는 그리 많지 않다. 친일세력이라 평가받는 보수정당을 뽑지 않는 정도일까. 이 역시 간접적이다. 그러고 보면 불매는 우선 국민 개개인이 아베 정권에 대항하는 가장 직접적인 정치 행위다. 이 정치적 행위를 감정적인가, 이성적인가 판단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의 정치적 판단과 행위는 그 둘 모두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 규모의 운동을 ‘답정너’ 방식으로 글 몇 자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곧잘 실패한다. ‘옳다’, ‘그르다’라는 시각을 정하고서 이 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는 단순한 정치적 스탠스 과시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팩트는 신념으로 대치되고 논리는 붕괴되고 교조적 허영만 남기 십상이다. 불매운동을 일본에 대한 혐오로 몰아붙이려는 시도가 종종 보인다. 불매운동을 두고 ‘광풍’이라고 표현하는 망언도 나온다. 제 나라의 국민을 두고 '미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 불매운동은 ‘인종혐오’나 일본의 ‘혐한류’ 등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앞서 말했듯 일본제품 불매 행위는 아베 정권의 오만에 대한 한국인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그러하듯 앞으로의 전망을 서툴게 제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의 산업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처럼 부각된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대일 의존도가 심각한 한국 경제구조, 이른바 ‘경제식민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성찰이 이어지고 있다. 소재 국산화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높았던 적도 없다. 이번 불매운동이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은 국내 산업, 경제 시스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이 끝까지 바라봐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양새다. 정쟁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도 보이는데 여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언론인들 역시 보조를 맞추고 있다. 부끄러울 뿐이다.

이번 불매운동에 대한 비판이 없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 시작될 때부터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공격을 받거나 우려를 샀다. 극우세력은 아니나 다를까 아베 총리의 계산대로 아니, 계산 이상으로 아베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다. 대북평화 모드인 문재인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일본의 종속국가적인 저자세로 아베와 일본 측의 발언을 인용하기 급급했다. 거짓말 하나를 심어두면 그 거짓말은 알아서 자가증식하기 마련이다. 인지부조화는 그런 식으로 강화된다. 아베의 분열책은 얼마간 성공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가 하면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불매운동이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으로 치중될까 하는 염려가 따랐다. 그에 대해서는 작가 박경리 선생이 30년 전에 남긴 글로 대신한다. “일본의 어느 잡지사 편집장이 내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박경리 선생의 관점으로 살피자면 결국 이번 불매운동은 한국인 개인들이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일본과 손을 잡기 위한 노력일 따름이다. 철 지난 민족주의를 벗어버리기 위한,

스스로 이루지 못한, 그래서 여전히 미완인 광복을 완성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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