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처연한 ‘탈북 민 모자(母子)’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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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칼럼] 처연한 ‘탈북 민 모자(母子)’의 비극
  • 김덕남 주필
  • 승인 2019.08.19 05: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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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홀대와 무책임과 주위의 냉대와 무관심이 빚은 참극

가슴이 먹먹했다. 가누기 힘든 울컥한 감정도 솟구쳤다.

평화와 번영을 자랑하는 나라, 풍요를 만끽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다니, 부끄럽고 참담했다.

굶어죽은 지 두 달쯤 지난 상태로 발견된 탈북 민 모자(母子)의 주검,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할 말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비참하고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마흔 한 살의 탈북 민 어머니와 여섯 살 아들의 주검이 14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임대 아파트에서 발견됐다. 숨진 지 두 달 전쯤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전해진 바로는 냉장고에는 한 톨의 쌀도 없었다. 물이나 음료수도 없었다. 먹다 남은 고춧가루가 용기 밑바닥에 조금 엉겨 있을 뿐, 냉장고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집에서 발견된 통장에는 5월13일자로 마지막 3858원이 인출됐고 잔고는 0원이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왔던 탈북 민이 풍요를 구가하는 서울에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여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북 민 모자의 죽음은 ‘풍요 속 빈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한민국 복지시스템의 어두운 그림자다. ‘복지사각지대’가 그린 자화상인 것이다.

이들 모자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처참하게 죽어가는 동안 촘촘하게 짜여졌다는 나라의 복지 시스템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그 사이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 경제’만을 노래하며 북의 김정은에 아양 떨기 바빴다.

탈북 민 업무를 총괄하는 통일부는 오히려 탈북 민들을 홀대하며 역시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지난 7월8일 탈북 민 정착을 돕기 위한 통일부 산하 ‘하나원’ 창립 20주년 기념식에는 통일부 장관과 차관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탈북 민에 대한 통일부의 무관심과 북한 눈치 보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는 사례였다.

보건복지부, 행자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 시스템도 이들 모자의 비참했던 생활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굶주림과 압제를 피해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탈북 민은 3만3천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 정착 시스템인 ‘하나원’에서 12주간 한국사회 적응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오게 돼 있다.

언어와 문화적 이질감 해소, 심리안정 교육, 진로상담 등의 교육을 받고 있지만 한국사회 적응은 녹록치가 않다.

특히 탈북 민을 남북관계의 부담으로 생각하는 대통령과 관련부처의 인식과 태도, 주변의 차별적 시각과 냉대,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적응력은 그만큼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여기에다 탈북 민 관리체계의 부실, 복지 체계의 미흡, 이웃의 무관심 등은 탈북 민들의 소외감이나 서러움을 증폭시키고 사회적 적응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도 많다.

이번 탈북 모자의 아사(餓死)사건도 이러한 종합적인 제도적 허점과 사회복지 시스템의 미비에 의한 예견된 비극으로 풀이하는 쪽도 있다.

정부는 최근 북한에 국내산 쌀 5만 톤을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돈으로 환산하면 1270억 원어치다.

그러나 북은 ‘시시껄렁’, ‘생색내기’라며 되레 한국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 취약계층을 돕는 사업에도 국제기구를 통해 무상으로 800만 달러(약 95억6400만원) 지원계획도 발표했다.

정부가 이처럼 대북지원에 안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탈북 민 지원예산은 찔끔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수당 같은 포퓰리즘 정책에는 300억 원을 쏟아 붓고 있다. 이에 반해 탈북 민 지원 예산은 고작 5억 원에 불과 했다.

탈북 단체들은 탈북 모자 아사 사건은 정부와 서울시 등의 이 같은 소극적 차별적 지원과 홀대와 무관심이 부른 예정된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음식은 남아 쓰레기로 버려지는 데 먹지 못해 굶어죽는 역설적 ‘풍요속의 빈곤’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는 무려 1만7천 여 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경제적 손실은 연간 25조원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한국에서 마지막 3858원으로 ‘최후의 만찬(?)’상을 차리고 잔고 0원의 은행통장을 두고 탈북 민 모자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기에 더욱 어처구니가 없고 더욱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무관심과 편견과 이기심이 만든 비극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무관심은 단절이고 절망이고 파멸인 것이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행정과 이웃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이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존․M․케인스는 “마음대로 좋은 나뭇잎을 골라 뜯어먹는 목이 긴 기린의 행복을 생각할 때, 목이 짧아 굶어죽는 기린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강자의 배려와 관심을 이야기한 잠언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가난을 관리하는 데는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구성원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관심을 갖고 배려한다면 가난도 해결 할 수 있다는 역설의 논리이기도 하다.

문명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굶주려 죽는, 부조리한 사회적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탈북 민 모자의 슬픈 이야기를 생각하며 문득 김소엽 시인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납니다’가 떠오른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하나

땅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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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019-08-19 11:21:11
행정이란 분배라는 말이 있다. 유한한 자원을 어느 곳에 먼저 얼마만큼 써야 하는가를 따지는 행위라는 말이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수천억 원의 돈을 쓰면서 정작 살기 위해 탈북한 동포가 서울에서 굶어 죽는다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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