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4·3 생존 수형인들이 형사보상 결정문을 손에 들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4·3 생존 수형인들이 형사보상 결정문을 손에 들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우리 웃어야 해요?”
“웃어야주게(웃어야죠). 국가가 잘못했다고 쓴 반성문 아니우꽈(아닙니까).”

22일 오후 3시 제주지방법원 앞.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김평국 할머니(89)가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 대표에게 물었다. 

지난 21일 제주지방법원은 국가를 대상으로 지난 1월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생존 수형인 18명에게 형사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4·3 당시 불법 재판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고 고문을 당한 피해자에 대한 첫 보상이 이뤄진 셈이다. 

이날 수형인과 그 가족, 변호인단 등이 결정문을 수령한 뒤 제주4·3도민연대는 형사보상 결정에 대한 소감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재진이 몰리자 결정문을 손에 든 김평국 할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웃어야 할 일이 맞는 거냐며 재차 물었다. 

김 할머니는 “2년 동안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나니 이걸 받게 됐다. 이 종이 쪼가리(결정문)가 뭔지 생각했는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종이 같다”며 “매 맞은 값을 받았다. 내가 고생한 걸 돈에다 비교할 수 있겠느냐만 좋은 약도 쓰고 하겠다”고 말했다. 

양근방 할아버지(86)는 “우리가 겪어온 세월을 생각하면 형무소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살아왔는데 이런 좋은 날이 올 줄은 몰랐다”며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겠다고 약속드리겠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4·3 형사보상 판결' 기자회견에서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생존 수형인 현창용 할아버지의 아들 현성원씨가 소감을 말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4·3 형사보상 판결' 기자회견에서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생존 수형인 현창용 할아버지의 아들 현성원씨가 소감을 말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현창용 할아버지(87)의 아들 현성원씨는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울고 눈물을 안 흘려본 거 같은데 오늘 어르신들 건강한 모습 뵙고 하니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며 “아버지가 이 돈을 가지고 단 한 번만이라도 병원비로 쓰고 돌아가시면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라며 안타까움에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이날 가장 먼저 법원을 찾은 오영종 할아버지(90)는 “어제 보상 결정이 났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심장마비가 걸릴 것 같았다”며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좋은 세월 20대에 7년 반을 감옥생활을 한 게 생각이 나서 마음이 괴롭고 억울했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 할아버지는 “내가 짓지도 않은 죄를 손자에게 물려주고 떠나갈 뻔 했는데 이제 명예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경찰 보관 기록도 삭제되고 보상까지 받았다”며 “이제 소원 다 풀었으니 내일 저승가도 된다”고 말했다. 

재심에서부터 4·3 수형 생존인과 함께 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이번 결정의 핵심은 이분들이 억울하게 수감됐기 때문에 그 기간에 대해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지난 20년 진상규명과 희생자를 인정해야 한다는 4·3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임재성 변호사가 지난 21일 법원으로부터 4·3 형사보상 판결을 받은 생존 수형인 어르신들에게 결정문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임재성(왼쪽)·김세은(가운데) 변호사가 지난 21일 법원으로부터 4·3 형사보상 판결을 받은 부원휴 할아버지(오른쪽)에게 결정문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임 변호사는 “하지만 억울하게 재판받고 고문받고 옥살이한 이후, 전과자로 낙인 찍혀 고통받은 기간에 대한 위자료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선 별도로 배상청구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국가배상 소송 계획을 언급했다. 

임 변호사는 또 “아쉬운 게 아직 남았다. 다행히 살아남으시고 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으신 분들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며 “나머지 2530명의 억울한 옥살이와 죽음이 있기 때문에 4·3관련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이번 보상이 그 동력이 되길 희망한다”고 바랐다. 

이날 양동윤 대표는 “이번 형사보상 판결이 있기 전에 제시된 의견에서 ‘청구사유가 법이 정하는 요건을 갖췄고 보상청구액도 수긍된다’고 밝힌 검찰의 전향적인 자세와 법원이 ‘역사적 의의와 형사소송법의 취지 등을 고려해서’ 최고 수준의 보상액을 결정한 취지를 주목하고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오늘의 판결은 4·3특별법, 4·3진상조사보고서, 대통령의 사과에 이은 4·3 해결의 새로운 역사적 전기로 보고 있다”며 “대한민국 사법부가 4·3당시 초법적인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법적인 사죄를 결정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형사보상 결정문. (사진=조수진 기자)
형사보상 결정문. (사진=조수진 기자)

양 대표는 또 2차 재심 준비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양 대표는 “2차 재심에서 수형 생존자 11명이 계신데 너무 안타까운 것이 그중 세 분은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편찮으신 데다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가족이 없어 소송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며 “이번 형사보상을 받으신 분들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나면 9~10월을 넘기지 않도록 2차 재심 청구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4·3도민연대에 따르면 이번에 결정된 총 보상금액은 53억4천만원이다. 청구 금액 53억5784여만원과 크게 차이가 없다. 

형사보상은 구금일수에 따라 지급된다. 보상금은 구금일수 1일당 보상청구의 원인이 발생한 연도의 최저임금액 이상, 최저임금액 5배 이하 내에서 정해진다. 

법원은 모든 수형인에 대해 올해 최저임금법에 따른 1일당 최고금액인 33만4000원을 기준으로 보상금액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 명당 최저 약 8000여만원에서 최고 14억7천여만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한편 국가기록원의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4·3 당시 옥살이를 한 수형인은 253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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