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30여 년 전에 아들 종석이가 당시 인기리에 진행되던 MBC의 장학퀴즈에서 주장원이 되더니 잇따라 월장원을 거쳐 기장원이 되었다. 제주도 학생이 주장원이 된 적은 두어 번 있었으나 기장원은 고사하고 월장원도 없던 터라 많은 도민들께서 축하해 주셨다. 더구나 종석이가 신생 학교의 첫 입학생이었던 관계로 학교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던 때라 더욱 그랬다. 서울에 계시던 분이 일본에 계시던 이사장님에게 축하 전화를 하는 바람에 이사장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면서 고금 시계를 선물해 주시기도 하였다.

기장원이 되면 대학 다닐 동안 전액 장학금에다 책값까지 주어지니(당시 의과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었으므로 합격하면 6년 동안)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어서, 여기저기서 축하와 함께 한턱내라는 성화가 빗발쳐 두어 달 한턱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동창들에게 한턱을 내는데 가까운 친구인 고성휴 선생이 “그런 장학금은 어려운 사람이 받아야지 너처럼 여유 있는 사람이 받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옳았다. 그래서 아들한테 그 애기를 하고 장학금을 받으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면 어떻겠느냐고 의논했더니 흔쾌히 동의하여, 2년 후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장학금을 받으면 전액 동려야간학교에 기부하였다. 그 돈을 야간학교 선생님들께서 알뜰하게 기금으로 만들었다가 교사를 신축할 때에 종잣돈으로 쓰셨다.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도와주시고, 제주도와 제주시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셔서 번듯한 동려야간학교 건물이 완공 되었으나 잔금이 2000여만 원 모자랐다. 필자가 마침 교사신축추진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여서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보니 MBC에서 ‘퀴즈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상금이 2000만 원이었다. 얼른 종석이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퀴즈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상금을 받으면 잔금 갚는데 썼으면 한다고 하였더니 종석이도 흔쾌히 응해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아니면 좋은 일에 쓰려고 하니까 하늘이 도와서) 퀴즈달인이 되었다. 그런데 신분이 의사라고 하니까, 내용을 모르시는 분들 중에서, 의사가 그런 돈에 욕심낸다고 비난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어쨌든 그 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어서 매우 흐뭇하였다.

얼마 전에 고위공직을 맡으려는 분의 따님이 두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은 일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었다. 학교 장학금이 아니라 퀴즈에 나가 상금을 받는 것도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한 차례도 아니고 여러 차례나 장학금을 받는 것은 모양새가 그렇다. 원래 장학금은 공부를 잘 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두 번이나 유급하였다면 공부를 잘 해서 받은 것은 아닐 것이고, 또 부모가 50억 원이 넘는 재산이 있는 데다 교수라는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으니 가정이 어려운 것도 아닐 터이니, 장학금을 그렇게 여러 번 받은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 서울대학교 총장도 동창회 장학금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받는 것인데 후보자의 따님이 받았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고 한다. 더구나 환경대학원에서 2번 장학금을 받았는데 한 학기만 다니고 의과대학에 진학하려고 후학기는 그만 두었다니. 보통 사람이면 이럴 때에 다니지 않은 학기의 장학금을 반납하던가, 적어도 미안한 심정을 가져야 할 터인데 그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으니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세대학교의 송복 명예교수님께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소위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감이 간다. 적어도 지도층이 되려면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모두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을 가지려는 것은 욕심이며, 욕심이 있는 사람은 무리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사람들을 비난하던 사람이 그러면 더욱 안 된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들이 거짓말을 줄이고, 지도자들은 노블레스 오브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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