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수진 기자)
28일 오후 저청중학교에서 열린 힙합 음악가이자 작가인 박하재홍(오른쪽)씨의 특강에서 한 학생이 즉흥 공연을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흔히들 ‘디스(disrespect의 준말)’라고 하면 상대방을 비난하는 안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미국에서 미워하는 사람을 칼과 총으로 공격하는 대신 랩을 이용해 비판하는 것이거든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굉장히 비폭력적인 방식인 거죠.”

지난달 28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 저청중학교 영어교과실. 이날은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만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힙합 음악가이자 작가인 박하재홍씨의 특강이 열렸다. 지난 6월 처음으로 저청중학교에서 특강을 가진 후 두 달 만에 이뤄진 만남이다. 

일반 수업과 달리 자유롭게 진행되는 방식에 강연 초반엔 교실 분위기가 다소 산만했다. 하지만 박하재홍씨가 힙합 문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자 학생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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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저청중학교에서 열린 인문학 특강에서 힙합 음악가이자 작가인 박하재홍씨가 즉석 랩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그의 강연은 랩처럼 즉흥적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 자유자재로 대화 주제를 바꾼다. 예를 들어 한 남학생을 옆에 앉히고 좋아하는 힙합 음악가를 묻고 있었다. 뒤쪽에 앉은 학생들이 몇몇의 래퍼 이름을 큰 소리로 대신 대답하자 그는 단호히 제지하며 대화 시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처럼 친구 대신에 먼저 대답을 하는 건 친구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뺏는 것과 같아요. 다른 친구가 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내 생각을 말하는 기회를 뺏는 것이겠죠. 친구가 충분히 생각한 뒤 본인의 생각을 말하도록 기다려줘야 해요. 기본예의죠.”

이날 박하재홍씨는 강의 내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내가 어떤 것에 끌리는 사람인지 생각해보라. 스윙스(힙합 음악가)가 좋으면 스윙스처럼 살면 된다. 그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보고 그가 사는 방식을 연구해보라”며 “좋은 사회란 누군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때 ‘한 번 해봐’ 할 수 있는 사회”라고 강조했다. 

28일 오후 저청중학교에서 열린 인문학 특강에서 힙합 음악가이자 작가인 박하재홍(오른쪽)씨와 이민규(왼쪽)군이 즉흥 공연 싸이퍼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8일 오후 저청중학교에서 열린 인문학 특강에서 힙합 음악가이자 작가인 박하재홍(오른쪽)씨와 이민규(왼쪽)군이 즉흥 공연 싸이퍼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전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매일 확인하고 관련된 정보를 쌓아둡니다. 예를 들면 예전부터 동물을 많이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물권에 관심이 생겨서 매일매일 관련된 기사나 영상을 기록했어요. 나중에 이걸 묶어 책(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을 냈더니 국내 최초 동물복지 관련 도서라는 타이틀이 붙었어요. 그리고 그 책 추천사를 세계적인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썼습니다. 제가 꿈도 못 꾼 일이었죠.”

이날 강연의 마무리 역시 힙합스러웠다. 그는 교실 가운데서 버스킹용 앰프를 놔두고 싸이퍼(cypher·즉흥적인 힙합 공연)를 벌였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이 특강을 통해 인문학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고 즐거워했다. 

학교 밴드 ‘해삼’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권태은(16)양은 “예전엔 ‘인문학’이 재미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인문학’을 강조하긴 하는데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선생님이 롤모델 삼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의 삶을 따라해보라는 말이 와닿았다. 요즘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닮고 싶어 시간날 때마다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이민규(15)군은 “이 수업을 듣고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랩 가사도 쓰려고 노력한다”며 “요즘 노래들은 전자음을 많이 쓰는데 랩은 자기 생각을 포장(전자음)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강하게 끌렸다.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과도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저청중학교에서 힙합 음악가이자 작가인 박하재홍씨가 인문학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8일 오후 저청중학교에서 힙합 음악가이자 작가인 박하재홍씨가 인문학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이군은 박하재홍씨의 특별한 수업 방식이 마음을 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수업 때 우리가 박수치거나 하면서 반주하면 선생님이 프리스타일로 랩을 한 적이 있었다”며 “보통 수업을 생각할 때 선생님과 학생 간 관계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단어로 모두가 함께 어울렸던 그 순간이 좋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밴드 ‘해삼’에서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손동민(15)군은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특강이 많아 좋다”며 “특히 오늘처럼 내가 관심이 있는 음악 수업이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날 수업에 함께 한 홍죽희 선생님은 인문학 특강을 준비한 배경에 대해 “요즘 학생들은 유튜브나 컴퓨터 게임에 쏟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기 마음을 열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한 면이 안타깝다”며 “올해는 작가를 중심으로 강사를 섭외해 자기표현이 서툰 아이들에게 ‘표현하기’에 주안점을 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열린 청소년밴드 경연대회인 '2019 탑밴드 제주'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저청중학교 밴드 '해삼'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첫 번째가 이민규군, 두 번째가 손동민군, 왼쪽 다섯 번째가 권태은양, 오른쪽은 김충우 교장.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열린 청소년밴드 경연대회인 '2019 탑밴드 제주'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저청중학교 밴드 '해삼'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첫 번째가 이민규군, 두 번째가 손동민군, 왼쪽 다섯 번째가 권태은양, 오른쪽은 김충우 교장. (사진=조수진 기자)

김충우 저청초·중학교 교장은 “지난 2014년 이 학교에 부임할 당시 초등학생이 54명이었는데 지금은 100명이 넘는다”며 “5년 만에 학생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른 학교와 달리 선생님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제안하고 발굴, 개발하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 학교가 선생님들에게 자율권을 많이 주는 이유는 학교 현장의 중심은 아이들이지만 그 중심엔 선생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지금 이 시대에 아이들에게 롤모델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다혼디 배움학교(제주형 혁신학교)인 저청초·중학교는 올해 ‘학교 특색을 살리는 창의적 교육과정 운영’을 추진하기 위해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만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생각 깨우기, 인문학을 만나다’ △‘몸으로 느끼기, 문화예술을 만나다’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만남’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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