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싫어한다. 섬에서 나고 자라 아침에 깨면 항상 마주치는 것이 바다였고, 어릴 적에는 알작지 바닷가에서 곧잘 몸을 감기도 했고 방학 때에는 온 몸이 까맣게 타도록 물 속에서 놀기도 했지만 바다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언제나 불가해한 어떤 대상이었다.


조금 철이 들면서 바다는 넘어설 수 없는 하나의 장벽이었다. 방파제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나는 답답증을 느꼈다. 수평선은 언제나 날 선 철사 줄처럼 내 목을 옥죄였다. 바다는 갈매기 나르고, 저녁이면 된장국 끓여 배타고 나간 아비를 기다리는 낭만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공간의 폭력일 뿐이었고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그렇다고 바다는 이상향으로 향한 통로도 아니었다. 뭍에서 흘러 들어오는 숱한 풍문들은 뭍도 결국 섬과는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섬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섬을 닮아 가는 뭍, 뭍을 닮아 가는 섬. 그 사이에 바다가 있었다. 유토피아는 바다에도 바다 너머에도, 그리고 섬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토피아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진한 갈망의 대상이 되는 것. 섬과 뭍 어디쯤, 저 상상 속의 이어도를 만들어 놓고 끝없는 그리움의 노래를 바치는 것.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광포한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유토피아를 상정했다고 한다면, 플라톤의 국가는 일종의 유토피아를 향한 논의의 시작이다.


훌륭한 상태의 지속을 정치체제로서의 이상향으로 상정한다면 그것을 이루는 전제조건은 용기, 절제, 지혜, 올바름(정의)이다. 이 중에서 올바름은 지배와 피지배와의 관계 설정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상국가를 향한 플라톤의 철학적 명제가 곳곳에 번득이는 국가는 서양철학 사상의 원류이자 당대의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 처절한 철학적 몸부림이다.(플라톤의 국가에서 국가의 의미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와 많이 다르다. 국가라 아니라 정체(政體)라는 박종현 선생의 주장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많은 이들은 국가를 소문으로만 알고 있다면 한번쯤 정독을 권한다. 국가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온 그런 단편적 지식으로는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국가는 일테면 한 편의 거대한 추리소설이다. 이상적 인간향을 찾아 나서는 자의 그 고독한 몸부림 앞에 우리는 자뭇 숙연해진다. 세월이 갈수록 나는 고전의 힘에 새삼 감복한다.

(지난 여름부터 이번 겨울까지 나는 플라톤의 전집과 씨름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말하는 플라톤을 보며 나는 철학이란, 결국 개념의 창조이며 철학은 철학의 외부에 의해 규정된다는 들뢰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국가를 단순히 철인 치자(治者)의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나는 절망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다. 현실에서 지성의 화신으로서의 그런 존재의 등장은 어차피 실현불가능한 것이기에.
하지만 국가가 그 오랜 시간의 내공을 견뎌온 데에는 그런 이상향을 설정함으로서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어법을 빌리자면, "현재의 이상향이 아니라 도래할 이상향이며 새로운 힘을 형성해내는 이상향의 등장, 바로 그것이 플라톤의 국가의 우리에게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인 셈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상적 권력이란 현실에서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영원히 건널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 한없는 폭력성에 전율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상을 상정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현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나가는 모습일 수 있다. 저 거친 바다 한 가운데 이어도가 있다고 믿어왔던 섬사람들이, 살아서는 그곳에 영원히 다다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마치 그 곳의 삶에 현실의 모습을 투사하듯이 말이다.


아주 거친 이분법으로 말하자면(이분법의 폭력성을 감수하면서) 세상에는 이상향을 상정하고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그곳으로 항해를 계속해 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나라가 어수선하다. 이상의 정치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 세대가 목숨을 다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그 곳'을 향해 한발씩, 더디지만 꾸준히 가야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현재, 미래, 인간의 삶의 모습이 그려내는 거대한 드라마 속에서 오지 않을 어떤 것, 아니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삶의 모습을 향해 끝없는 탐사 여행을 떠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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