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체가 관광지인 제주.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관광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섬 곳곳이 공간에 대한 고민 없이 인공적 구경거리로 조성됐다. 모든 공간은 역사와 같은 사회문화와 자연환경 등 고유의 특성, ‘장소성(性)’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공공시설물 사례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보기로 한다. 또 잘못된 행정 판단으로 인해 소요되는 적지 않은 예산과 공사 기간 불편 등 사회적·경제적인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6월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해안에 설치된 교량. 주변경관 훼손 논란으로 지금은 재정비됐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2016년 6월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해안에 설치된 교량. 주변경관 훼손 논란으로 지금은 재정비됐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달 26일자 기사(산지천 대리석조형물…만드는데 5억, 부수는데 2천만원)에서 대리석조형물을 주민·전문가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설치했다가 불편 민원이 발생하자 철거하는데 총 5억2천만원이 넘는 예산이 낭비된 사례를 다뤘다. 

전문가의 자문을 따르지 않고 설치했다가 경관훼손 논란이 거세지자 보수정비하는 데만 예산 수억 원을 쏟아부은 공공시설물도 있다. 

서귀포시는 지난 2014년 안덕면 용머리해안 관람객이 낙석으로 인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보행 안전을 위한 사업비 5억7천여만원을 들여 2016년 6월 교량 설치를 완료했다. 하지만 알루미늄 난간과 현무암 판석으로 만들어진 다리는 ‘주변 경관을 해치는 흉물’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제주도 감사위원회 조사 결과 시가 문화재청의 변경허가 조건인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선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교량 정비보수 업무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로 이관돼 지난 1월 공사가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소요된 예산은 4억1천만원에 이른다. 설계 시 전문가의 자문을 반영했더라면 쓰이지 않았을 사업비였다. 

지난 1월 보수정비된 용머리해안 교량.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제공)
지난 1월 보수정비된 용머리해안 교량.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제공)

산지천 대리석조형물과 용머리해안 교량의 공통점은 수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공공시설물 조성 과정에 마땅히 반영해야 할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향후 이에 따른 예산 낭비를 방지할 방법은 없을까.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공공시설물의 철거 또는 보수에 따른 예산 낭비를 원천적으로 막거나 또는 그러지 못했을 경우 차선책 등 해결방안을 두 가지로 나눠 제시한다. 

전자의 방법은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거쳐 예산 낭비 우려가 있는 사업은 걸러내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설치예정인 공공시설물이 일정 기준(예산이나 크기·면적 등) 이상일 경우 심의위원회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필터링이 된다. 이 말은 곧 기준에 미치지 않는 시설물의 경우 심의를 거치지 않고 주변 경관이나 환경을 크게 고려하지 않거나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라며 “철거나 보수가 이뤄지는 대다수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 규모에 따른 기준을 두지 않고 모든 공공시설물 조성 사업에 대해 심의위를 구성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관계 공무원의 업무량이 과도하게 증가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산지천 대리석조형물이 조성된 지 3년만에 철거됐다. 왼쪽은 철거 전, 오른쪽은 철거 후.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5월 산지천 대리석조형물이 조성된 지 3년만에 철거됐다. 왼쪽은 철거 전, 오른쪽은 철거 후. (사진=제주투데이DB)

그러면서 김 교수는 “쓸데없는 예산을 걸러내고 검토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도의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예산 심의할 때 졸속으로 처리하면 안 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솔직히 대충 봐도 이 사업이 진짜 필요한 사업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느냐”며 도의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교수가 후자로 제시한 차선책은 '의견수렴'이었다. 그는 “예산이 이미 배정된 후라면 그 결과물을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보완해나가는 방법이 차선책”이라며 “여기엔 담당 공무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건축가협회 제주지회장을 지낸 김석윤 건축가는 법과 제도의 개선에 앞서 이를 운용하는 ‘사람’의 변화를 강조했다. 

김 건축가는 “이미 여과 장치는 대부분 마련돼 있다. 다만 일부 공무원들이 틈을 빠져나가게 하는 예외 규정을 만들어서 마음대로 해 버리는 것이 문제”라며 “최근 제주도에 이런 문제를 전담할 도시디자인담당관이 생겼다고 들었다.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그는 또 “도시경관이나 공공디자인에 대해 순수하게 목소리를 내줄 전문가도 필요하다”며 “문화예술계나 학계, 언론계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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