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

요즘 서귀포시민들을 중심으로 하여 서귀포의료원을 제주대학교병원에 위탁관리 하도록 하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의식주가 해결된 현대인들에게 그 다음으로 제기될 욕망 중 으뜸은 건강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귀포의료원이 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서귀포시민들의 욕구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불과 5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서귀포의료원은 너무나 좋은 시설이다. 필자가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의 대학병원의 시설은 지금의 서귀포의료원보다 훨씬 열악하였다. CT나 MRI는 고사하고 내시경도 없었으며, 투시장비도 T. V.가 아니라 방이 컴컴해야 보이는 형광판이었고, 필름의 현상도 자동이 아니라 암실에서 일일이 수동으로 하였다. 침대도 자동이 아니라 철사줄을 얽어맨 것이어서 조금 쓰면 줄이 늘어져 허리께가 푹 들어가곤 하였다. 제주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던 제주의료원의 형편은 더 형편없었다. 그러니 제주도 최초의 종합병원인 한국병원이 개원하던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충수돌기염(소위 말하는 맹장염) 수술을 받으려고 서울로 가던 도민들이 많았었다.

한국병원과 한라병원이 잇따라 개원하면서 충수돌기염을 수술 받으려고 서울 가시는 분들이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점차 위암 수술도 제주도에서 받는 분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1989년에 국민 개보험이 실시되어 의료비가 대폭 줄어든 데다 국민소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다시 제주도에서도 처리 가능한 수술이나 심지어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서울로 가는 분들이 늘어났다. 다행히 2000년이 되면서 한라병원과 한마음병원, 그리고 제주대학교병원이 서로 경쟁하면서 시설과 장비들을 새롭게 갖추니, 이제는 예전에는 대학병원에서도 꿈꾸지 못했던 수술이나 시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제주시민들 중에는 제주도의 의료가 열악하다고 여기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외국에서 살았던 분들은 제주의 의료가 비슷한 규모의 선진국 도시와 비교하여 낫다고 한다. 서귀포시민들께서 느끼는 심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이 된다.

서귀포의료원을 제주대학교병원에 위탁하는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의료의 특수성을 알아야 한다. 의료는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는 다른 특징들이 있다.

제주는 관광지라는 특성 때문에 비슷한 규모의 도시에 비하여 한결 앞선 느낌이 든다. 필자가 20여 년 전에 전주에 갔을 때는 마치 시골에 간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하여도 전주에는 사우나 시설을 갖춘 호텔이 없었다. 지금도 전주는 물론 광주에도 6성급 호텔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병원은 그곳보다 못하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이것이 바로 의료의 특성 때문이다.

많은 도민들은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좋은 병원이 생길 것이라고 반기면서 찬성하였지만(물론 시민단체에서는 다른 이유들로 반대하였다.) 필자는 영리병원이 들어선다고 도민들이 바라는 그런 병원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불허할 경우 제주도가 소송에 걸려 막대한 보상금을 물어야 할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서 제주도에서 녹지병원 개원을 불허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면 어떤 병원이 좋은 병원일까?

의료진의 수준이 높고, 시설이 우수하며, 직원들이 친절한 병원이 좋은 병원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이런 병원은 처음에는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다른 기회에 이미 언급한 바도 있지만, 어느 돈 많은 독지가가 있어 싱가폴의 래플즈병원을 제주도에 무상으로 세워 준다고 해도 무한정 뒷돈을 대줄 수는 없을 것이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자립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수한 의료진은 돈을 많이 준다고 초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병원이 지속가능하려면 그 지역의 경제력과 인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것을 필자는 프로축구단을 예로 들어 설명한 적이 있다. 어느 축구광이 제주도에 세계적 선수로 구성된 축구단을 만든다고 하여도 그 축구팀이 세계적 수준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결국 일 주일에 한 번 국내 프로 축구팀과 경기를 하며, 그 중 절반은 관객도 몇 명 안 되는 제주도에서 시합을 하는데 세계적 수준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축구팀은 그래도 육지에 나가 경기를 할 수도 있는데 제주도 내에 있는 병원에 육지 사람들이 진료를 받으러 몇 명이나 올까? 교통도 문제지만 환자를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서울의 현대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보다 월등히 낫지 않고는 환자들을 끌어들일 수가 없는데 현재 세계에서 그런 병원은 없다. 외래환자가 적어도 하루에 5~6천 명은 되어야 하고 입원환자도 2000 명은 넘어야 하는데 제주도 인구로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임상 의사들에게 있어서 연구 실적은 대부분 환자가 많아야 좋은 것이 나온다. 국제적으로 이름난 의사가 환자가 없어 좋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없는데서 근무하려고 할까?

같은 문제가 서귀포의료원에도 적용된다. 결국 병원은 그 도시 규모에 알맞은 규모라야 좋은 것이다. 욕심으로야 삼성병원이나 아산중앙병원이 서귀포에 있으면 좋겠지만, 설사 그런 병원을 정부나 제주도에서 지어 준다고 하여도 운영할 수도, 그런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주대학병원에 위탁 운영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 제주대학교병원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가 있을까? 어느 유명한 교수님이 서귀포로 가려고 할까? 또 가면 도대체 몇 개월이나 있을까? 그 몇 개월을 지내려고 서귀포로 이사를 갈까? 결국 제주시에서 출퇴근할 터인데, 일과 후에 담당 환자가 문제가 생겼다고 그 밤중에 서귀포로 갈 수가 있을까? 환자들이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담당 의사가 자주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은 팀을 이루어야 하는데 몇 개월마다 바뀐다면 팀웍이 제대로 유지가 될까?

지금 서귀포의료원의 의사들은 나름대로 실력도 있을 뿐만 아니라 서귀포의료원을 좋은 병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 개월 정도 파견 나가는 교수들에게 그런 것을 바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과거에 제주의료원을 서울대학교병원에 위탁경영하였을 때를 되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서귀포시민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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