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 폴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이라는 이탈리아 말이다.

1990년대 이탈리아 젊은 검사가 주축이 되었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추방 운동’의 명칭이기도 하다.

1992년 2월 17일, 밀라노 지방검찰청 소속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는 당시 집권 사회당 경리국장의 집을 수색하여 700만 리라의 현금을 압수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계와 재계가 총체적으로 연결된 부정․부패 고리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때 안토니오 검사를 대표로하는 젊은 검사들이 ‘마니 폴리테’라는 이름으로 ‘정치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와 법 집행으로 고질적인 정치 부패․비리를 척결 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이었다.

온갖 정치권력의 압력과 재계의 회유에도 젊은 검사들의 ‘마니 폴리테’ 운동은 위축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수사 1년여 만에 1000명이 넘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가 체포되었다. 당시 전체 국회의원의 25%인 177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사는 계속돼 총 6000여명이 부패․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았다. 이중 2993명이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여기서 일곱 차례나 총리를 지냈던 ‘안드레 오티’같은 거물 정치인을 포함하여 1000여명 이상의 권력자 고위공직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마니 폴리테’는 ‘성역 없는 검찰 수사’를 이야기 할 때 자주 인용되는 상징어가 되었다. ‘강단 있고 정의로운 검찰수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글머리에 ‘마니 폴리테’를 올려놓은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윤석열 검찰’에 보내는 국민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소신을 잃지 말고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말아 서릿발 같은 법의 정의를 세워 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뚝심과 강단과 신념으로 어떤 권력에도 주눅 들지 말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격려이기도 하다.

6일 밤 11시 50분경, 검찰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의 부인인 정경심교수(동양대)를 전격 기소했다.

이때는 국회에서 조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진행 중이었다.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는 ‘사문서 위조’였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남편의 인사 청문회 도중 전격적으로 후보 부인을 기소한 것은 전례 없는 카드였다.

정교수의 ‘사문서 위조 혐의’ 공소 시효는 7년이었다. 2019년 9월 6일 24시까지였다. 이때를 놓치면 공소시효를 잃게 되었다.

‘검찰이 조후보자의 청문회 시한을 10분가량 남겨 둔 시점에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정교수에 대한 기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만큼 혐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검찰의 입장이나 수사 계획에 관계없이 조후보 부인에 대한 기습적 기소는 문재인 정권을 ‘멘붕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을 터였다.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보인 반응이 너무 거칠고 살똥스러운 것만 봐도 그렇다.

당정청이 화력을 총동원하여 검찰을 총공격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가 않다.

청와대 선임행정관 등 관계자들의 말에는 독기가 묻어 있다, 굶주린 상어 이빨처럼 날카롭기도 하다.

검찰 수사에 대해 “내란 음모 사건을 수사하거나 전국 조직폭력배를 일제 소탕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칼춤(검찰 수사)을 강제로 멈추게 해야 한다”거나 “미쳐 날뛰는 늑대처럼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고 격앙했다.

그야말로 ‘청와대가 입에 거품을 물고 검찰을 물어뜯는 형국‘이다.

전 청와대 비서관 출신은 “검찰의 망상, 빗나간 욕망에 눈먼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의 항명’, ‘잘못된 정치 검찰의 행태’, ‘대통령 권한에 도전‘, 등등 민주당 의원들의 입쌀도 맵고 고약했다.

이낙연 총리도 “정치를 하겠다는 식으로 덤비는 것은 검찰의 영역을 넘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당정청이 하나로 똘똘 뭉쳐 검찰을 때려눕히고 매 타작을 하는 꼴이다.

검찰의 중립성이나 독립성에 대한 겁박이며 ‘수사 개입’이자 정권의 악랄한 ‘이지매(집단따돌림)’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해도 너무 한다”는 말도 있다.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까지도 수사하라”고 했던 때가 고작 한 달 전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말씀’에 침도 마르기 전에 당정청이 패거리로 검찰을 짓밟는 행태는 대통령에 대한 불충이며 이중적 잣대가 아닌가.

국민들의 눈에 비쳐지는 사직당국과 정치권력의 갈등과 대결 양상은 ‘조국 사태’가 낳은 사생아나 다름없다.

‘조국사태’는 지난 한 달간 온 나라를 가리가리 찢어 놓았다.

소위 진보좌파진영이 파놓은 ‘진영 싸움 프레임’으로 사태의 본질은 외면되고 국민적 갈등과 분열구조만 키우며 고착 시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조국 사태‘는 강남좌파 엘리트가 오랫동안 숨기고 감추어 왔던 위선과 이중성과 더러운 욕망을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는 소득도 있다.

이는 최근 20대에서 작정하고 말하는 이른바 ‘과거 386 운동권 세력 기득권 꼰대들의 민낯’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정치 사회 사법 언론 문화 교육 노조 등 광범위한 분야에 똬리 틀고 앉아 권력의 단맛을 빨아먹으며 새로운 권력을 추구하는 탐욕 세력의 이면을 드러내게 했다”는 비판도 있다.

‘조국’은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불거지는 각종 의혹에 “몰랐다”. “아니다”, “관여 안했다”고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비겁한 책임회피와 뻔뻔함으로 치부를 가리려 했다”는 일각의 욕설도 있다.

최근의 ‘조국 문제’는 이미 ‘법적 영역’을 벗어났다. 법적 판단이 어떠하든 ‘도덕적 범주’와 ‘국민정서법’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정의의 완장’을 차고 ‘도덕의 목도리’를 두른 채 이를 독점하여 으쓱거리던 강남좌파 엘리트 조국의 가면이 벗겨지고 실체가 까발려 졌기 때문이다.

진보 원로로 꼽히는 최창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말씀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국 사태는 사법행정의 책임자로 임명된 사람의 도덕적 자질이 본질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직결된 문제다.

과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촛불 시위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자임하는 정부가 보여주는 정치적 책임이냐“고 비판했다.

‘모럴 헤저드’에 빠져 허덕이는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해서는 아니 된다”는 뜻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조국 임명으로 야기되는 온갖 악업은 문대통령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여기서 ‘조국’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대는 가족(가정)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법무장관 자리를 사랑하는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가족’인가, ‘법무장관’인가”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조국을 껴안아 더 큰 후폭풍을 불러들일 것인가, 아니면 조국을 보내고 나라의 혼돈을 잠재울 것인가”

이와 함께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조국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걱정의 소리들도 들린다.

모든 선택은 물론 문대통령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은 ‘윤석열 검찰’의 향후 수사 행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미래와 위상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소신과 뚝심과 강단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법의 정의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권력과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하여 ‘권력의 충견(忠犬)’으로 꼬리 내릴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조국 의혹’에 대해 성역 없이 과감하고 거침없고 신속한 검찰 수사를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27년 전 이탈이아의 ‘깨끗한 손(마니 폴리테)’을 불러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새삼 ‘지연된 정의는 불의보다 못하다’는 법언(法諺)이 새롭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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