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선거직을 포함한 공직자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사람이 일상에서 얼마나 공익을 앞세우는 가여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익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이 공직을 탐내는 것은 사익을 채우기 위한 기회를 노리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공익을 앞세우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들은 선거나 청문회를 통하여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나 공청회에 나오신 분들이 문제가 발생하면 흔히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은 공직을 맡음에 있어서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게 되고 당연히 공직을 맡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 그러면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그 사람이 공익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공익심과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법은 그물과 같아서 모든 잘못이 걸러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법은 거미줄과 같아서 파리나 모기는 걸려도 참새만 되어도 뚫고 지나간다. 또 법에는 시효라는 게 있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죄가 들어나도 벌을 줄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또 재판이라는 것이 증거중심주의여서 증거가 뚜렷하지 않으면 아무리 확신이 되어도 처벌할 수 없다. 오죽하면 ‘천당과 지옥이 소송을 하면 백 번 다 지옥이 이긴다. 그것은 모든 변호사들이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어떤 분들은 공직자는 똑똑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똑똑해야 일을 잘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은 일이 그르쳤을 경우 그 일을 맡은 사람이 똑똑하지 못 해서 잘못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사물의 장단점을 잘 살펴서 일을 처리하여야 하는데 어느 한 편만을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직자를 뽑을 때에 공익심이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똑똑한 사람들이 공익심이 없을 경우 국민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우둔하나 공익심이 있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작은 잘못을 저지르지만, 똑똑한 사람이 공익심이 없으면 훨씬 더 큰 잘못을 저지른다. 왜냐 하면 똑똑한 사람들이 더 높은 자리, 더 영향력이 큰 자리를 맡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리가 높아질수록, 영향력이 커질수록, 힘 있는 자리일수록 공익심이 더욱 중요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머리가 우둔한 사람이 인류에 끼친 해악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끼친 해악이 훨씬 더 많다.

도덕성을 장관의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이견(異見)들이 있다. 우리나라 실정에서 장관을 할 만큼 성공한 사람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을 찾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고위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은 일반 국민들보다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맡으려는 직종에서 가장 중히 여겨야 하는 부분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면 그런 공직을 맡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군(軍)이 가장 중요히 여겨야 하는 가치는 승(勝)이다. 전쟁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이기고 지는 것은 군에서는 예사로운 일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최선을 다 했는데도 지는 것 자체가 그리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러 졌다면, 그런 사람이 국방부장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방산비리는 일부러 지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다. 일부러 나쁜 병기를 만드는 것은 일부러 지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가 일부러 환자를 죽였다면, 그런 의사가 보사부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 내무부장관이나 법무부장관이 되어서는 안 되며, 거짓말하는 사람이 법무부장관이나 교육부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이것은 독선자들의 생각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독재자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군이라 칭송 받는 분들이 한결같이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중용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죽이라고 간청한 위징을 재상으로 삼은 당 태종이나, 세자 시절 자신을 귀양 보내야 한다고 주청한 황희를 만년 재상으로 삼은 세종대왕이 그들이다.

이제 곧 선거철이 돌아온다. 우리 모두 누가 더 공익심을 가졌는지를 따져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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