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유족회, UN인권이사회 참석...국제사회에 4·3문제 해결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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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유족회, UN인권이사회 참석...국제사회에 4·3문제 해결 촉구
  • 김재훈 기자
  • 승인 2019.09.1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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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 4·9통일평화재단 등과 토론회, UN 앞 집회 등 개최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송승문) 국제연대포럼(위원장 오승익)은 지난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42차 UN 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유엔인권이사회 발언, 토론회, 거리집회 등을 통해 4·3 문제 등 한국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이번 방문은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해 4.9통일평화재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다크투어, 진실의 힘 등 국내 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함께 참여했다. 

이번 인권이사회에서는 지난 3월 제주를 포함해 한국을 비공식 방문한 파비안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이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례 보고서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효과적인 구제를 위한 조치 중 하나인 국내 배상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설치와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의 촉진(Promotion of truth, justice, reparation and guarantees of non-recurrence)’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9월 11일에는 UN 인권이사회 공식 세션으로 진행된 UN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특별보고관 연례 보고서 발표에 이어 4·3유족회 국제연대포럼 회원인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대표가 공식 구두 발언을 통해 4·3과 한국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를 제기했다.

백가윤 대표는 4·3과 관련해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대한민국에 위치한 제주도에서는 3만 여명이 학살당했다. 한국 정부와 당시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던 미국 정부는 경찰 폭력과 분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심각하게 탄압했다.”면서 “피해자들은 50년 동안 침묵을 강요받았고 2000년이 되서야 국가 차원의 조사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이 법은 통합적이고 개인적인 배상, 회복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지난 70년 간, 정의도, 배상도, 회복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백 대표는 또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다는 특별보고관의 발언을 재확인한다.”면서 “피해자들의 배상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특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9월 12일 오전과 오후에 나눠 <한국의 전환기적 정의: 제주 4·3과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하의 인권침해: “위안부”와 강제동원> 토론회가 UN 회의실에서 각각 열렸다.

 

오전 10시30분 시작된 토론회는 파비안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의 기조발제에 이어 ▲진실화해위원회 9년, 한국의 진실과 정의(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초토화 작전과 미국의 책임(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발표와 함께 김춘보 4·3 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의 당사자 증언시간도 마련됐다.

4·3과 미국의 책임에 대해 발표를 한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은 “대부분의 4·3학살은 미군정이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11월부터 약 4개월간 소위 초토화작전 때 일어났지만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여전히 미군이 갖고 있었다”면서 “이승만 대통령과 하지 주한미국사령관 이 1948년 8월 24일 체결한 한미군사협정에 따르면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에 대한 전면적인 작전상의 통제를 행사하는 권한을 주한미군사령관이 갖고 있었으며 이는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형식적인 조항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종민 전 전문위원은 또 “제주4·3의 학살에 대해서 미국은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면서 “미국 정부는 4·3 당시 이뤄진 무분별한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미군정과 미군사고문단의 역할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4.3 발발 당시 채 한 살도 되지 않은 나이였던 김춘보 상임부회장은 “군경 토벌대에게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라면서 소위 ‘폭도자식’이라는 말을 늘 의식하며 살아왔다”면서 “8촌끼리 모여 벌초하게 되면 정작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무덤이 없어 벌초를 못하게 되니 그리운 마음이 사무치게 된다”고 증언했다. 

김 상임부회장은 또 “어떤 것으로도 4·3의 피해를 회복할 수는 없지만 4·3이라는 아픈 과거를 덮을 수 없는 만큼 앞으로 그러한 무자비한 비극을 겪지 않으려면 후세대에게 4·3을 잘 가르쳐야 한다”면서 “평화롭고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호소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에는 진행된 일제 강점기 하의 인권 침해: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토론회가 UN 본부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발표자들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정의실현을 위하여(오성희, 정의기억연대) ▲강제동원 문제(류다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 뒤에는 김복동 할머니의 생애를 다룬 영상 상영회도 함께 진행됐다.

제주4·3유족회 회원 등이 스위스 제네바 UN본부 앞 광장에서 거리 집회을 갖고 한국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을 촉구했다(사진=제주4·3유족회 제공)
제주4·3유족회 회원 등이 스위스 제네바 UN본부 앞 광장에서 거리 집회을 갖고 한국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을 촉구했다(사진=제주4·3유족회 제공)

9월 13일 오전에는 UN 본부 앞 광장에서 거리 집회를 진행했다. 제주4·3유족회 회원들은 정의기억연대, 4.9평화통일재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가자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국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팔 걷고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8시30부터 UN본부 앞에서 4·3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 시위와 함께 4·3을 알리는 영문 소책자와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를 나눠주는 등 홍보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오승익 제주4·3유족회 국제연대포럼 위원장은 “ 공식발언, 토론회, 집회 등을 통해서 UN인권이사회에서는 처음으로 4·3을 알리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면서 “유족회 차원에서 과거사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제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참가단체들은 유엔인권이사회 공식발언, 토론회, 집회 이외에도 세계고문방지기구(OMCT), 국제인권협회(ISHR) 등 국제 NGO단체 및 유엔 관계자들과의 면담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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