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칼럼] 도두봉(道頭峯)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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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길 칼럼] 도두봉(道頭峯) 안내문
  • 제주투데이
  • 승인 2019.09.20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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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길/ 행정학박사, 前 언론인
이용길/ 행정학박사, 前 언론인

도두봉(道頭峯). 제주시서부 도두동에 있는 야트막한 오름이다. 시내에서 가깝고 풍광이 좋아, 시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곁들여 곧잘 찾는 명소다. 북쪽으로는 시원한 바다가 확 트여있고 아래쪽으로는 넓은 비행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특히 일부 외래객들은 2~3분에 한번씩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보면서 손뼉을 치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기차는 못 봐도, 비행기는 실컷 보며 산다’는 노랫말과는 역(逆)으로, 아마 이들은 ‘기차는 타보아도,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비행장은 자주 볼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일 터이다.

어쨌든 도두봉은 산책으로도, 운동으로도, 사색․명상으로도, 매우 안성맞춤이다. 참으로 좋은 장소이다. 이러저런 매력적인 연유로 해서 도두봉을 번번이 찾는다. 도심지 인근에 이처럼 빼어난 공간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갈 때마다 씁쓸함을 금치 못하는 게 있다. 바로 곳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팻말 때문이다. 다음은 그 안내문이다.

안 내 문

도두봉은 모두가 이용하는 공원입니다.

가져온 쓰레기는 다시 가져갑시다.

도두동 주민센터

얼른 보기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모두 가져가 달라’는 호소문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읽어보면, 이럴 수가 없다. ‘가져온 쓰레기’라니? 그래 도두봉을 찾는 이들은 ‘버릴 쓰레기’를 일부러 가지고 오른다는 말인가. 아니 시민들을 도대체 어떻게 취급해서, 이런 안내판을 세워놓았는가. 아무리 너그럽게 보려 해도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한심스러워 측은하기조차 하다.

안내문을 세운 당사자가 ‘도두동 주민센터’인 것으로 보아, 문안은 공무원이 작성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 엘리트인 공직자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가져온 쓰레기’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쓰레기’로 바꾸어야 당연하다.

어쩌면 ‘쓰레기 투기행위 엄금’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등 흔히 쓰는 상투적인 구호를, 좀 색다르게 표현하느라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 작문(作文)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시민을 ‘쓰레기나 버리려고 산에 오르는’ 우매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듯한 언어를 사용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이와는 좀 다른 얘기이기는 하나, 공공기관에서 구사하는 용어에 한문 투가 많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언젠가 제주시내 버스정류장 곳곳에 “감회운행됩니다”라는 안내 쪽지가 붙어있었다. 내용인즉, “방학기간 시내버스가 감회운행됩니다”였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오호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 방학이 되니까, 감회가 새로워 감동적인 운행을 하겠다는구나.” 오죽 감회가 깊었으면 이렇게 안내문까지 부착했을 것인가.

짐작하건대 여기에서의 감회는 ‘줄인다는 감(減)자’와 ‘횟수라는 회(回)자’인 모양이다. 왜 이렇게 군색한 용어를 굳이 써야 하는지. 이희승국어대사전에는 ‘감상과 회포’라는 의미의 감회(感懷)와 ‘한이 되어 뉘우친다’는 감회(憾悔)가 있을 뿐, 정류소의 그 ‘감회(減回)’는 없다.

우리는 ‘아름답고 어휘가 풍부한 겨레말’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글’을 크게 자랑은 하면서도,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때문에 넘쳐나는 게 외래어요, 모호한 한자투성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 보자. 도두동, 도두봉이 어떤 곳인가. 섬의 머리(島頭)이자, 제주도(道)의 머리, 도두(道頭)아닌가. 도두동 주민들은 바로 ‘섬의 머리마을’에 살고 있는데 따른 자부심이 굉장하다. 행정이 우선해야 할 과제중의 하나는 배려와 친절로 주민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공공(公共)의 임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들. 특히 섬의 머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성심을 다하여 주민과 사회에 봉사하여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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