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괜촪습니까? :캉코쿠다이죠부데스카? :韓国大丈夫ですか?" 조국 법무부장관 집, 가택 수사가 있다는 뉴스를 보고 필자와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넌지시 물었다. 50대인 그는 한국에 한번도 가보지 않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무척 호의적이며 필자와 많은 이야기도 나눈다.

그의 딸은 대학생인데 열심히 알르바이트해서 여비를 만들고 재작년에 친구랑 서울에 갔다 왔고 올해 여름방학 때도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오키나와에 갔다고 한다. 자기는 한국에 가도 괜찮다고 했는데 같이 가는 친구 부모가 한국에 가는 것이 걱정이 돼서 반대하기 때문에 오키나와를 택했다고 한다. 그의 딸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갈 준비를 했었는데 무척 아쉽고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조국 씨가 민정수석 당시 반일을 노골적으로 부추길 때, 일본 매스컴들은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한국 때리기'와 함께 계속 연재물처럼 게재했었다. 이때도 그는 필자에게 "한국 괜찮습니까?"하고 똑 같은 질문을 했었다.

일부 정치가들의 선정적인 반일 발언과 국민들의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나는 반대하기 때문에 한국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조국 씨가 민정수석을 그만 두고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선정되면서 그의 민낯과 가족들의 과거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니 일본 메스컴도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못지않게 이 기사들을 내보냈다. '양파 같은 조국'이라는 수식어가 한국에서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니까 일본에서도 바로 '다마네기장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양파'를 일본어로 '다마네기'라고 한다.)

까도 까도 속을 모르고 계속 같은 색만 나오니 '양파 같은 사람'이라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그것을 조국 장관에게 꼭 맞다는데 이 비유에 대해서 필자는 회의적이다. 양파는 겉과 속이 꼭 같으니까 솔직하고 올바른 사람을 비유하는 긍정적 의미로서 사용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사용되면 영양가 높은 양파에게도 실례이다. 

조국 씨는 미남이고 진보적인 성향이면서도 서울대학 교수로서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청렴결백의 학자로 일본에서도 소개되었었다. 그러나 그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면서부터 그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 둘 흐려지기 시작했다.

법무장관 후보자로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의 그의 실상은 청개구리 우화처럼 추락하고, 장관이 된 지금은 법무부장관이 전대미문인 가택 수사까지 받으면서 아직도 끝없는 블랙홀을 향하고 있다.

"한국 법무부장관의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해도 너무했습니다. 왜 이제까지 이런 비리를 몰랐습니까?" 그가 다시 물었다. '왜 이런 비리를 몰랐습니까'에 대한 물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반일의 선봉자였던 그의 몰락에 대해서 잘 됐다는 통쾌감을 감춘 그의 비아냥이나 비난이 아니었다. 국적을 초월한 일반 사람들이 갖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가치관에 대한 비난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성을 갖고 있다. 수학적인 공식처럼 딱들어맞게 대입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용서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 그러나 조국 법무부장관의 끝이 없는 상습적 이중성은 납득할 수 없는 한계를 넘었으며, 그로 인해 빚어진 피해에 대한 책임론의 부재와 궤변에는 아연할 따름이다.

외국에 살다 보면 고국에 대한 명칭이 글을 쓸 때나 대화를 나눌 때 그때의 정서에 따라 여러모로 바뀔 때가 있다. 정식 국명인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한국' '모국' '고국' '조국'이 그렇다. 이제까지 여러 명칭을 사용하는 가운데 '조국'이라는 단어도 좋아 해서 필자는 늘 사용해 왔다.

그런데 조국(曺國) 장관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필자는 이제까지 사용해 왔던 '조국:祖國'이라는 단어가 막대한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손실이다. 필자와 재외동포만이 아니고 한국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들도 거의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조국:祖國'이라는 단어에도 먹칠을 하고 말았다. 

법무부장관 후보자 때부터 임명이냐, 사퇴냐, 철회냐를 놓고 저울질에 저울질을 하여, 임명도 사퇴도 철회 모두가 진퇴양난이어서 대통령의 밀어붙이기 식으로 임명을 하여 장관이 되었다. 조국 씨 이외 그 누구도 검찰 개혁을 못한다는 대의명분 속에 사명과 이상에 불타올랐었다.    

그러한 그가 지금 검찰 개혁의 최대의 걸림돌 대상자가 되고 가택 수사까지 받아야 했다. 정가에서 흔히 쓰는 단어가 있다."한치 앞은 어둠"인데 조국 장관의 임명의 결과는 한치만이 아니고 "열치 앞도 바라볼 수 있는 밝음'이었다.

강인한 임명으로 국정 마비의 대혼란을 초래하고 말았다.

판도라 상자가 열려져버린 지금 임명한 대통령과 자신의 비리와 이중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조국 씨 스스로가 장관직 수락은, 대통령 개인과 조국 씨 가정의 몰락만을 초래한 비극이 아니고 한국 국민의 비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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