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수진 기자)
27일 오후 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제주4·3연구소 창립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제주4·3 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오랜 기간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제주4·3 정명(正名)에 대해 숫자인 ‘4·3’을 버리고 ‘독립항쟁’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영범 대구대학교 교수는 27일 오후 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제주4·3연구소 창립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제주4·3 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세미나’에서 ‘비원과 기억, 4·3의 정명은 가능한가’ 주제로 기조발표에 나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제주인이 그동안 4·3을 영웅화·신화화하며 일종의 ‘기념비적 역사’로 쓰려했던 것이 아닌지 반성과 자기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왜 하필 제주도에서만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양한 구도에서 4·3을 분석하며 정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중립적인 호칭이라는 ‘제주4·3사건’은 시간적 범위가 앞뒤로 넓고 뒤섞여 다층적인 일련의 작은 사건들을 제대로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다”며 “역사적 의미와 총체적 본질들 반영하지 못하면서 어정쩡한 절충점에서 ‘너 좋고, 나 괜찮고’ 식으로 붙여진 이름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든 4·3의 정명 혹은 문제 제기에 관한 주저와 침묵을 먼저 깨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정명을 신성하고 절대적인 과업으로 여겨선 안 된다. 형식론적 정명에 집착하고 고집하기보단 실질적인 (재)정명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7일 오후 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제주4·3연구소 창립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제주4·3 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27일 오후 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제주4·3연구소 창립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제주4·3 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4·3’ 고집할 필요없어…모든 의미 담은 ‘제주 독립항쟁’” 제안

그러면서 “사건명을 ‘월(月)·일(日)’ 숫자로 표기해온 상투적 어법에 고착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4·3’이라는 숫자기호를 버리고 떠나야 할 때”라며 “‘3·1 독립운동’을 ‘3·1사건’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을 ‘광주5·18사건’으로 명명함이 온당한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4·3’의 전모와 실질을 재구성하면 1947년 3·1 기념집회의 발포사건에서 비롯해 미군정 통치 전면거부의 총파업과 이에 대한 전면 탄압이라는 대결구도의 성립을 계기로 제주자위항쟁으로 급전했다”며 “한국 민족의 완전·절대·통일 독립이라는 염원, 그 열망을 짓누르는 외세에 대한 저항, 제주만의 자립·자존을 결사적으로 기해내려던 해방과 독립의 항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제주항쟁은 완전한 민족해방만이 아니라 제주독립의 의미도 두텁게 내재시킨 것이며 이를 다 포괄하게끔 재명명한다면 ‘제주 독립항쟁’이라고 해야 옳다”라며 “이때의 ‘독립항쟁’에는 제주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제2의 민족독립운동과 변방 제주섬의 대(對)중심부 항쟁, 고립된 채 죽음을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벌여간 대미항쟁 등 3중의 의미가 겹쳐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조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제2부 순서에서는 ‘제주4·3 연구 30년,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가 미국 문헌자료 발굴 경험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또 김은희 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이 ‘제주4·3진상조사와 구술채록’, 오승국 제주4·3평화재단 사무처장이 ‘외로운 대지에 새겨진 참혹한 길’, 강남규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이사장이 ‘운동으로서의 제주4·3’ 등의 발표가 이어졌다. 

제주4·3연구소 30주년 기념 특별전은 4·3평화기념관 2층 전시실에서 오는 11월3일까지 열린다. 
제주4·3연구소 30주년 기념 특별전은 4·3평화기념관 2층 전시실에서 오는 11월3일까지 열린다. 

◇오는 11월3일까지 평화기념관 2층서 4·3특별展

한편 제주4·3연구소 30주년 기념 특별전은 4·3평화기념관 2층 전시실에서 오는 11월3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1989년 다변했던 국내·외 정세 속에 개소식 장소인 제주시 용담동 공임쌀집(2층)을 공간적으로 재현, 연구소 창립의 그날과 그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제주4·3연구소 서른 해의 기억과 기록을 시간의 흐름 순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주요사업, 2000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주요사업, 유해발굴과 증언본풀이, 별도의 영상코너 운영 등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배치됐다. 

코너의 마지막인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서는 그날을 향해’에서는 ‘4·3연구소에 바란다’에 관람자가 참여하는 형식을 취했다. 창립 당시 젊은 현기영 소장의 인사말부터 4·3연구소가 30년간 행사했던 현수막 30점과 포스터를 선별해 전시된다. 시대별로 발간된 4·3책자 및 보고서, 구술증언 테이프 등 4.3연구소의 일차적인 사료들도 볼 수 있다. 

지난 1989년 5월 제주4·3연구소 개소식 모습. (사진=제주4·3연구소 제공)
지난 1989년 5월 제주4·3연구소 개소식 모습. (사진=제주4·3연구소 제공)

순수민간연구단체인 제주4·3연구소는 4·3이 서슬 퍼렇던 1989년 5월 10일 문을 열고,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앞장서 왔다. 창립 첫해에 4‧3관련 최초의 증언채록집인 ‘이제사 말햄수다’ 1·2권(1989)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구술채록, 역사기행, 자료 발굴, 국내외 학술대회 등을 통해 4·3진상규명 역사 30여년과 함께 4‧3의 진실을 알려왔다. 

이번 세미나는 제주시가, 특별전은 제주도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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