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재훈 기자)
신현정(좌), 김기홍 2019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2017년 ‘퀴어옵서예’로 시작해 2018년 ‘탐나는퀴어’에 이어 어느새 3회째를 맞은 제주퀴어문화축제. 태풍 때문에 한 차례 연기되었던 제주퀴어문화축제 지난달 삼다광장에서 개최됐다. 올해의 슬로건은 ‘퀴어자유도시’. 현 제주의 난개발과 다양한 갈등을 야기하는 ‘국제자유도시’를 패러디했다. 축제를 통해 사회의 문제도 같이 얘기하겠다는 의도로 기획했다.

이번 퀴어문화축제는 이전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제주의 현안과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축제를 연 것이다. ‘퀴어자유도시’라는 명칭에서 이미 축제 주최 측이 비판하고자 하는 사회 문제의 초점이 드러난다. 제주퀴어문화페스티벌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은 신현정 씨는(1998년生)는 ‘퀴어자유도시’의 의미에 대해 묻자 대뜸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이 야기한 문제들을 술술 풀어냈다. 현재 제주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의 근원에는 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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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퀴어문화축제 포스터을 들어보이고 있는 두 조직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개발사업이 국제자유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추진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걸 누가 원했던 걸까요. 도민들의 의견은 없었어요. 중앙정부와 몇몇 이해관계자 교수 전문가 집단의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자유도시를 위해 제주도민들은 난개발 속에 살아야 하죠. 제주 제2공항을 짓기 위해 자기땅에 살지 못하게 될 사람들, 비자림로 공사로 죽어가는 생명체를 생각해봅니다.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거대자본 중국자본이 들어와 테마파크를 짓고 도민 일자리를 창출한다 하는데 저임금 서비스직이 대부분이에요. ‘국제자유도시’로 인해 도민의 삶이 피폐해지고 환경은 파괴되고 있어요.”

사람과 상품,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국제자유도시. 하지만 그 민낯은 2018년 예멘난민 혐오사태를 겪으며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멘 난민이 이슈가 되자 법무부는 바로 예멘, 우즈베키스탄 등 12개 국가 국민이 비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국제자유도시’라는 명칭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신현정 조직위원장은 “이 도시 안에서 자유로운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과 노동은 자유롭지 않고 자본과 상품만 자유롭죠. 자유롭지 않은 것은 퀴어도 마찬가지고요. 1회 때 신산공원을 행사장소로 사용하기 위해서 행정소송까지 이어졌어요. 누구나 특정 장소에서 축제를 열 수 있는데 그 정도의 자유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허용이 안 되는 것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제자유도시라는 슬로건을 풍자하기로 한 거예요. 단 하루지만 축제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싶은 마을의 모습을 미리 살아내보자,라는 마음으로... 인권이 보장되고 사람이 자기가 살던 곳에서, 살고 싶은대로 살아가는 제주를 만들어보자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제주의 미래비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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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2019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김기홍 공동조직위원장은 “이런 축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분들이 있죠.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이 축제를 좋게 바라봐 주고 있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람들도 응원해주고 있고요. 2017년 제1회 축제 후 퀴어커뮤니티들이 만들졌어요. 제주대 퀴어 동아리 ‘퀴여움’과 청소년 성소수자 모임인 ‘가람슬기’는 서로의 존재를 긍정해나가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조그만 성과라고 생각해요”라고 제주퀴어문화축제의 의미를 새겼다.

제주퀴어문화축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데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엘라이(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연대하는 사람)’들의 힘도 컸다. 신 조직위원장은 “1회 축제 때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어요. 성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안전하겠구나,라는 용기를 주었죠.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에 퀴어인권분과가 만들어졌고요. 도내에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있었지만 그간 성소수자 인권을 말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라고 말했다.

“퀴어문화축제로 논의의 장이 열리고, 성소수자 인권을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어요. 대외적으로 보자면 1회 때는 미국대사관, 퀴어 지지 단체 등 육지에서 온 부스가 대부분이었어요. 올해는 반 넘게 제주 지역 단체 부스였어요.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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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좌), 신현정 2019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전국적으로 퀴어 축제는 혐오 세력의 방해 등으로 인해 퀴어문화축제를 만드는 이들은 늘 어려움을 겪는다. 제주의 경우 2회 축제 때는 퀴어행진을 방해하기 위해 행사 차량 밑으로 기어들어 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퀴어행진단 측 차량이 사람을 쳤다는 식의 왜곡보도도 나왔다. 주최 측은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고자 했다. 하지만 끝내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 차 밑으로 기어들어 간 사람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는데, 병원에 허위 정보를 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당국이 적극적으로 신원을 알아내려 했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겠죠. 의지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신 조직위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이번 축제에 그 지경으로 볼썽사나운 일은 없었다. 물론 퀴어문화축제장 인근에 혐오 메시지를 넣은 현수막이 걸리고 집회가 열리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오히려 ‘약방의 감초’가 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의 영양분이 된다는 얘기나, 혐오 메시지와 집회가 없다면 퀴어문화축제도 동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농담이지만 뼈가 있는 농담이다. 제주퀴어문화축제는 퀴어에 대한 혐오에 반발하며 시작됐다. 도내 한 인물이 페이스북에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내뱉자 그에 분노한 도민들이 본격적으로 퀴어축제를 논의하며 제1회 퀴어문화페스티벌이 개최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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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2019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올해 제주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은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김기홍 조직위원장은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혼인이 가장 끈끈하고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면, 생활동반자법은 더 다양한 형식의 가족 형태를 가능케 합니다. 친구의 아이를 키울 수 있다거나, 급할 때는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없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요.” 병원 문제, 건강보험, 사망 시 장례와 상속의 문제가 그것이다. 신현정 조직위원장은 “하다못해 비행기 마일리지라도 같이 쓸 수 있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성소수자 당사자인 김기홍 조직위원장은 퀴어문화축제가 자신의 ‘생존활동’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퀴어문화축제는 저에게 ‘생존활동’이 됐어요. 이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나를 부정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운동은 나의 존재부정에 저항하는 행위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일터인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단한 혐오와 편견의 벽 너머 ‘국제인권도시 제주’를 응시하는 제주퀴어문화축제. 내년에는 또 어떤 슬로건과 문제의식을 갖고 돌아올까. 축제 조직위에서 제주를 바라볼 때 가장 시급한 현안이 슬로건으로 새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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