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칼럼] 부자(富者)는 탕자(蕩子)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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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칼럼] 부자(富者)는 탕자(蕩子)를 낳는다.
  • 제주투데이
  • 승인 2019.11.0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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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요즈음 T V연속극을 보면 대체로 부잣집 아이들이 악역(惡役)을 맡는 것으로 설정되곤 한다. 소설이란 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꾸며낸 것이고, 부잣집 아이들이라고 모두 악한 것은 아닐 터인데도 그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부잣집 아이들은 탕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불가의 가르침에 “빈자(貧者)는 현자(賢者)를 낳고, 현자는 부자(富者)를 낳고, 부자는 탕자(蕩子)를 낳고, 탕자는 빈자(貧者)를 낳는다,”라는 가르침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윤회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애들이 현명하게 되고, 현명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애들이 부자가 되는데, 부자의 자식들은 탕자가 되어 재산을 탕진하니 그 자식들은 다시 가난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속담에도 “3대 가는 부자 없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 가르침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의과대학 교수로 있다가 고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는 생각에 고향에 내려왔을 때에 이 가르침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부잣집 아이들이 잘못되는 것을 흔히 보게 되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후배들은 의사가 부자라고 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으나, 열심히 양심적으로 환자들을 보면 소득이 전 인구의 10% 이내에는 들 수 있으며, 이 정도면 부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하물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부자학을 개설한 한용철 교수의 지론에 의하면 ‘부자란 그저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며, 그것을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고, 그 일로 사회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라고 하니 의사가 부자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님께서 현명하셨으니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불가의 가르침대로라면 그 다음 우리 애들이 탕자가 될 차례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를 여러 달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은 내가 빈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애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작하였다. “아빠는 돈이 없으니 장차 너희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그러니 행여 뭘 물려받을 생각을 하지 마라. 다만 부모가 되었으니 공부하는 것은 책임지마. 그러니 너희들의 앞길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좋다.”

내가 돈이 없다고 했으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돈을 풍족하게 쓰면 아이들이 내 말을 믿지 않을게 빤했다. 그래서 집도 삭을세나 전세로 살았고 애들 용돈도 짜게 주었다. 나중에 들으니 애들이 초코파이도 마음 놓고 사먹지 못했다고 하니 친구들에게 짠돌이로 비쳐진 모양이다.

70년대가 지나면서 자가용 붐이 일었다. 의사라면 대부분 자가용을 가지게 되었다, 동생마저 차를 사니 아이들이 우리도 자가용을 사자고 성화였다. 그러나 “기름도 한 방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자가용이 웬 말이냐! 나중에 7광구에서 기름이 나면 그때 사자.”하고 달랬다.

1983년에 한국병원을 개원하였는데 의사 중에는 필자 혼자 차가 없었다. 그러니 직원 경조사 때에는 다른 과장의 차를 얻어 타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차를 사라는 권유를 받았다. 8개월을 버티다 결국 사고 말았다.

아이들은 자기 살 궁리를 하느라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큰딸이 대학 3학년 때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는데 부모의 세금납부서가 필요하다 하여 아무 생각 없이 내 주었더니 이렇게 세금 많이 내는데 어떻게 우리가 가난하냐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실직고하였다.

큰딸이 서른 살이 되었을 때에 다른 일로 전화를 하다가 “전에는 초코파이도 사 먹지 못 할 정도로 용돈을 짜게 주셔서 많이 원망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아빠가 옳았어요.”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 이젠 너도 어른이 되었구나.”하고 칭찬했다.

근래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 아이들을 너무 귀여워하는 나머지 아이들의 장래를 망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송복 교수께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소위 지도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옳은 지적이라는 생각이다. 그저 공부만 잘 하면 오냐오냐 하면서 키우니 올바름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끈기도 없이 자란다. 우리나라를 두 동강 낸 사태도 어찌 보면 이 올바름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 자식들이 잘못된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허무한 일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자신의 업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식 교육에 신경을 쓴다. ‘농사 중에 가장 중요한 농사는 자식농사다.’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을 되새겨 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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