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을 떠난 시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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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여행을 떠난 시인을 기리며
  • 김동현 문학평론가
  • 승인 2019.11.0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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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성 시인 1주기, 제주작가회의 조촐한 추모의 밤

시나브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제는 나이를 숨길 수 없는 시인들이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리기 위해 토요일 저녁 제주문학의 집으로 향했다. 문충성 시인(1938-2018). ‘제주바다’의 시인이자 제주작가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던 고인의 1주기를 맞아 후배 문인들이 연 조촐한 추모의 날이었다. 1년 전 시인의 부음 소식을 듣고 그와 친분이 있던 몇몇 문인들은 서둘러 뭍의 장례식장에 가려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항공권 전부가 매진이었다. 건널 수 없는 바다가 원망스러웠다. 제주 출신으로 시인의 투병을 옆에서 지켜봤던 김진하 시인 편에 애도의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2일 故 문충성 시인 1주기을 맞아 후배 문인들이 조촐한 추모식을 열었다.ⓒ강봉수 시인
11월 2일 故 문충성 시인 1주기을 맞아 후배 문인들이 조촐한 추모식을 열었다.ⓒ강봉수 시인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2019년 『제주작가』 봄호에 추모 특집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가버린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삼스러웠다. 비어가는 가을 들판 같은 시간이었다. 황망하게 시인을 보낸 후배 문인들이 1주기를 맞아 조촐한 추모식을 열었다.

시인이 제주작가 초대 회장을 맡았을 때 사무국장이었던 김수열 시인이 팔을 걷어붙였다. 제주작가회의 회장인 이종형, 홍경희 시인을 포함해 회원들도 품앗이 하듯 거들었다. 생전 고인의 시집을 출판하면서 인연이 깊은 도서출판 각의 박경훈 화백은 제사상 앞에 놓일 고인의 영정 사진을 준비했다. 조촐한 젯상앞에서 후배 문인들이 미처 올리지 못한 추모의 묵념을 1년 만에 올렸다. 제사상에 국화 송이가 쌓이고 술 몇 잔이 고인을 위해 올려졌다.

고인과 오랜 인연을 맺었던 나기철 시인이 마이크를 들었다. 추모의 마음은 깊지만 분위기는 침울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시집 제목처럼 “바닷가에서 한철”, 고인과 울고 웃으며, 때로는 다투고, 혹은 토라지면서 긴 추억을 함께 한 세월만큼, 딱 그만큼 만이었다.

한 번 전화를 걸어오면 30분은 기본이었다면서 후배들과의 오랜 통화를 예사로 하던 고인을 회상하면서 간간히 웃음도 새어나왔다. 생전 제주작가회의와의 만남이 자신의 시세계에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하던 고인이었다. 고인의 시 ‘이재수야 이재수야’는 그의 초기시와는 사뭇 다른 시풍을 보이는 작품 중 하나다.

마침 일본에 있어 함께 하지 못한 최상돈 가수가 고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의 음원을 보내왔다. “이재수야 이재수야/시퍼런 하늘 새로 열/날 벼락 꿈꾸지만”. 노래는 독백처럼 낮게 시작되었다. “눈물로 시작한 사랑/눈물로 저물고 어둑어둑/청파동/그 어디쯤/그대 버혀진 머리/바람에 흔들리며/이재수야 이재수야”. 목소리는 11월의 어둠을 긁어내렸다.

추모의 마지막은 생전 그가 육성으로 남긴 시 낭송을 듣는 시간이었다. 몇 해 전 김수열 시인이 <제주의 소리>에 연재를 하던 때, 시인이 직접 남긴 음원이 다행이 남아있었다. 나즈막한 시인의 육성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2일 열린 문충성 시인 추모식에 후배 문인들이 헌화하고 있다.ⓒ강봉수 시인
2일 열린 문충성 시인 추모식에 후배 문인들이 헌화하고 있다.ⓒ강봉수 시인

 

안경 끼고 잠든 아내 곁에

고양이처럼 웅크려 잔다

안경 끼고 자면 잠속에서도

잘 보이는 것일까 저승까지도

그래서 알 수 없는 헛소리

코를 골고 가르랑가르랑

그 곁에 나는 아내

머리칼 냄새에 취해

고양이 잠을 잔다 이따금

코 고는 소리로 열리는

아내의 잠은 가난하지만

눈물겨워라 내 잠속까지

비집어들어 나를 흔든다

안경 끼고 자면 안 보이던

우리들 사랑도 보이는가

사십 년 동안 쌓아온 새하얀

우리들 한숨과 빈손

- 문충성, ‘안경 끼고 잠든 아내 곁에서’

고인의 음성을 들으면서 후배 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 했다. ‘역시 본인이 시를 가장 잘 낭송한다’고. 전화를 걸어오면 오랫동안 이야기를 건네던 시인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그 말속에 짙게 배어났다. 작지만 작지 않은, 슬프지만 침울하지 않은, ‘마지막 사랑노래’로 보낸 추모의 날이었다.

11월의 밤은 깊어갔고 고인을 추모하는 술잔은 한잔 두잔씩 쌓여갔다. '제주바다'의 시인. 그리고 무속서사시집 <자청비>를 출간하면서 제주의 언어를 시의 세계로 품고자 했던 제주의 시인.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다시금 빌어본다. 마지막으로 고인을 추모하면서 1년 전 썼던 글 한 자락 덧붙인다.

“모든 애도는 뒤늦은 후회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죽음은, 환원 불가능한 이별이기에, 아프다. 우리가 아파하는 이유는 죽음이 유일한 이별이자, 영원한 결별임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나’가 ‘나’로 태어나 ‘나’로 죽을 수밖에 없음을. 그 철저한 개별의 경험이 죽음이기에, 우리는 겨우 울음으로, 애도할 뿐이다. 우리는 한때 몸으로 만나, 몸으로 기억을 나눴다. 기억은 그렇게 ‘나’와 ‘너’라는 개별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소환했다.

내가 당신을 만나는 것, 당신을 만나 나와 당신이 우리라는 아픔과 우리라는 기쁨으로 함께 불리고 기억되는 순간을, 세월 속에 지층처럼 새겨 넣은 적 있었다. 삶이란, 겨우, 그런, 가느다란 지층의 무늬를, 함께 쌓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그 나눔의 대상이었던 하나의 신체가, 영,원, 히, 소멸했다. 그 갑작스러운 소멸 앞에서 한때 우리였던, 그리고 영원히 우리였을 거라고 믿었던, 그 수많은 우리들의 애도란, 그가 남긴 지상의 문장 하나를 줍는 일일 뿐.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그것밖에 할 줄 몰라서, 아프고, 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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