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가을 편지’, 그리고 ‘이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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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칼럼] ‘가을 편지’, 그리고 ‘이별의 노래’
  • 김덕남 주필
  • 승인 2019.11.17 23: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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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턱에서 읊조리고 싶은 가슴 아린 아름다운 시편(詩篇) 둘

가을이 깊었습니다. 단풍이 지쳐 제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겨울의 문턱입니다. 몸이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마음도 옹송그려집니다.

이 깊은 가을날,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먼저 하늘 여행길에 오른 친구들도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스산한 가을 풍경처럼 마음은 쓸쓸하고 어수선 합니다. 뭔가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습니다.

가을을 타는 가 봅니다. 가을 병 일수도 있겠지요. 멜랑꼴리 계절병 말입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랠 요량으로 고은의 시 ‘가을 편지’를 찾아 읽습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 편지’는 김민기의 노랫소리에 묻어 더욱 많이 불리어지고 알려 졌습니다.

‘가을 편지’는 가을이 깊어질수록 그리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입니다.

딱히 누구랄 것도 없이, 무작정 쓰고 보내고 싶은 마음의 편지, 그래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랠 수만 있다면 ‘가을 편지’는 그리움의 해독제일 수도 있습니다.

편지는 ‘손 편지’가 제 맛입니다. 또박 또박 눌러 쓴 손 글씨, 거기에 그리운 마음까지 꾹꾹 눌러 담아 쓴 편지가 ‘손 편지’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리움을 줄이면 그림이 된다고, 또 그림을 줄여 쓰면 글이라 했습니다. 그리움이 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을 낙엽에 담아 그림 같은 마음을 써내려 간 것을 엽서(葉書)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손 편지’는 문명의 이기인 고성능의 스마트 기기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E메일, 카톡, SNS, 손 전화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감성과 감동을 쟁여 보낼 수 있는 것이 ‘손 편지’라는 것입니다.

케이티는 여섯 살 이었습니다. 한 구글 직원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아빠 생일을 앞둬 케이티는 아빠회사의 상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꾹꾹 눌러 쓴 ‘손 편지’였습니다.

‘아빠를 사랑합니다. 아빠하고 놀 수 있게 우리 아빠 생일 날 하루만 휴가를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답니다. 삐뚤삐뚤 서툴게 쓴 ‘손 편지‘였습니다.

어린 딸의 ‘손 편지’를 받아 본 직장 상사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빠를 사랑하는 어린 딸의 마음이 ‘손 편지’에 올올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장상사는 케이티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물론 ‘손 편지’였습니다.

“케이티의 아빠는 세계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였습니다.

그리고는 케이티의 아빠에게 일주일간의 휴가를 허락했다고 했습니다.

어린 딸의 ‘손 편지‘가 직장상사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지요.

사실인지 픽션인지 여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누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딸의 진정어린 손 편지가 직장 상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 스토리’일 것입니다‘.

이 가을에 ‘손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내가 나에게라도 수채화 같은 먼 옛날의 추억과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은 가을날인 것입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도 괜찮겠지요.

누가 읽어도,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러울 것 없는 마음을 그려 담아내고 싶습니다.

마침 누가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던 박목월 시인(이하 목월)의 사랑이야기’를 보내왔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사연이었습니다만 다시금 들어도 싫증나지 않네요.

목월의 ‘이별의 노래’는 끝까지 이루지 못했던 여대생과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과 뒤척이는 그리움을 짜 올린 ‘사랑의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기울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놓고 홀로 울리라

아 아 아 아

너고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작시,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에 얽힌 사연은 흥미진진한 ‘러브스토리’입니다.

‘목월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대생과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1980년대에 나온 ‘박목월 평전․시선집’ [자하산 청노루](이형기 편저, 문학세계사 1986년)에서 전면적으로 다름으로써 세간에 기정사실로 알려져 왔습니다.

목월(1916~1978)이 한국전쟁 피란시절, 대구에서 알게 된 여대생 자매가 있었습니다.

자매모두 목월의 시를 좋아해 그를 자주 찾아왔답니다. 처음에는 흔히 있는 펜과의 만남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휴전이 되어 목월이 서울로 올라왔고 서울의 대학들이 문을 열자 두 자매 여대생도 상경했다고 합니다.

이후 1954년 초봄부터 목월은 두 자매중 동생인 여대생과 서울의 밤거리를 거니는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데이트를 했던 것이겠지요.

그해 여름이 가고 가을바람이 불어 왔을 때, 목월은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예의 여대생과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를 했던 것입니다.

제주에서의 동거생활 넉 달 쯤, 제주의 겨울바람은 스산하고 차가웠습니다.

눈이 희끗 희끗 내리는 매운 겨울 날씨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월의 부인 유익순(1920~1997)이 두 사람이 사는 집에 나타났습니다.

부인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 앞에 보따리 하나와 봉투를 내놨다고 합니다. 보따리에는 목월과 여대생이 입을 겨울 옷 가지, 봉투에는 생활비에 보태 쓸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부인은 그러면서 두 사람의 고달픈 객지 생활을 위로하고 역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서울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이에 여대생은 목월부인을 향해 “사모님"이라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그 후 목월과 여대생은 헤어졌고 ‘이별의 노래’는 이 같은 이별의 슬픔을 엮어 떠나는 연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목월과 여대생의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되레 ‘빗나간 사랑’, ‘여대생과의 불륜’으로 매도될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월 부인의 담대하고 푸근한 정리(情理)가 더 크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목월과 여대생의 ‘러브스토리’가 지저분한 스캔들로 작용하지 않고 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목월 부인이 보여줬던 절제된 따뜻함과 너그러움, 지아비가 사랑한 여대생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며 스산한 가을 풍경을 녹이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자 이별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라도 ‘가을 편지’를 쓰면서 ‘이별의 노래’를 읊조리고 싶은 늦가을입니다.

만추(晩秋)의 계절에 잊었던 이, 그리운 이들에게 ‘손 편지’ 한 꼭지라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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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019-11-18 10:15:17
불륜까지 감싸안을 수 있는 것이 용서와 배려인가 봅니다. 그러니 상록수의 실제 남자 주인공이 돌아가시자 채영신의 묘 옆에 묻어드렸다는 교수 부인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용서와 배려가 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