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문희씨(사진=김재훈 기자)
엄문희씨(사진=제주투데이DB)

안녕하세요? 제주도의회 강충룡 의원님.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사는 제주도민 엄문희입니다. 국토부의 일방적인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용역수립에 항의하며 42일 단식 투쟁했던 제주도민입니다.

뉴스 하나를 보았습니다. 바로 의원님이 ‘제주 제2공항 반대하는 이주민을 ’반대 전문가’로 호명하며 “제주도를 떠나달라”고 말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민들의 30년 숙원사업인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육지에서 내려온 반대 전문가들”이라며 “이들이 제주도를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헬스케어타운이 영리병원 불허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1조 원에 이르는 도민 혈세가 나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여기에 관해서 얘기 안 한다”며 “또 제주 농산물이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해상물류비 지원은 도민의 숙원사업이기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업인데도 불구하고 기재부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데 ‘제2공항 반대 전문가들’은 이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하셨다지요?

저는 어제 강정의 한 선과장에서 늦도록 귤 포장을 하고 돌아와 한동안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제가 의원님이 호명해 ‘제주를 떠나’라던 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제2공항을 반대합니다. ‘이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반대 전문가’ 또는 ‘외부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습니다. 딱 제가 그 사람입니다. 공항이 많은 문제를 잉태하고 있기에 그 일의 본격적인 시작에 열심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이거나 공무원도 아닌데 헬스케어타운이나 해상물류비 지원 문제엔 왜 나서지 않냐고 거론하셨다니, 이제 대체 무슨 말인가 생각 들었습니다. 먹고 사는데 바빠 거기까지 질문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요? 

제주에 와서 처음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이주민’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제주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 살고 있어서 그렇게 부르기도 하는 모양인데요, 부모님(아버지가)이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 사람’이라는 위치를 획득한 자면 그의 자녀는 제주 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제주 사람’이 되더군요. 이런 것을 보면 ‘이주민의 경계‘는 과연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 이주민은 누구입니까? 40년을 살아도 이주민 취급당한다는 분을 만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밖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하고 마흔 살에 제주로 온 사람은 그 부모가 제주에서 태어났던 사람이라 이주민 소릴 듣지 않더군요. 이주민과 이주민 아닌 자의 기준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런 기준은 누가 언제 마련했습니까? 그리고 그 기준에 어떤 사람들이 동의했습니까? 

저는 제주 아닌 다른 곳에서 살면서 ’이주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에서 온 사람들이고 어딘가로 떠나기도 하고 되돌아오기도 하는 존재들 아니겠습니까? 물론 제주는 제주만의 특성이 있다는 말도 함께 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의원님께 처음 듣는 것도 아닙니다. 제주에서 저는 곧잘 이런 이름으로 호명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이 이름은 제주에서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배제의 수단이라고. 왜냐면 공인(공공)에게서 그런 호명을 더 자주 당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에 국토부가 조용히 강행해버린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용역수립에 항의하며 42일간 단식 투쟁을 하던 중에 제주시장 고희범님은 제주도청 앞 천막 가운데 성산읍 난산리 주민 김경배님의 천막과 이주민이라는 호명을 받는 사람들이 포함된 천막을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김경배님의 천막은 ‘하나의 우주가 깃든 천막’인데 그것을 행정대집행 하게 되어 마음 아팠다고 하면서도 함께 대집행의 폭력을 겪은 천막 사람들에 대해선 ’김경배의 것과 다른 것이‘라며 선을 그었죠. 제주도청 공무원들도 같은 말을 자주 했습니다. 제주 도정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도민을 구분 지었습니다. 국회의원 강창일님도 공항 문제에 더 관심 가져달라는 사람들의 항의를 듣는 자리에서 사람들을 자기 임의로 구분 지으며 ”여기 이 사람은 제주 사람 같은데 당신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왜 내게 항의하느냐’는 식의 말을 하다가 더욱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제주 공공은 왜 하나같이 제주도민을 특정한 기준으로 구분하는 겁니까?

이런 일들을 통해 보면 ‘이주민’이라는 말은 공공이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시민을 불순하거나 함량 미달의 존재로 만들어 문제를 회피하려는 기제가 깔린 저열한 권력 사용’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으로 ‘상대의 질문에 대답할 의무’를 던져버리는 일을 지금 의원님 같은 공인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질문하는 시민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어떤 정체성을 덮어씌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그 이름이 ‘이주민, 제2공항 반대하는 이주민, 반대 전문가’지만 과거에도 비슷한 이름이 또 있었습니다. ‘외부세력’이나 ‘전문시위꾼’ 심지어 ‘빨갱이’도 있네요. 그런데 이 방식은요, 상대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말이고, 그 대화하지 않을 권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비겁한 말이고요. 실제로 이런 프레임으로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지금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심지어 공공이 책임을 다해야 할 도민(시민)에게 드물지 않게 이런 배제의 언어를 사용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사람, 도민 아닌 도민’을 생산한다는 점에 크나큰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제주도의 공공은 모든 제주도민이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만 도민으로 인정한다고 지금 고백하시는 겁니까?

더구나 어떤 사안에 대해 ‘떠나달라’는 표현으로 ‘반대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2019년도에 공인이 공개된 공적 업무 석상인 제주도의회 제378회 2차 정례회 4차 본회의에서 진행된 도정질문에서 발언할 수 있’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주도의회는 이런 공개 발언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대에도 수많은 배제가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이미 제2공항 문제가 그런 수많은 배제와 차별과 혐오의 기제 위에 세워지려고 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제2공항 반대자로서 입장을 세세히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이 내용은 다른 경로를 통해 밝혀왔고 계속 밝혀나갈 것입니다. 다만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한 가지는, 의원님이 지금 소수의 반대자를 의원님의 권위로 일망타진하려는 것처럼 지금 제주에 들어서는 공항이 똑같은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특별히 나쁜 자로 명명 당하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자기결정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 앞으로 올 세대와 인간에 의해 생존을 박탈당하는 뭇 생명은 지금 일에 질문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는 두려움이 현실이 된 광경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본격적인 논의는 하지 않겠지만 제주에 들어설 공항이 어찌 제주만의 일이 되겠습니까? 결정적인 결정이야 제주도민이 한다지만 이 과정은 세상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강정을 생각해봅니다. 강정의 일이 강정에 살고 있던 사람들 만의 일이 맞습니까? 그 마을에 들어선 해군기지가 제주 사회와 제주 생태계는 물론 우리나라를 넘어 동아시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어찌 이것을 강정에 사는 사람들 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군사기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공공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인권탄압에 대한 보고서가 얼마 전 나온 것을 의원님도 아실 겁니다. 제주 도정과 국가정보기관과 해군고위관계자가 당시 강정 마을회장을 먼저 만나 했던 이야기와 ‘마을의 분열은 좋은 것이다’라고 했던 사례를 의원님도 모르지 않을 겁니다. 이제 그 강정에 후쿠시마에서 피폭당했던 미군의 핵 항공모함이 들어온 것도 아실 겁니다. 국가나 권력의 일방적 강행에 맞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억압하려 들다니요? 지금 제주에서 그런 말이 다시 나오다니요?

지금 제주도의 일이 제주도만의 일이 아님을 자각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염려하고 작은 단계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은 누구라도 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엔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싸우는 일도 있습니다. 저(우리)는 우리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피해당할 모든 존재를 기억하며 ‘지금 여기’의 결정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함께 싸웁니다. ‘세계 시민의 책무성’과 ‘인류로서의 자각’으로 싸웁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저를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원님은 세비라도 받으시겠지만 저는 어디서 돈 십 원도 받은 적 없습니다. ‘전문적인 반대자들’이라는 말에 질문드리는 겁니다. 세비 받는 공공이신 분이 감히 저에게 그런 말을 하시다니요? 저는 이 세상에 대한 염려와 사랑으로 싸웁니다. 내 아이들이 공명정대하게 경쟁하고 모든 이웃 존재들을 사랑하며 사는 세상을 위해 ‘지금 여기 우리의 과정’이 지루하나 긴 대화를 통해 최선의 길을 찾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저(같은 사람들)에게 제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주민’ 또는 ‘의원님과 의견이 다르다고 ’전문적인 반대자’라는 계급 표를 붙여서 제주를 떠나라니요?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의원님이야말로 어쩌다 태어나보니 제주도였는지 몰라도 저는 제주를 사랑해서 이곳에 온 사람입니다. 의원님이 무슨 권리로 저에게 나가라 말라 할 수 있습니까? (더는 헌법을 예로 들지 않겠어요) 저는 저와 생각이 다르고 함께 살면 제주를 위험에 빠뜨릴 것 같은 사람도 지루하게 설명하고 이야기 나누며 결국 함께 살기를 청하겠습니다. 쓸모없으면, 내게 필요 없으면, 나에게 달콤하지 않으면 없어져도 되는 대상으로 저를, 그리고 누군가를 함부로 호명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계는, 이 세상은, 이 제주는 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그 어떤 것도 경멸하지 않으며, 귀찮고 번거롭고 짜증 나도 그 존재를 기꺼이 껴안고 가슴 아프게 질문을 받겠습니다. 

의원님은 자신의 터전을 사랑하는 많은 제주도민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의원님은 과정을 함께 겪고 있는 사람들을 양분하여 약하고 불편한 존재들을 경멸함으로써 의원님에게 주어진 공적 책무를 내팽개쳤습니다. 의원님의 그런 태도는 제주를 안전하게 지키거나 가꿀 수 없으니 이 ’제주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시기를 청할까 고민했으나 차마 그 요청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부탁드리오니 경솔한 행동에 공개 사과하고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편지를 쓰는 ’강충룡‘은 결코 개인의 이름이 아닙니다. 한 개인에게는 염려로 그칠 일이었으나 제주도의회 의원직을 가진 분이기에 저 역시 이렇게 편지로나마 도민의 의무로서 성심을 다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도 제게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를 살피며 더욱 성숙한 시민으로 의원님과 다시 또 만나겠습니다. 

의원님의 언행에 질문하고자 저를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의원님도 공개적으로 대답해주십시오. 부디 의원님의 작은 결정하나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더욱 숙고해 주시기를 마지막으로 청하며 동료 시민으로서 건강을 빌어마지않습니다.

- 2019년 11월 21일에 엄문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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