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지소미아 파기, 유지 후유증의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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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지소미아 파기, 유지 후유증의 표류
  • 제주투데이
  • 승인 2019.11.2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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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안보에 한국은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국 방파제론>을 문재인 대통령이 제기한 발언이었다. 필자는 이 기사를 읽고 어리둥절 속에 깜짝 놀랐다.

일본에 대한 <한국 방파제론>은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제기하여, 일본 정부에 5년 사이에 60억 달러 정부 차관을 요청했었다. 당시 일본은 스즈키 수상이었는데 이 문제를 놓고 한.일 양국이 첨예한 대립 상태에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한국 방파제론'에 일본은 놀랬지만 많은 우여곡절 속에 40억 달러로 삭감하여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합의 과정의 갈등으로 한.일관계는 당시 최악이라는 평까지 나돌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과도 걸끄러운 상태였다. 1981년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마치고 귀국 도중 기내에서 스즈키 수상은 "일.미안보조약에는 군사적 협력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발언과 귀국 기자회견에서는 "일.미동맹에는 군사적 측면이 없다."는 재강조 발언에 미.일 양국 사이는 발칵 뒤집혀진 상태였다.

이 문제를 놓고 스즈키 수상, 당시 미야자와 관방장관, 이토오 외무대신이 의견 대립으로 이토오 외무대신이 사임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발전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과도 가장 기본적인 동맹의 해석을 놓고 심한 의견 대립으로 일본 정부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이듬 해인 1982년 11월 나카소네 수상이 취임하여 1983년 1월 12일부터 13일까지 한국을 전격 방문하여 새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했다. 일본 수상이 취임 후, 첫 방문국은 언제나 미국이었는데 나카소네 수상은 이 전례를 무시하고 그 사이 갈등을 빚은 한국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후,  동 1월에 미국을 방문했다. 이웃 국가인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미국과의 대화에서 그 기반으로 삼는다는 외교 전략은 탁월했다.

나카소네 수상이 한국 방문에서는 일본의 한국특파원 기자들로부터 한국어를 배워서 청와대서의 첫 인사는 한국어였으며, 저녁에 열린 식사회에서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노래를 한국어로 불러서 주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도 나카소네의 외교 전술로서 전해 내려 오고 있으며, 필자도 '한국 방파제론'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냉전시대로 날카롭게 대립하던 1980년대 초의 '한국 방파제론'이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른 대통령도 아닌 평화를 앞세워 중국, 북한에 대해서 따끔한 말 한마디 못하는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제기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방파제론은 북한, 중국, 러시아의 공산주의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공감대가 확고한 시대였다.

지금은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까지도 한국이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이념이 애매모호하다면서 의심하여, 일본 정부는 그래서 반도체 재료 수출도 규제한다고 하는데 새삼스럽게 '한국 방파제론'이 제기되니 일본이 납득할리 만무하고 한국 국민은 더욱 그렇다. 그것도 지소미아 파기 선언과 함께 '한국 방파제'론이 나왔으면 그런대로 수긍할 사람도 있었을런지 모르지만 나중에야 곁붙이기 식으로 첨가했다. 

결국 지소미아는 안보 논리로 스스로 파기한다고 선언해서 몇 개월간의 대소동을 이르키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스스로가 철회해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추태를 벌였다. 긴 안목에서의 외교 전략의 부재에서 어디로 튈런지 모를 럭비공 같은 외교가 불러이르킨 현상이다. 

징용공 배상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재료 수출 엄격화가 나오고, 또 그 대항책으로 지소미아 파기기 제기되었다. 지금 반도체 재료 수출 엄격화 문제는 그대로 남았는데 지소미아 유지를 선언했으니 한국 정부는 그 동안 일본 정부가 반도체 재료 수출 엄격화가 보복 조치였다는 안보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 논쟁에 대해서는, "일.한관계는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섰습니다. 1965년 일한조약의 위기이며 아주 심각합니다." <조선분단의 기원>으로 마이니치신문이 창설한 '아시아. 태평양상"을 올해 제31회 수상자로 선정된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학 명예교수가, 11월 18일자 마이니치신문 석간 인터뷰의 첫마디였다.

그는 전문의 국제정치론과 현대 한국.조선정치론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한국통 교수이다. 일본의 보수, 진보 관계 없이 학자로서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발단은 한국 대법원이 2012년과 5월과 2018년 10월에 일제시대 한국 징용공 개인 청구권과 외교보호권은 삭멸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인 징용공의 전시동원을 합법이라는 것은 한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충돌한다"고 주장하고 일본기업에 손해배상을 명했습니다."

"이것은 한국 대법원의 독주로,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외교상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과 다릅니다. 일본은 금년 7월에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재료 운영을 고쳤습니다. 한국은 이것을 징용공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했고 일본은 '일.한관계 사이에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후. 한국은 지소미아 파기 선언을 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한정부는 악수(惡手)의 연쇄로 역사 마찰을 무역, 안보 분야까지 확대 시커버려서 지금까지 쌓아온 상호 의존의 수평 분업 체제를 끊어버리고 있습니다."

한국 대법원의 독주에 대해서 그는 늦어진 사법부의 '민주화"라고 했다. '권력의 시녀'였던 한국 재판소가 정부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하여 때로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고 했다.

2017년 5월에 등장한 문 대통령은 재판에의 간섭을 '적폐'의 일부로 보고, 그것을 방치하는 정책을 취했다면서 박근혜 정권 때 정지되었던 징용공재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여 배상 판결이 나왔다고 했다.    

지소미아 유지가 막판에서 가까스로 해결되었지만 징용공, 반도체 문제는 어느 것 하나 해결을 보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지소미아 해결의 한.일 발표를 두고 한국은 합의 내용과 다르다면서 서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강한 비난 속에 일본에 항의를 하니 일본이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지야먀 경제사업성 대신은 사과한적이 없으며 합의 내용 그대로 발표했다고 했다. 스가 관방대신도 그런적이 없다면서 한국의 연이은 항의는 생산적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하겠다고 했다. 한국이 소득없는 지소미아의 일방적 유지는 면목이 안 서니까 한국 국내를 향한 발표라고 일축했다. 일본의 TV 방송국마다 이러한 뉴스를 계속 내보내니 필자만이 아니고 동포들의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극동의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공산국가이다. 한.일 양국의 악화는 3개국에 어부지리만을 안겨 준다. 이러한 지정학적 속에서 민주 국가인 한.일 관계가 안보 논리 속에 악화된 것은 아이러니이다.  

역사인식에서 빚어진 안보 논리 속에 한.일 양국의 갈등은 국민적 갈등이라기 보다 양국 최고 지도자의 개성에 의한 신뢰 관계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양국 정부의 각성 운운보다 아무리 보수, 진보로 성향이 다른 양국 정부의 최고 지도자라지만 통렬한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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