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의 경제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핵심은 지역경제다.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지방자치권이 실제로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지역경제 활성화는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현장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맡고 있다. 제주경제의 실상을 알려면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경제인들이 바라보는 제주경제의 지금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비전이 필요할까. <제주투데이>는 경제인들을 직접 만나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김종현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김종현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이젠 많이 알려져 있죠. 청년을 인재로 키워내는 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을 길게 가지고 우리 사회가 가진 모든 자원을 활용해 청년들에게 훈련의 시간과 경험, 실행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거죠.”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와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체제와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 등 어느 때보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 게다가 제주 지역의 경우 자영업과 영세업의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의 특성상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많은 이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엔 공감하지만 누구도 쉽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 시기에 ‘인재 육성’을 강조하는 이가 있다.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만난 김종현 센터장은 “모두가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혁신을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시도가 보이지 않아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더큰내일센터는 지난 9월 문을 열어 ‘탐나는 인재(미취업 청년)’를 대상으로 교육훈련과 함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첫 6개월은 월 150만원 이상의 지원금과 더불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기본공통·직무심화 교육이 이뤄진다. 

이후 각자 분야의 문제를 발굴해 실무와 연계하는 경험 기간(6개월)과 인턴십 프로그램(취업형) 및 공모전(창업형) 등을 통해 실행하는 기간(12개월)을 거쳐 지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센터 사업의 목표다.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김종현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내부. (사진=김재훈 기자)

#미래 유망 산업이 궁금하다면, 청년에게 물어라

김 센터장은 ‘청년’에 주목한 이유를 스웨덴 남부에 위치한 말뫼시(市)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이곳은 항구도시로 조선업이 발달해 195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나 오일쇼크 등을 거치며 쇠퇴하기 시작, 1990년대 초반엔 시 일자리의 25%가 사라지기까지 했다. 

이후 시는 기반 산업을 제조업에서 신재생에너지와 IT, 관광산업으로 전환해 추진했다. 이 정책은 성공적이었고 말뫼시는 지난 2016년 OECD가 선정한 혁신도시 4위, 스웨덴 정부가 지정한 신재생 에너지 활용 우수 사례 등 ‘혁신’을 대표하는 도시가 됐다. 

“말뫼의 성공을 이끌어낸 리팔루 시장에게 비결을 묻자 ‘유망한 산업에 대한 답은 오로지 청년들이 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청년들이 일하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것이 미래산업이라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 전체를 실험실로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 센터장은 “이토록 전 세계가 어떻게 혁신적인 인재를 길러내고 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가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말뫼시 역시 어려운 재정 상황에도 ‘말뫼 대학’을 세워 운영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며 프랑스의 ‘에꼴42’나 미국의 ‘미네르바 스쿨’ 등 선진국은 새로운 방식으로 인재 양성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사람을 키우기보단 일단 기업체에 돈을 풀어서 채용 규모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열이 나면 왜 열이 나는지 근본 원인을 찾아 병을 고쳐야 하는데 우리의 방식은 냅다 얼음찜질만 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김종현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김종현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혁신 인재와 혁신 기업이 만나는 지점에서 양질의 일자리 만들어져“ 

김 센터장은 특히 일자리를 찾기 위해 육지로 나갈 수밖에 없는 제주 청년들에게 ‘미래’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들 눈높이에 맞는 기업이 없으니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가 계속되고 고학력으로 갈수록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육지로 나가는 수가 많아 경제활동 참가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게 제주의 현실”이라며 “우선 청년들이 제주를 떠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이 육지로 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제주에서 자신의 경력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제주에서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경력을 개발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질의 일자리 수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인재 육성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센터장은 “결국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청년은 갈만한 일자리가 없다고 하고 기업은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한다”며 “이 악순환을 끊어 내고 선순환 구조로 바꾸기 위해선 우선 혁신적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인재들을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기업과 연계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며 “그 일자리에 혁신적 인재가 다시 결합해 성장해 나간다면 청년이 떠나지 않고 좋은 기업들이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사진=김재훈 기자)

#“체질 개선에 조급함은 금물…장기적 시야 가져야“

또 “이를 통해 작지만 강한 ‘강소형’ 기업구조로 재편시켜야 제주가 살 수 있다”며 “이런 선순환 구조를 통해 혁신의 에너지들이 서로 교류하며 시너지를 일으켜 지역 내 혁신 역량의 총합을 늘려야 한다. 결국 혁신 인재, 즉 사람을 키워야 하는 일이고 그것이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매커니즘”이라고 자신했다. 

김 센터장은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조급함’이라고 말했다. 결실을 맺기까진 일정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를 기다리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눈앞의 성과에 매몰되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며 “씨를 뿌리고 거름과 물을 줘야 새싹이 트고 훗날 과실을 맛볼 수 있는데 우리는 앞단의 일은 대충 건너뛰고 서둘러 새싹을 보고 수확만 하려 한다. 이는 애초부터 성립이 불가능한 가설”이라고 단호히 얘기했다. 

이어 “제주 경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두 알의 항생제나 영양제로 해결할 수 없다”며 “체질을 근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단기적 시야로는 체질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김종현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11일 제주시 오라이동 제주더큰내일센터 로비에서 김종현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행정의 혁신과 협력의 문화도 반드시 필요“

김 센터장은 지역경제 혁신을 위해 기업과 인재 육성이 연계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정의 혁신과 협력의 문화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칸막이 행정을 넘어서야 한다. 협력을 중시하는 행정 혁신이 꼭 필요하다”며 “뿐만 아니라 행정과 민간의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혁신은 자율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주 사회 전반에 협력의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재를 배출하는 것 역시 협력을 통해서만 이뤄진다”며 “청년을 응원하고 기회를 주고 좋은 기업들이 함께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지역의 어른들이 좋은 멘토가 될 때 인재는 육성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의 내일을 스스로 정의할 때 비로소 주체될 수 있어“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은 그가 현재 ‘올인’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자신만의 정의’를 정립하기를 당부했다. 

“혁신의 시작은 새로운 정의에서 시작됩니다. 만약 의자를 두고 ‘4개 다리가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혁신의 여지는 없어지게 되죠. 대신 ‘앉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다리 수와 상관없이 더 창의적인 의자를 디자인할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서 ‘신체와의 접촉이고 몸을 지지해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요? 앉는 것을 넘어선 혁신적인 의자가 나올 겁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 ‘세상에 기여하는 좋은 노동은 무엇인가’, ‘좋은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 등에 대해 재정의할 줄 알아야 한다”며 “새로운 문제 설정과 정의에 대한 안목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어 “청년은 제주의 내일을 스스로 새롭게 정의할 수 있어야만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며 “미래의 모습은 기성세대의 선택이 아니라 청년세대의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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