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주고받는 대거리가 까칠하다. 말의 행간에는 가시 돋친 감정이 거칠다.

먼저 둘의 관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둘은 인척관계다. 정확히 말하면 원지사의 부인과 송위원장은 사촌(고종)지간이다. 원지사 부인의 어머니와 송위원장 아버지는 오누이다.

원지사 입장에서는 송위원장이 처 사촌오빠인 셈이다. 송위원장이 원지사보다 네 살 위다. 그러니 사촌 처형이다.

괸당(친인척)문화가 촘촘하게 짜여 있는 제주에서 원지사와 송위원장의 이러한 관계는 그만큼 가깝고 우애가 돈독해 질 수 있는 사이다.

또 둘은 고등학교 동문이다. 제주제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고향도 산남으로 일컬어지는 서귀포시 관내다.

이른바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 결속력이 강한 삼연(三緣)으로 얽혀져 쉽게 끊어질 수 없는 질긴 인연이다.

송위원장은 이런 인연으로 2014년 제주도지사에 출마한 원희룡지사를 막후에서 도왔다.

지사 당선 후에는 원희룡도정 인사에도 직간접으로 조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송(재호)․일(고)․교(회)‘ 등 원도정 인사가 ’송일교 인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만큼 둘의 관계가 각별하고 돈독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 지난해(2018)지방선거에서 원지사는 야당(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또 송위원장은 2017년 19대 대선당시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국민성장위원회 위원장 역을 맡았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으로 정부출범에 참여 했었다. 이후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2017,8~2018,3)을 역임했고 지금은 대통령직속 국가균형 발전위원장 직을 맡고 있다.

원지사와 송위원장이 이처럼 비록 집권여당과 무소속으로 갈라졌지만 이 정도로 둘이 척질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그것이 원한을 품거나 반목할 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두 사람 사이의 가시 돋친 설전에 온갖 설왕설래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송위원장은 지난 28일 원지사를 향해 “버르장머리 없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핀잔을 줬다.

이날 제주도의회를 방문하여 기자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다.

여기서 송위원장은 원지사에게 ‘버르장머리 없다’는 발언에 이어 “원지사가 자기 진영에 호소하기 위해 소위 보수 심장 대구에서 말을 지어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왜 그런 실례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버르장머리 없다”는 말은 윗사람에게 예의가 없다는 핀잔인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전날 원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원지사는 27일 대구 수성관광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포럼 21’주최의 정책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변이야기를) 잘 듣는 것 같지만 안 받아들이고 특정한 문제에 굉장히 고집이 세다. 소수 측근에 둘러싸여 바깥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 건, 남자 박근혜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던 것이다.

원지사를 향한 송위원장의 ‘버르장머리’ 힐난은 ‘문대통령을 남자 박근혜’에 빗댄 것에 대한 반격이나 다름없다.

이에 원지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발끈했다. 송위원장 발언이 알려진 28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거침없는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공항 업무의 책임자인 국토부 장관을 제쳐놓고 대통령의 진의를 따로 주장하는 자칭 심복은 비선 실세인가?”

“대통령은 주무 장관에게 주는 지침과 다른 비밀 밀지를 업무와 관련이 없는 사람을 통해 일선 지역의 국민들에게 내려 보낸다는 것인가? 진정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 소통과 국정 운영이 이런 방식인가?”

“도지사가 언론과 토론회에서 한 이야기를 버르장머리 없다고 하는 것이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실제 모습인가?”

감정은 거칠고 질문은 격앙됐다. 문장 곳곳에 분노의 심정이 넘쳐났다.

‘자칭 대통령 심복들’, ‘대통령의 진의 해석한다고 끼어드는 사람’, ‘대통령 직속임을 매번 힘주어 강조하는 위원장’ 등등 동원된 표현은 날이 섰고 시니컬했다.

원지사와 송위원장,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사람의 감정 싸움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정치적’이다.

‘정치적 포석’이나 ‘정치적 밭갈이’로 보는 것이다.

원지사의 경우 최근 보수대통합의 역할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중앙정치권의 보수 진영에서 그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의 기대도 없지 않다.

원지사의 문대통령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은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몸 불리기 일환으로 보는 쪽도 있다.

예의 ‘아시아 포럼 21’ 주최 토론회에서 원지사는 “다가오는 폭풍우 시대의 풍운아가 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크호스로 저도 있다”고 했다.

보수통합 과정의 역할 의지와 중앙정치를 향한 욕심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원지사가 “중앙정치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소리는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많이 나돌았다. 중앙정치에 배가 고플 것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문대통령을 향한 원지사의 ‘남자 박근혜’ 발언도 이 같은 중앙정치에의 꿈을 향한 신호탄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불확실성의 꿈을 위해 확실하게 거머쥐고 있는 현재의 권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역할론이 여의치 않을 경우의 수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2022년 지방선거에서의 ‘3선 도전’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과 송위원장에 대한 거의 인신공격성 반격은 ‘중앙정치’와 ‘’2022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장기 포석으로 볼 수도 있다.

사전에 잠재적 경쟁자(송위원장)에게 보내는 “까불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원지사 입장에서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성격이 짙다.

송위원장은 어떤가. 만만치 않다. 대통령 직속의 장관급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다. 정치적 중량감에서 무시 못 할 무게다. 그만큼 정치적 몸피도 크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여권의 유력한 제주도지사 후보 군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원지사에 대한 ‘버르장머리’ 발언은 2022년 판갈이의 작은 신호음일 수 있다.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원지사에게 ‘버르장머리 없다’고 일격을 가해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여기서 나온다. 원지사에게  "한 번 붙어보자"는 도전장인 셈이다.

원지사와 송위원장의 이러한 정치적 샅바싸움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혈연 등 연고의식이 강한 제주지역 정치 특성상 인척관계인 두 사람이 죽기 살기식의 치열한 전투 상황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치는 연고주의로만 풀 수 있는 방정식은 아니다. 움직이는 생물인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이 적이 되고 오늘이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것’이 정치 세계인 것이다.

정치권력 앞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도 형식 논리일 뿐이다. 누가 쟁취하느냐가 열쇠인 것이다. 권력은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빼앗는 것이어서 그렇다.

그만큼 정치는 비정하고 야비한 것이다.

원지사와 송위원장의 ‘정치적 샅바싸움’을 불편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괸당’끼리 미래 권력쟁취를 위해 벌써부터 볼썽사납게 싸울 것이 아니라 제주도민과 제주의 미래를 위해 손잡고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지금은 아닌 것이다. 도민들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 꼬이고 격앙된 감정을 풀고 어깨동무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주를 위해 서로 힘을 합치라는 도민적 명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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