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지난 10일 밤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축구경기에서 베트남의 22세 이하 남자팀이 인도네시아 팀을 3 : 0으로 완파하는 것으로 베트남의 60년 숙원을 풀고 ‘박항서 매직’을 완성하였다. 작년에 스즈끼 컵 대회에서 성인 팀이 우승하였으니 이제 베트남은 명실 공히 동남아시아의 축구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항서 감독께서 베트남의 성인 팀과 청소년 팀을 함께 맡은 것이 2017년 10월이라고 하니 불과 2년 여 만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만, 쇠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집을 수 있는 국민은 우리나라와 베트남뿐이라는 말도 있듯이 베트남 국민들은 우리처럼 손재주가 좋으니 기술이 필요한 경기에 쉽게 적응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제 베트남도 어느 정도 궁핍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니 체력적으로도 개선되지 않았나 싶다. 베트남 국민들의 기쁨과 환호성이 마치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팀을 4강에 올렸을 때 우리가 내질렀던 것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박 감독께서 처음 베트남 팀을 맡았을 때에는 베트남 팀은 오합지졸이었다고 한다. 훈련이 끝나면 감독까지 나서 장비를 정리하는데 선수들은 그냥 쳐다보기만 했고, 식사 시간에도 선수들은 휴대전화 보느라 서로 말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선수들끼리 서로 대화하게 하려고 식사 자리에는 아예 휴대전화를 못 가져오게 하고 어기면 벌금을 물렸다고 한다. 선수들 서로 존중하도록 하여 팀워크를 이루니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하였고, 승리의 기쁨을 알기 시작한 선수들이 더욱 열심히 하여 오늘의 결과를 이루었다 한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던 히딩크 감독은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팀에게 패배한 후 중국 대표 팀 감독에서 해임 되었다고 한다. 중국 선수들은 아직도 단합이 되지 않고 시합에 지면 남 탓하기 바쁘다고 한다. 그러니 팀워크가 생명인 축구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베트남의 국민들께서 박항서 감독의 나라 국기라고 우리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이었다.

베트남이 어떤 나라인가! 불과 50년 전에 우리 국군에 의해 수 천 명의 목숨을 잃은 나라가 아닌가! 비록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자국 국민들이 타국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그 중에는 당연히 억울한 죽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원한을 쉽게 잊어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 사람을 감독으로 선임하고, 그 감독이 기적 같은 결과를 내자 그 감독의 국기를 흔든다는 것은 우리 상식으로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우리라면 우리 축구 팀 감독을 중국이나 일본 사람에게 맡기고, 그 사람이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오성홍기나 일장기를 흔들 수 있을까? 2002년에 우리들은 히딩크 감독의 성취를 높이 샀지만, 네덜랜드 국기를 이처럼 열광적으로 흔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더구나 네덜랜드는 적국이 아니고 우리를 도와주었던 나라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에 의해 600만 명 이상 희생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경구를 우리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이처럼 기적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성과를 얻기가 어려운가? 2002년 우리나라 사정이 지금의 베트남보다 나았을까? 그 이후의 상황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우리들은 어려움에 닥치면 잘 뭉치는 경향이 있지만, 평소에는 뿔뿔이 흩어지는 경향이 있다. 비단 운동에서 만이 아니고 우리 고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농산물이나 양식업 등을 살펴보면 모두가 자기 살 궁리만 하지 전체적으로 문제를 보려는 자세가 부족하다. 비단 일차산업에서의 문제 뿐 아니라 3차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숙박업소나 렌트카 업체들의 난립으로 모두들 어려움에 처해 있고, 대리운전이나 콜택시 등도 힘을 합쳐 회사를 만들면 기사들도 좋고 도민들도 편할 터인데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서로 화합을 하지 못 해 국가적으로 낭비가 심하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타다’만 하더라도 마치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어 런던 거리를 다닐 때 마부들의 저항 때문에 시내에서는 시속 4 Km로 달리고 자동차 앞에 시위꾼을 두어 자동차가 오고 있는 것을 알리도록 했던 일이 생각난다. 물론 택시업계에 지장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개혁을 못 하게 하면 얼마 없어 우리는 뒤처지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부르짖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힘이 약한 동물이 힘센 상대를 이겨내는 방법도 결국은 뭉치는 것이다. 초원의 왕 사자가 하이에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 하는 것도 하이에나들은 잘 뭉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 온 사회를 뒤덮고 있으니 서로 믿지 못해 신뢰가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정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믿음은 서로를 뭉치게 하는 필수요건이다.

우리 서로 하루에 거짓말 한 마디를 줄여 우리 사회에 신뢰가 쌓이도록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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