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해 주시면 반갑고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꼭 참석바랍니다. 회비는 만엔이지만 저희들도 내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초순, <재일본 조선문학예술가동맹 오사카지부: 이하 문예동> 허옥녀 고문으로부터의 메일이었다. 문예동은 조총련 산하 단체인데 결성 60주년을 맞이하여 그 기념식과 공연을 11월 16일 오사카 뉴오다니호텔에서 개최하니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가능하면 참가한다는 메일을 필자가 보냈더니 시일이 가까웠을 때 다시 허옥녀 고문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이 날은 조총련 간부들도 참석합니다만 김선생님 괜찮겠습니까?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필자는 이날 '대한노인회'와 '한인회' 합동으로 11월 30일 개최하는 <효도잔치> 행사 준비회의 때문에 결국 참석 못했다.

조총련문예동 오사카지부는 문학부, 음악부, 무용부, 연극구연부, 미술부, 5개부가 있어서 각부마다 활발한 뢀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문학부의 작품 합평회에 20년 이상 참가해서 문학부 동인지라고 할 수 있는 '불씨'에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문예동 위원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고문인 허옥녀 씨는 시인으로서 문학부에서 한달에 두번 열리는 함평회에도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어서 필자와 아는 사이였다. 동포 최대밀집지인 이쿠노쿠에서 민단 이쿠노 남지부 지단장직을 맡으면서 조총련 산하 단체인 문예동 문학부 합평회에 참가히는 것은 누가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에는 재일동포가 많이 살고 있지만 동포들로 구성된 문인단체가 하나도 없는데. 유일 조총련 산하단체인 문예동에 문학부가 있어서 필자가 참가하고 있었다. 민단 산하단체에는 이러한 문화 조직이 없어서 조총련 문예동의 활동은 민단 지단장이지만 필자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는 의견 대립도 있지만 순수한 문학 작품 합평회 때는 오로지 작품 평가만이 있을 뿐이다. 문학부원들은 재일 1세는 없고 모두 2세 이하의 세대들이다. 필자만이 1세로서 한국의 한글 세대이므로 우리 말 작품 합평회 때는 사실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문예동 결성 60주년의 이 행사에는 조총련 간부들도 참가하는데 민단 지단장인 필자가 참가하면 민단에서 비판 받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허옥녀 고문은 걱정해 주었었다.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 배려에 고마웠는데, 허옥녀 시인으로부터 그 기념집을 며칠 전에 우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표지에는 "불씨"라는 제목과 바로 그 밑에 한글로 '문예동오사까결성60돐기념특집호'라고 써 있으며, 마지막 밑에는 한자로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대판지부작품집VOL.23'이라고 적혀 있었다.

첫 패지에는 윤충신 위원장의 인사말이 게재되었고 문학부 부원 이외의 작품들도 많이 게재되었었지만, 이 난에에는 문학부 부원 작품들 9편을 소개한다.

한 사람의 몇편씩 게재하고 있었지만 필자가 그 중에서 1편씩 발췌했다. 작품 중에 맞춤법과 단어는 우리들과 달라서, 북한식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 게재했다. 작품 내용은 문학부 부원들의 작품은 추상적 의미보다 압도적으로 현실의 실상을 작품화 한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곧 이해할 수 있다.그래서 필자의 해설은생락한다.

마침 지난 12월 12일 제주투데이에 필자가 쓴 "<제주문학>과 <제주PEN문학>"의 시 작품과 비교하면서 읽어 보는 것도 한글 세대인 고국의 시인과 재일동포 시인들과의 우리말 작품 비교도 좋은 참고가 되리라고 믿는다. 끝에 그 기사의 메일도 첨부한다.

이방세의 <발자국>이다.

 

발자국

 

방과후

다 돌아간 운동장에서

혼자 거닐더니

무수한 발자국을 찾았다

나는 본다

너희들이 해맑은 얼굴을

활기에 찬 모습을

그리고 수백 수천의

씩씩하게 자란 흔적을

운동장은 듣는다

오늘도 굽히지 않는

발걸음 소리를

발자국이 까르르 웃는다

발자국이 왁작 떠든다

발자국이 척척 나간다

앞으로 앞으로

 

허옥녀의 <물려받은 시계>이다.

 

물려받은 시계

 

이 시계는 고급시계가 아닙니다.

어디서나 보는 수수한 시계

하지만 돈으로는 못 사는 시계입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물려주신 시계

아버지의 삶이 력력히 새겨진 시계

<일군 근속 30년상>이라 새겨진

이 세상 둘도 없는 시계입니다

 

제주 <4.3>의 암운을 헤치시여

바다 넘어 일본에 건너오신 아버지

품팔이 막로동하면서도 배우고 배워

끝내 우리 학교 교단에 서신 아버지

 

각서리타령을 무척이나 좋아하셔

동포들 모이는 곳이면 그 어디서나

아버지 노래소리 안들릴 날 없었지요

 

학교서나 가무단에서나 분회에서나

크지 않은 몸으로 큰일하신 아버지

아무리 바빠도 짬시간을 아껴가며

우리 네 남매를 꼬옥 안아주셨지요

 

- 아버지 고맙습니다!

림종의 순간 저도 모르게 튀여나온 말

우리 네 남매의 하나 같은 마지막 인사

 

아버지의 고동 같은 초심소리가

오늘도 힘을 줍니다

아버지럼 살라고 재깍

아버지처럼 살아가리라고 재깍

 

다음은 채덕호의<손톱깎기>이다.


손톱깎기

 

"톡, 톡, 톡..."

 

처음으로 어머니의 손톱을 깎는다

병실에 계신 어머니의 손톱을

 

어릴적 내 손톱을 깎아주실 때

어머니는 늘 재봉기 앞에 계셨다

바느질가위로 조금씩, 조금씩

 

어린 나는 손톱깎기가 무서웠다

그리 깎지 말라고 졸라대더라도

어머니는 끝까지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늘 깨끗하게 살라고...

 

이제 가늘해진 어머니의 손

그래도 여전히 다름없는 굳은 손톱

지금 나는 어머니의 고생을 깎는다

어머니의 아픔을 조심스럽게...

 

"톡, 톡, 톡..."

 

어느새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손톱을

끝까지 깎지 못했다

 

다음은 진승원의 <이름>이다.

 

이름

 

새근 새근 엄마 품에 안겨 자는

리나를 만났다

 

청순하고 꽃다워라며

우리가 불러도

일본사람이 불러도 꼭 같게

그리 이름 지었습니다

 

수줍은 듯 벙글 웃으며

몰래 입술에 힘을 들이는

젊은 아빠의 말이

후끈 나의 가슴을 덥힌다

 

소원이며 소임이라고

무슨 다짐이라도 하는 걸가

어려보이던 조카 네게서

벌써 아버지 풍격이 안겨진다니

 

곱게 자란 처녀가 보이느냐

떳떳한 딸애가 그려지느냐

아무려면

그러자고 지은 이름이 아니더냐

 

흐뭇한 맘 누르며 슬며시 들여다보니

아직은 깃든 그 사랑 모를진데

풋내기 아빠가 주는 첫 선물이

그리도 좋은가

 

새근 새근 엄마 품에 안겨 자는

리나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는구나

 

다음은 박태진의 <이슬>이다

 

이슬

 

환희와 환호 속에 펼쳐진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입장에

뜨거움이 솟구쳐 이슬 한방울

남녘땅 여기저기 펼쳐지는 통일화폭에

어린이 눈에도 늙은이 볼에도 은구슬이 비친다

 

갈라진 아픔과 아쉬움이 너무도 길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우리 소원이여서

 

평화통일 바라는 온 겨레의 눈물방울에

나의 작은 이슬 한방울 합치어

휘날리는 통일기 물들이고싶다

 

다음은 김애미의 <숙제>이다.

 

숙제

 

딸애가 하는 숙제

- 우리나라 팔도강산

조선지도 우에

<도> 이름을 쓰시오

 

함경도 자강도 경상도...

어쩐지 내 눈엔

선생님이 그은 것도 아닌

북과 남을 가르는 선이 보이네

 

내가 배웠던 지도에는

언제든지 38선이 있었고

 

학부모끼리 이야기 나눠도

마음의 38선이 있었지

 

어느 새 나는

지도를 볼 때마다

북과 남

갈라져있는줄 알았었지

 

그런데

선생님이 숙제로 낸 지도에는

38선이 그어지지 않았으니

제발 딸이야

조선지도를 반으로 접지 마,

부탁이야

다음은 김명혜의 <따뜻한 랭장고>이다.

 

따뜻한 랭장고

 

<아들이 랭장고 사주었어!>

흥분하시어

점점 목소리 높아지고

웃음소리 가득찬 어머니

 

걱정거리가 풀리니

니 생각이 나서

전화했구나

<잘 있나?>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 했는데

여든이 넘으셔도

자식 걱정을 하시는

어미니의 목소리에 목이 메이네

 

<랭장고 보러오라 큰 랭장고야>

아들 자랑하고 싶어 못 견디시는 어머니

그렇구나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히 얼리지 못하는구나

 

지금도 버젓하게 자라잡은

어머니집 랭장고는

늘 사랑만이 가득찬

따뜻한 랭장고

 

다음은 김방순의 <휴대전화>이다.


휴대전화

 

내 어릴적엔 상상도 못했구나

휴대전화 말입니다

 

두살배기 손녀

어미 휴대전화 잘도 다루어

함메인 나에게 전화를 한다니

 

놀랍고 기쁘고 이쁘고 착해서

천재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

 

부푸는 감정은

틀림없이 행복의 실감

 

렴치없이 손자 자랑해도 될가요

쑥스런 마음 안고

 

마지막으로 한영순의 <거울>이다.

 

거울

 

거울 보기 전에

먼저 거울 닦았느냐

거울 앞에 설 때면

귀전에 들려오는 듯

어머니 그 말씀

가르치심대로

먼저 거울을 곱게 닦았어요

보셨지요 어머니

더 정결하게 살아갈

내 결심을

 

"<제주문학>과 <제주PEN문학>" 기사를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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