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가 받아든 진료비 중간
A씨가 받아든 중간진료비 청구서

[단독]지난 11월 충수염(맹장염)으로 도내 H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95년생' 베트남 여성 A씨. H병원이 이 여성에게 1000만원에 달하는 진료비를 청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000만원에 달하는 '맹장수술' 진료비는 의료보험체계에 익숙한 국민들로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지난 11월 말 배가 아파 병원을 찾은 A씨는 충수염 진단을 받았다. A씨는 병원으로부터 수술비와 입원료를 포함한 진료비가 1000만원에 달한다는 말을 들었다. 급성충수염은 수술 시기를 놓치고 방치해 복막염으로 발전하면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수술이 꼭 필요한 상황. 하지만 A씨는 1000만원을 당장 구할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 A씨는 수중의 200만원을 찾아서 병원에 내고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후 병원에 입원했지만 800만원에 가까운 나머지 진료비를 마련할 방도는 마땅치 않았다. 수술은 받았지만 마음대로 퇴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다 A씨는 맹장수술 진료비로 1000만원을 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을까? 답은 의료수가에 있다. 의료수가란 의사 등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을 의미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사람, 차상위 계층,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의료수가를 정부가 정한다.

하지만 비보험 수가(비급여, 일반수가) 수가는 병원이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성형, 미용, 아직 검증 받지 않은 신약 치료 등에 대해서도 병원이 수가를 정할 수 있다. 건강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에게는 소위 보험수가를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사람에게는 일반수가를 적용한다. 건강보험이 통제 하지 않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병원이 자체적으로 비보험 수가를 산정해서 적용한다. 성형 등 의료관광을 오는 부유층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병원이 자체적으로 수가를 적용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같은 시스템으로 인해 긴급한 의료행위가 필요한 상황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1995년생 베트남 여성 A씨가 그러한 경우다. A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H병원 관계자는 제주투데이와 전화통화에서 외국인에게는 일반수가의 2배를 더 받고 있다고 밝혔다. 맹장수술의 경우 세부 진료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일반수가에 따른 진료비는 통상 약 300만원을 조금 넘는다. H병원은 A씨에게 일반수가에 두 배를 더해 총 진료비 973만5269원을 산정했다. 그러나 A씨 같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의료 관광을 받으러 다니는 부유층 외국인과 경제적 상황과 의료의 목적이 다르다. 이에 H병원이 A씨에게 일반수가에 2배를 더 적용한 것이 온당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후 A씨가 진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는 소식이 도내 천주교 산하의 한 이주민 지원 센터에 전해졌다. 센터 관계자는 H병원 측에 합당한 의료수가를 적용한 것인지 따졌고, 병원 측은 결국 500여만원으로 A씨의 진료비를 낮췄다. 센터 관계자는 제주투데이에 “의술은 인술이라고 했는데, H병원이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외국인 노동자 환자를 대상으로 과연 인술을 펼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의료관광이 목적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반수가에 2배가 넘는 수가를 더 적용하는 것이 온당한 조치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주에 머물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역시 제주도 농업 현장 등에서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의료영역에서도 A씨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A씨의 경우와 같은 문제에 대한 보완의 필요성이 부각되며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조합 등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제주에서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단체들과 협력하고 있는 종합병원은 제주대학교병원이 유일하다.

병원을 퇴원한 A씨는 이후 어렵게 마련한 300만원을 찾아들고 미납 진료비를 지원해준 이주민 지원 센터를 찾아갔다. 센터에서 병원에 납부한 진료비는 A씨에게 빌려준 것이 아닌 순수 지원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진료비 지원금 전액을 갚으면서 센터의 지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A씨는 최근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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