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제주의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로 보낸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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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제주의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로 보낸 2019년
  • 제주투데이
  • 승인 2019.12.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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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지 제주동물친구들 동물복지지원팀 활동가

2019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제주동물친구들 동물복지지원팀 활동가로, 또 여러 반려동물의 엄마로 살아온 올 한해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올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수많은 동물들을 만났다. 구조에 나서서 만났던 동물들이 떠오른다.

한뼘 길이의 줄에 묶여 똥밭을 구르던 ‘한뼘이네’ 15마리의 개들. 난장판 같은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솔뫼, 진이, 루, 루씨, 제씨. 119 구급대원들 손에 보살펴지던 ‘커피 고양이 삼남매’ 자바, 라떼, 치노. 알아서 잘 살라고 이름 지은 아랑, 자두, 살구 남매. 매일 인슐린을 맞고 혈당을 측정해야 하는 당뇨병 걸린 고양이 달이, 뒷다리 골절이 있었던 고양이 깜시. 애교가 넘치는 애꾸눈 냥이 애봉이. 구조 9개월째 하악질을 멈추지 않아 임보엄마의 인내심을 테스트 하고 있는 차가운 시골 고양이 또봉이. 양쪽 눈의 시력을 잃고 바다를 건너 희망을 찾아 온 희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 옆에서 울고 있던 소랑이. 담장 돌틈에 숨어 사람을 찾던 소담이. 버려진 아픔을 딛고 씩씩하게 자라준 토산이. 한여름의 햇살같이 눈부신 미소를 가진 여름이. 사상충 감염에 바베시아증을 앓고 목에 주먹만한 상처가 있던 얀짱이. 방치 상태에서 거친 숨을 헐떡이던 순둥이까지...

이름만 불러도 아이들의 딱한 사연과 구조 스토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구조되어서 건강을 되찾고 가족을 찾은 아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손길이 많이 가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구조해 주지 못하고 응답해 주지도 못한 요청들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안타깝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지는 사연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내가 마음이 괴롭고 일이 힘들다고 손을 떼면, 고통 속에 괴로워 할 동물들이 더 많아진다는 생각에 시간이 갈수록 나의 마음은 굳은살이 생기고 단단해지고 있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10년 이상을 함께 한 반려동물들을 떠나보낸 해이기도 하다. 한 아이는 꽤 오랜 시간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난 그 아이가 삶에 욕심이 있는 줄 알았다. 고통에 울부짖다가도 내가 슬퍼하면 멈추었다. 아이는 오로지 나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내 옆을 지켜왔던 것이다. 나는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썩 잘 해주지도 못했는데, 그 아이는 옆에서 내 아픔을 느끼며 그렇게 투정 한번 안 부리며 19년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엄마는 힘들어하지 않을 테니, 씩씩하게 잘 지낼 테니 걱정말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며 떠나보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주 조금은 힘든 내색을 하고 싶다. 아이가 19년 동안 나에게 해준 위로를 생각하며 아주 조금만. 먼저 떠난 형이 보고 싶어서였을까? 15년을 함께 산 다른 아이도 5개월 뒤 사료를 먹지 않더니만 마지막으로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형의 뒤를 따라 떠나갔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더 잘해줄게”라는 말만 해 왔다. 아이들은 기다렸고, 기다리다 떠나버렸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기다려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다.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 바뀌는 게 없다면 그게 과연 사랑인 걸까? 

제주동물친구들 활동가 '범프맘'

위기에 처한 채 도움을 기다리는 아이들. 어쩌다 내 품에 들어온 여러 마리의 동물들. 모두 똑같이 사랑을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년에도 제주동물친구들의 동물복지지원팀 활동가로, 내 반려동물들의 엄마로 힘을 다해 움직이려고 한다. 사람들이 단 한 차례 보여주는 미소와 손길에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하는 동물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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