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교수신문이 2019년을 상징하는 단어로 공명지조를 정했다고 한다. 이 단어는 불경인 아미타경에 나오는 머리가 둘 달린 새로 두 머리가 서로 달라 한 머리는 낮에 자고 다른 한 머리는 밤에 자는데, 한 머리가 혼자 맛있는 것을 먹자 시샘이 난 다른 머리가 독을 먹어 함께 죽었다고 한다. 즉 서로 싸우다 둘 다 죽는 어리석음을 오늘날 우리나라 상황에 빗댄 것이다. 정말 요즘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라 여겨진다.

여권은 여권대로 제일 야당을 상종 못 할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제일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을 나라 망치는 세력으로 치부하면서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하니 국민통합은 황하하청(黃河何淸)이다. 한 쪽은 서초구로, 다른 한 쪽은 광화문으로 달려가 세(勢) 싸움을 하니 국민들의 불만과 불편이 말이 아니다. 국회에는 시급한 민생문제를 다룰 법안들이 산적해 있는데, 자기 정당의 이익만 생각하느라 법안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조국 교수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에서 발단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모 언론에 보도된 조국 교수에 대한 기사에는 찬반이 뚜렷하게 댓글이 갈린다. 한 쪽에서는 한 사람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부정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한탄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어떻게 검찰이 한 사람을 이렇게 샅샅이 뒤지는 가 비난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이것을 전 정권을 적폐청산이라고 샅샅이 뒤진 업보라고 보고 있는데 반해 다른 한 쪽에서는 과거에 이처럼 조사한 적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검찰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것에 대해 공수처 설치와 검찰개혁에 대항하기 위해 과잉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용감한 사람은 나아갈 때를 알고, 현명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안다.’라는 말이 있다. 조국 교수께서 현명하게 물러날 때를 알았더라면 나라가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웬만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국 교수 일가의 행위들이 그리 떳떳하지 못 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터이고, 시대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살펴 본 사람이라면 과거에 통용되던 행위들이 지금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웃어넘기던 진한 농담이 성희롱이 되고, 상대방의 장래를 위한 질책이 갑질이 되는 세상이다. 옛날이라면 불문에 부쳐 지나갈 일들이 선거법에 걸리고, 과거 여당이라면 문제없이 지나갔을 선거부정도 이제는 여당 프레미엄이 감소해 당선무효가 된다. 과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여당 공천에 관여하였다 하여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에 걸리는 판국에, 선거에 관여할 수 없는 사람이 시장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면 당연히 위법이 되어야 한다.

지금 세상은 ‘과거에도 그랬는데,’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 것들이 적폐라고 처벌받았는데, 과거에도 그랬으니 죄를 물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정말 ‘내로남불’이다. 조국 문제의 핵심은 조국 교수의 가족들의 행위가 문재인 대통령께서 천명하신, ‘기회는 균등하게, 결과는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정부에서 이것들이 아무 탈 없이 지나가려면 이 구호를 철회해야 한다.

우리 모두 각자가 쓴 색안경을 벗고, 한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살펴보는 지혜를 발휘하자. 민주주의의 장점은 라이벌을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 세종대왕이나 당 태종은 자신을 귀양 보내라고 주청한 황희와 죽이라고 간한 위징을 항상 곁에 두고 그들의 간언을 경청하였기에 세계가 인정하는 명군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자. 우리 인간은 눈이 앞면에만 있으므로 뒷면을 볼 수 없다. 그 뒷면을 알려 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사물을 올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새해에는 ‘공명지조’의 가르침을 우리 모두 가슴깊이 새겨 상대방을 인정함으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도록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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