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눈에는 국민은 없었다. 체면도 없었다. 그러니 염치가 있을 리 없다. 규범이나 절차 따위는 아랑곳없었다. 그것은 밥그릇 챙기는 데 걸리적거리는 군더더기 일 뿐이었다.

‘정치적 야바위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범여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의 행태를 보는 일반의 시각은 시니컬하다.

‘4+1’은 27일 제1야당을 배제한 체 이른바 ‘준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내년 4월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된다.

그러나 이 선거법에는 잔뜩 불순물이 끼었다. 불륜 관계의 사생아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치졸한 당리당략에 의해 탄생한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인스턴트 선거법’이어서 그렇다.

선거법 개정안은 발의부터 본회의 상정까지 국회법을 위반했다. 원칙은 무시됐다.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했다.

특히 여야 합의가 전제되는 게임의 법칙을 짓밟아버렸다.

선거의 룰인 선거법 협상에서 국회의석의 36.6%를 가진 제1야당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향후 엄청난 후폭풍을 부를 수 있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4+1’은 출발부터가 비정상적이었다. 법적근거가 없는 해괴하고 기형적 협의체다. 유치한 당리당략의 부산물이다.

집권여당이 대통령 뜻을 관철하기 위해 짜놓은 구도였다. 청와대의 ‘돌격 앞으로!’ 명령에 집권여당이 돌격대를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고위공직자법죄수사처(공수처)법을 밀어붙이기 위한 돌격대였다. 이를 위해 집권여당이 군소정당을 유혹했다.

이른바 ‘연동형 비례 대표제 선거법’은 미끼였다.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이라고 더 챙기기에 안달하던 군소정당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집권여당의 ‘공수처 법’과 군소정당의 ‘연동형 비례’가 얼싸안고 춤추며 짬짜미한 것이었다.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해괴한 선거법이 나온 배경이다.

협잡과 야합의 산물인 선거법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을 태워 발의 했던 ‘4+1’ 원안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짜깁기로 ‘누더기’가 된 것이다.

원안에서 비례대표 의석은 75석이었다. 그러나 최종안은 47석으로 줄었다.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제멋대로였다.

사실상 현행 지역구(253석)와 비례대표(47석) 의석수는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만 연동률 50%가 적용됐다. 석폐율 제도 없었던 것으로 됐다.

이러한 누더기 선거법은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국회의원 중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많다. 여간 헷갈리는 내용이어서 그러하다. 이런 선거법을 만들기 위해 지난 8개월간 ‘4+1’이 그렇게 난리를 쳤던 것이다.

이렇게 블랙코미디 같은 선거법을 만들기 위해  법적 근거도 없는 '4+1'이 국민을 기만하는  야바위 놀음을 해왔다니 어이가 없다.

여야 합의 없이 밀어붙인 선거법 개정, 헌법적 가치와 원칙과 국회법 규정을 무시한 야바위 집단의 치졸한 선거법 개정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불충이고 반역이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능멸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4+1’은 공수처 법에서 공수처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막강한 권한을 주는 독소조항을 끼워 넣었다.

그것도 원안에 없었던 조항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공개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역시 밀실 야합이었다.

‘검찰의 무소불위’를 욕하면서 검찰보다 더 강력한 ‘무소불위 공수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검찰위의 검찰이다. 검찰의 옥상옥(屋上屋)인 것이다.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권력을 쥐어  주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독재의 칼’을 헌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태생부터 비정상인 ‘4+1’이 꼼수와 야합으로 만든 ‘누더기 선거법’과 권력의 괴물이나 다름없는 ‘무소불위 공수처 법’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세밑 선물로 내놓은 것이다.

쓰레기 같은 '누더기 연말 선물'이다. 이는 사실상의 ‘입법 쿠데타’나 다름없다.

법과 제도,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치가 아니다. ‘다수의 횡포’이자 ‘다수 독재’일 수밖에 없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출된 독재자’의 이미지만 덧씌울 뿐이다. 정상적인 국정운영에 부정적으로 작용 할 것이다.

지난해 6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민주주의 퇴보’에 대한 특집기사를 다룬 바 있다.

당시 이 기사는 한국 상황에 빗대어 논란거리가 되었었다.

‘많은 리더들이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를 뒤엎는데 능숙해 졌다’는 내용이었다. ‘민주적 리더가 독재적 리더로 변할 수 있다’고 분석한  내용이었다.

포퓰리즘 적 선동에 익숙한 리더는 이를 무기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더는 계속해서 적(敵)을 만들어내고 언론과 군부, 사법과 의회 권력을 장악하거나 법을 바꾸면서 오래 권력을 유지하려 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독재자의 길로 가는 공식’이 이러하다는 분석 기사였다.

그렇다면 문재인정권은 어떠한가?.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연대, 민노총,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를 강고한 우군으로 두고 언론과 군부를 장악했고 의회와 사법부까지 조종할 수 있는 영향권아래 묶어 뒀다”는 일각의 평가가 있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문 대통령은 선출된 독재자의 길을 향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독재자의 길에 들어선 것인가?.

이번의 말도 안 되는 ‘선거법 개정’과 막강권력의 ‘공수처 법’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의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떠올리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4+1’이 공모하여 선거법을 바꾼 것은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며 공수처법은 ‘무소불위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민적 역량 결집의 필성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내년 4월15일 실시하는 총선에 대한 국민적 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엄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국민적 책임과 선택이 무겁다.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무도하고 무모한 권력을 심판 살 수 있다. 장기집권의 획책을 무너뜨리고 독재로 가는 길은 막아내는 힘이 되는 것이다.

“모든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이 있다. 국민의 수준이 민주국가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인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은 그래서 국민의 수준을 평가받는 기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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