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2019 올해의 마을'로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를 선정했다. 제주동물테마파크가 추진되고 있는 마을이다. 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다수 주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원희룡 제주도정의 태도는 제주의 현주소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에 제주투데이는 이 마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2019 올해의 마을’로 선흘2리를 선정했다.

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2020년 새해 소망이 ‘원희룡 도지사와의 면담’이라고 말한다. 도지사를 만나서 마을 주민 다수의 ‘진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선흘2리 주민들. 제주투데이는 지난 30일 오후 선흘2리 주민인 백정민 부녀회장(48), 이진희 대책위원(44), 이옥출 씨(74), 이상영 씨(47), 박흥삼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장(59)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주민들은 “우리 마을이 ‘올해의 마을’로 선정된 데 대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요(웃음)”라고 말했다. 이상영 씨는 “여하튼 올해 제주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어떻게 됐든 마을 사람들이 뜻을 함께 모으고 여러 일들을 함께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회의를 하고 있는데 젊은 층과 어르신들까지 주민들이 계속 모이고 있어요. 동물테마파크 반대라는 한 가지 주제로 얘기를 하다보니 친해지지 않을 수 없죠.”라고 말했다. 선흘2리 주민들은 동물테마파크에 맞서 싸우면서 서로 더욱 친밀해지고 있다.

동물테마파크에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은 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이주민’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다. ‘이주민 프레임’은 마치 주민 다수가 반대하는 동물테마파크 문제를 주민과 이주민 간의 다툼으로 위장한다.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동물테마파크를 ‘찬반 갈등’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개발사업의 전형적인 이간질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선흘2리 주민들은 이같은 전략에 분통을 터트렸다. 한 이야기가 기자의 귀에 들어왔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주민이 없었다면 선흘2리 중심에 위치한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는 폐교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선인분교 전체 학생 40여 명 중에서 토박이는 단 3명에 불과해요.” 이 마을로 이주해 온 이들이 없었다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조천읍 선흘리의 한 소녀가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를 막아달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
조천읍 선흘리의 한 소녀가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를 막아달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

선흘2리의 다양한 환경 문제. 학부모들이 먼저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 학부모가 말했다. “마을 주변에 오염시설이 꽤 있어요. 플라스틱 공장도 있고 비료공장도 있죠. 그러다 보니 마을 내 악취가 심할 때도 있습니다. 올해 초 플라스틱공장에서 비닐 태우는 냄새가 심해서 학부모가 발견해 고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태환경관리단을 만들었습니다. 마을총회에서 인준한 자치기구입니다.” 이후 학부모 등은 총회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마을 임원, 개발위원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던 마을 일에 관심을 갖고 주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다. 선흘2리 주민들이 마을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선흘2리 마을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그간 마을회 임원과 개발위원회가 주도적으로 마을회를 운영해오면서 다른 주민들은 제주동물테마파크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주민들이 적극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선흘2리는 올해 4월 초에 총회를 열고 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기로 결의했다. 마을 총회의 결정인만큼 마을회장 역시 이에 따라야 한다. 마을회장은 총회 직후인 4월 12일 제주도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고 동물테마파크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발언 중인 정현철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반대대책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그러나 마을회장은 돌연 입장을 바꿨다. 주민들 몰래 동물테마파크 사업자 측과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나 면담을 하고, 독단적으로 사업자 측과 상생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묻는다. “마을 최고 의결기구인 총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마을회장이 번복한 거죠. 말이 되는 일인가요?” 설상가상으로 마을총회의 인준도 거치지 않은 동물테마파크 찬성위원회도 만들어졌다. 마을회장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민들은 해임 절차에 착수했다. 총회를 열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회장을 해임했지만, 행정당국은 마을회장을 해임시키지 않았다. 주민들은 말한다. “마을회장 해임을 안건으로 하는 총회를 마을회장만 소집할 수 있도록 한 독소 조항을 제주 행정당국이 용인하는 건 사실상 마을회장이 버틸 수 있도록, 그래서 동물테마파크가 강행되도록 협조하고 있는 거죠.” 이 장면에서는 강정마을의 사례가 오버랩된다.

마을 주민들은 원희룡 제주도정에서 동물테마파크 찬성위만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반대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이 주민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요. 원희룡 도정이 중립 지키고 있다면 우리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잖아요? 최소한의 중립만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원희룡 도정에 화가 정말 많이 납니다.”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선흘2리 주민들이 24일 저녁 마을 복지회관 앞에서 정oo 이장을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주민들은 복지회관 화단 한 켠에 꽂은 풍선에 정oo 이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사진=김재훈 기자)​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선흘2리 주민들이 지난 10월 마을 복지회관 앞에서 정oo 이장을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주민들은 복지회관 화단 한 켠에 꽂은 풍선에 정oo 이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사진=김재훈 기자)​

이들은 원희룡 지사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찬반 갈등이 명확하니까 지금 만나는 게 적절치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답변처럼 찬반 갈등이 명확한 사안에 대해서는 양쪽의 말을 다 듣는 것이 갈등 해결의 단초라는 점을 원희룡 도정도 모르는 일은 아닐 터. 게다가 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는 주민이 대다수이기도 하다. 이에 원 도정이 주민들의 압도적인 반대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주민 갈등을 극대화해 찬반 갈등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제주도가 소수의 사람들 이용해서 주민 이간질시키고 있어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동물테파마크에 반대하는 한 90세 노인은 한 찬성 측 주민으로부터 "예전에 죽었어야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대형 개발사업으로 인해 예의와 인륜마저 무너져버렸다.

주민 간 갈등은 대화와 설득이 아닌 차가운 사법적 판단을 통한 소송전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6개월 간 13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고소를 당했다. 대형 로펌에서 소송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즉 사업자가 주민이 주민을 고소하는 일을 돕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주민 의견 듣기 위한 임시총회를 소집해달라 하는데 마을회장이 총회를 소집하지 못하고 있어요. 동물테마파크 반대와 이장 해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클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제주도정에 얘기해봐야 쇠귀에 경읽기예요.”

이런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서로의 재능을 나누며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꾸릴 생각을 전했다. 지난 1년간 서로 밀도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지며 재능이 있는 마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환경을 파괴하며 들어서는 대형 동물원과 리조트가 아니라 주민들이 주인이 돼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마을기업을 운영하는 꿈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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