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공원 (3일 새벽 6시 10분 촬영, 사진: 제주투데이)
제주4·3평화공원.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4·3 당시 미국 정부와 군 수뇌부가 한국 군경과 우익단체에 의해 무차별 학살이 행해지는 작전을 미리 알고 있었고 이를 극찬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12일 조사연구실(실장 양정심) 주도로 지난해 미국자료현지조사팀(팀장 김기진) 3명을 구성, 6개월 동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중심으로 4‧3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관련 기록 3만 8천여 매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확보한 자료에는 미군정과 군사고문단 수뇌부의 인식을 직접 기록한 자료들이 많았고 해당 정보를 미 정부 및 군 최고수뇌부가 공유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미 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은 5·10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정치범’ 수준을 넘어 ‘범죄자’로 취급했다. 

로버츠 장군이 '초토화 작전(cleaning-up)'을 두고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gking)"이라고 표현한 문서.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공)
로버츠 장군이 '초토화 작전(cleaning-up)'을 두고 "최고 수준의 사고(top-level thingking)"이라고 표현한 문서.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공)

특히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Roberts) 공한철 등 미군 보고서에는 제주도에서 소위 초토화 작전을 의미하는 ‘싹쓸이(cleaning-up)’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에 따르면 로버츠 준장은 1949년 1월 28일 “공산주의자들을 싹쓸이하기 위해 제주에 1개 대대를 추가 파병하겠다”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서한에 대해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king)”라고 극찬했다. 

극동군사령부 정보요약 보고에서도 미군은 1949년 2월 20일 제주에서 민보단이 76명의 주민들을 창으로 찔러 살해했을 때 “그들에게 ‘주의(brought to the attention)’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극동군사령부 문서 1949년 7월 21일자에는 유재흥 대령의 귀순 공작과 사면정책에 의해 하산한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로 표현하며 “약 2000명의 공산주의자들(Communists)에 대한 재판이 제주도에서 최근 진행되었다. 350명의 사람들이 사형을, 약 1650명이 20년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재단은 “미군 최고수뇌부의 이런 인식은 ‘공산주의자는 통상의 법률적 방법으로 다뤄선 안 된다’던 이승만의 인식(1948년 5월 15일자 극동군사령부 문서)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 미국자료현지조사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 미국자료현지조사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공)

한편 재단은 이번 조사에서 3만8500여 장의 기록물을 모두 스캐너를 이용해 수집함으로써 ‘4·3 아카이브’ 구축의 토대도 마련했다.

이 조사는 지난 2001년 4·3위원회가 실시한 이후 18년 만에 재개된 것으로 재단은 해당 문서들의 출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당시 무차별 학살 등의 증거 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2001년에는 주한미군정청·주한미군 등 남한에 진주했던 미군정·미군 문서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이번 현지조사에서는 미 극동군사령부, 연합군최고사령부, 국무부 등 상위기관의 문서들을 중점적으로 조사·수집했다는 의미가 있다. 

재단은 올해도 미국자료현지조사팀을 가동해 미군자료의 비밀해제 요청을 계속해가면서 조사대상을 NARA 이외에 미육군군사연구소, 트루먼도서관과 미국 소재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올 연말 이번 수집자료와 이전에 입수한 자료 가운데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4‧3 미국자료집’을 편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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