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왕은 궁중화가의 그림솜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궁전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린다고 알려진 화공(畵工)의 작업장이었다.

왕이 물었다.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개나 말 같은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화공의 대답은 스스럼없었다.

“그렇다면 제일 그리기 쉬운 것은 무엇인가?” 이어지는 왕의 질문이었다.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 것입니다”. 막힘이 없는 화공의 대답이었다.

“왜 그런가?”

“개나 말은 누구나 잘 알고 매일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조금만 잘못 그려도 사람들이 금방 알아챕니다. 그래서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화공의 말은 계속됐다. “그런데 귀신이나 도깨비는 실제로 본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그려도 사람들은 그게 도깨비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일화다.

요약하자면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리기가 어렵고 형체가 없는 것이 그리기 쉽다(犬馬難 鬼魅易)’는 이야기다.

눈에 보이지 않은 허상보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교훈으로 읽혀진다.

감히 2250년 전 있었던 한비자의 고매한 말씀을 불러오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가당찮은 변명이지만 그때의 ‘도깨비 그림’ 일화가 시공을 초월해 오늘을 관통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차용해 본 것이다.

나름의 생각으로는 그러하다. ‘도깨비 그림’은 현실을 외면해 허상에 만 연연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입해 볼 수 있어서다.

무모하고 공허한 장밋빛 공약, 무지개를 쫒는 뜬구름 잡기 식 정책추진이 나라꼴을 결단내고 있어서다.

대통령의 말씀마다 입술에 걸렸던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는 온데 간 데가 없다.

되레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2년 반 동안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나라다운 나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현실은 어떠한가. 경제구조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보도 듣도 못했던 정책으로 망가진지 오래다. 영세 자영업은 무너지고 서민의 삶은 피폐해 버렸다. 외교 안보 역시 따돌림을 받고 있다. 외톨이 신세다.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구조는 제어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네 편 내편, 적 아니면 동지로 갈린 사회적 편 가르기 현상은 무섭고 불안하다.

대통령 30년 절친을 선거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 집권당, 경찰까지 동원했다는 의혹, 이런 불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수사 간부 모두를 좌천시키는 불법 인사를 감행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듯 뻔뻔한 법무부, 국회는 대통령 견제보다 정권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사법부는 정권 눈치 보기, 각종 통계는 대통령 입맛에 맞게 다림질 하고 이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대통령의 인지 부조화 현상, 이런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인가.

이는 전체주의 적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지금까지 부지런히 혼자만 상상하는 ‘도깨비 그림’만 그려온 것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그려온 ‘도깨비 그림’은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무모하고 공허한 허상(虛像)일 뿐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 발 ‘우한 폐렴’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까지 15째 확진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차감염자, 3차 감염자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한 폐렴’은 증상이 없는 무증상 전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각종 행사 취소, 모임 약속 취소나 연기, 결혼이나 여행 연기 등 ‘위한 폐렴’ 공포가 증폭되면서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그야말론 걷잡을 수 없는 우환(憂患)에 전전긍긍이다.

그러나 지나친 불안이나 공포는 더 큰 불안과 공포만 낳은 뿐이다.

방역 당국은 물론 전국 지자체, 시민사회단체와 봉사단체 등이 합심해서 ‘위한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 컨트롤 타워라 할 수 있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역할 과 책임은 막중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방역 정책이 신뢰성을 확보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책과 시간과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위중하고 위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한 폐렴 비상’속에 대통령이 ‘검찰 개혁 완성’을 주문한 것이다. 생뚱맞다.

대통령의 이 같은 행태에 시기선택도 잘못됐고 주제 설정도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31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진영 행자부 장관에게 ‘검찰 개혁 완성’을 주문했다.

검찰의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에 대한 기소 이틀만의 일이다. 이 자리에서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에 대한 보고’를 받고 중단 없는 검찰 개현 의지를 천명 한 것이다.

마치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을 기소한 검찰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겁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검찰 개혁은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 법안 등과 함께 현재진행형이다. 공수처법의 7월 시행을 앞둬 시간적 여유도 있다.

더구나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 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까지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격려하고 힘을 실어준지가 갖 6개월을 넘긴 상황이다.

‘윤석열 검찰’은 이러한 대통령의 ‘말씀’대로 그간 법과 원칙에 따라 성실하게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자체 검찰 개혁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우한 폐렴’ 비상 상황이라는 엄중한 시기, 가동 가능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위중한 순간에 뜬금없이 ‘검찰 개혁’을 주문했다.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국민들의 ‘위한 폐렴’ 공포 해소보다 청와대를 향해 옥죄는 검찰의 수사망이 더 불안 한 것인가.

그래서 정권 유지를 위해 검찰 수사력을 약화시키고 공수처를 통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도깨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도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개혁 대상의 우선순위는 검찰이 아니다. 청와대 일 수밖에 없다. 국민 일반의 감정이 그러하다. 검찰개혁 이전에 청와대 개혁이 먼저라는 것이다.

비리 또는 비위 관련 수사 대상인 청와대 참모가 수사주체인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 하고, 법원이 발부한 수색 영장까지 거부하는 청와대의 독불장군 스타일은 타개해야 할 적폐이며 개혁대상이다.

청와대가 치외법권 적 성역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어서 그렇다.

청와대가 온갖 협잡이나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휘두르는 복마전(伏魔殿)이라는 악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탈탈 털리는 개혁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털어야 한다. 권부가 썩으면 나라가 썩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통령은 허상(虛像)인 ‘도깨비 그림’에서 벗어나 실상인 나라와 국민이 겪는 소름 돋는 현실에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남은 권력이라도 제대로 행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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