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들 시내면세점 쇼핑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제주투데이DB)

“어떤 직원은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부모 중에 면세점 직원이 있는지를 조사하더래요. 우리 직원들은 밖에 나가서 기침 한 번만 해도 죄인 취급 받는 느낌이에요.”

제주시 한 시내면세점에서 근무하는 김민정(가명·37)씨. 5일 오후 제주시 연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동료 직원들이 최근 심각한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 2일 제주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중국인 관광객 A씨의 동선을 공개했다. 지난달 23일 A씨가 다녀간 것으로 밝혀진 시내면세점 두 곳은 같은 날 오후 조기 폐점 후 휴무에 들어갔다. 

#“메르스 때도 안 쉬었는데…정말 심각한 상황인가 보다 했다”

김씨는 “지난 2015년 메르스 때도 면세점은 그대로 운영했다.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했다”며 “그런데 2일 영업 마감 시간을 30분 정도 남겨두고 급하게 문을 닫아야 하니 퇴근하라고 하니까 다들 반응이 ‘지금 정말 심각한 상황인가 보다’하며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다음 날인 3일 제주도 역학조사단이 방문한다는 공지를 보고 곧 면세점 내 CCTV 등을 통해 해당 A씨가 다녀간 매장이 공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과 달리 A씨의 면세점 내 동선은 밝혀지지 않았다. 면세점이 질병관리본부 지침에서 정한 역학조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CCTV 조사가 필요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김씨는 “면세점이 조사 대상이 아니라면 애초에 왜 (A씨의) 동선 공개 대상에 포함시킨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A씨의 방문 매장을 공개하지 않으니까 모든 매장 직원이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 4일 도청 기자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합동 브리핑을 열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 4일 도청 기자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합동 브리핑을 열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가족들까지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힘들어해”

그에게 지난 사흘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면세점이 A씨의 동선에 포함된 것이 제주사회에 알려지면서 면세점 직원을 ‘잠재적 감염자’로 바라보는 외부 시선과 함께 ‘나 역시 감염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떤 직원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면세점 다니는 걸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모임도 나가지 못했다고 하더라”며 “옆에서 친구가 기침을 하면 ‘나한테 옮은 건가’하는 생각이 들고 어쩔 수 없이 외출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좀 있으면 얼른 그 자리를 뜬다”고 털어놨다. 

#“행정당국, 하루 차이로 역학조사 대상 아니라면서 애초에 공개는 왜?”

김씨는 행정당국이 자신들의 죄책감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제 낮에 제주도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보니까 어떤 기자가 ‘면세점 내 CCTV를 통해 접촉자를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거기 서 있던 공무원이 ‘증상 발현 이틀 전인 24일부터가 역학조사 대상이다. 면세점은 23일 다녀갔으니 대상이 아니’라는 답만 되풀이하더라”고 답답해했다. 

이어 “행정이 우리(면세점 직원)가 하루 차이로 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하는 건데 솔직히 우리 중 누가 ‘우리는 23일 동선이니까 괜찮아’하며 안심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우리 개인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도 조심시키는 것밖엔 방법이 없겠다 싶으니까 더욱 화가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일 면세점 직원이라고 소개한 국민청원 작성자가 "아이의 엄마로서 하루하루 무섭다"며 "단 보름이라도 면세점 휴업을 원한다"는 글을 올렸다. 김씨는 "아이를 둔 직원이라면 비슷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면세점 휴업을 요구하는 게시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면세점 휴업을 요구하는 게시글.

김씨는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금요일부터 면세점 영업을 재개하니까 출근하라는 문자가 왔다”며 “근무 중에 쓸 마스크를 구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섰다. 

이날 롯데면세점 제주점과 신라면세점 제주점은 보도자료를 내고 “철저한 방역”을 강조하며 영업 재개를 알렸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역학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자신과 가족들을 스스로 ‘격리 조치’하는 직원들의 죄책감과 불안감은 행정도 면세점도 아닌 직원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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