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봉준호 ‘기생충’과 ‘권력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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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칼럼] 봉준호 ‘기생충’과 ‘권력 기생충’
  • 김덕남 주필
  • 승인 2020.02.17 05: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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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빈부 격차문제 해소와 탐욕스런 권력의 부패구조 타파 절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 시각 9일(일요일) 오후 6시30분, 한국 시간으로는 10일(월요일) 오전 10시 30분 경 이었다.

이날 세계가 깜짝 놀랐다. 그 시각 한국에서는 감격과 환희와 감동의 도가니였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기적이라 한다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날 현지 돌비극장에서 열렸던 올해(2020)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의 꽃으로 불리는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았다.

이에 앞서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까지 거머쥐며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외국어로 된 작품이 작품상을 받은 것은 92년 전통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한 것도 101년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이다.

세계 영화 예술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자막의 장벽과 오스카의 오랜 전통을 밀어내고 작품상을 포함해 4개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변이었다. 그래서 기적인 것이다.

‘기생충’은 지난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도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는 역작이다. 이번 아카데미 상 수상이 우연이 아니고 필연적 결과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기생충’에 대한 세계적 영화감독들의 찬사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기생충’이 세계가 인정한 가장 뛰어난 영화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15일자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가 정리한 세계적 영화감독들의 ‘기생충’ 평가를 인용하면 그러하다.

“기생충, 이 영화는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고 예상할 수 없는 영화였다. 매우 로컬 적이면서 세계적인 영화 였다”. (2019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투).

“기생충 시사직후 모든 심사위원들이 작품에 매료됐고 이 작품을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단 1분도 주저하지 않았다” (2019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로빈 강필로 감독).

“슬픔과 재치와 깊이가 있는 영화다. 불손하지만 연민이 있다. 놀랍다”. (멕시코 영화감독 기예르모 텔도로).

“젠장! 와우! 기생충은 완벽하고도 훌륭한 작품이다. 재미있고 예측할 수 없으며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야말로 거장이 만든 역작이다”. (미국 영화감독 룰루왕).

“기생충은 올해 영화 중 최고다. 슬프고 너무 웃기고 공포스럽고 아름답다”. (미국 영화감독 제임스 건)

“뇌수를 강타당한 충격이었다. 상영이 끝난 뒤 스스로의 체험을 믿을 수 없어 현기증마저 느꼈다”. (일본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동을 넘어 무릎을 꿇게 만든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이제는 현대의 미켈란젤로가 되었다. 분하지만 그를 능가할 사람은 그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영화감독 사카모토 준지).

이로서 ‘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지역적)인 작품이 가장 세계적인 작품임을 입증한 셈이다. 그만큼 한국 영화예술의 지평을 세계로 넓힌 것이다.

영화를 관람한 이들의 감상평은 제각각일 것이다. “재미가 있었다”거나, “별로였다”거나, “어렵다”거나 등 등, 나름대로의 평가는 나름대로 일 수밖에 없다. 감상자의 몫 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의 양극화 현상, 이를 둘러싼 희비극적 갈등을 코미디, 비극, 액션, 호러, 사회적 메시지 등으로 묶어 풀어낸 빼어난 연출력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봉준호만의 영역’이다.

유쾌하면서도 찜찜하고, 웃기면서도 슬픈 영화, 일반적이면서도 엽기적 상황 전개는 어쩔 수 없이 ‘빌붙어 살아야 하는 사회 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이 만들어 낸 가족 집단 사기극, 경제적 피지배 계층의 빗나간 생존 방식, 가진 자들의 위선과 허위의식 등 세계 보편적 빈부격차에 대한 고발이자 성찰인 것이다.

생물학적 기생충은 벌레다. 다른 동물체(생명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벌레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면서 남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사람을 ‘기생충’이라 부른다.

여기서 먹잇감이 되는 생물체를 숙주(宿主)라 한다. 기생충의 먹잇감이면서 얻는 것이 없는 쪽이다.

한 생물체가 다른 종의 생물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양쪽이 서로 이득을 취하는 것은 ‘공생관계’다.

영화 기생충은 부자와 가난한자,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필요적 또는 적대적 공생관계인 것이다. 복잡한 사회 시스템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불평등 구조로 오염되고 있다’는 외신들의 영화 ‘기생충’에 대한 분석기사는 그것이 세계의 보편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고 허탈하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0일, ‘한국의 뿌리 깊은 사회적 분열을 반영한 영화 기생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었다.

청년들이 보는 한국사회의 시스템은 구조적 불평등으로 오염돼 있고 엘리트 계층의 이익에 치우쳐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는 이어 영화에 나오는 학위위조 장면에 대해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스캔들을 연상 시킨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영화 기생충의 성취는 훌륭하지만 위조 기술과 구직 계획에 감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건 씁쓸했다”는 한 관람객의 불편한 심기도 덧붙였다.

이는 ‘조국 사태’로 대변되는 ‘탐욕의 권력 기생충’에 대한 고발이며 씁쓸함이며 불편함인 것이다.

공정과 정의, 도덕적 우월감을 훈장처럼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권의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포퓰리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자 경고음이기도 하다.

기생충 박사로 알려진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기생충은 비열할 수는 있어도 탐욕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기생충은 언제나 먹을 만큼만 먹는다”고도 했다. 생물학적 기생충과 관련한 글에서다.

이는 ‘인간 기생충’의 탐욕을 ‘생물학 적 기생충’에 빗댄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물학적 기생충’이 그래도 ’인간 기생충‘ 보다 조금은 양심적(?) 도덕적(?)이라는 빈정거림이나 다름없다.

더럽고 비열하고 징그럽고 탐욕스런 ‘권력 기생충’을 향한 손가락질인 셈이다.

권력을 숙주로 하여 빨대를 꽂아 열심히 권력의 단물을 빨아먹는 탐욕의 ‘권력 기생충’에 대한 분노와 반감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화가 나고 치가 떨리는 분기가 솟구치지만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을 깨뜨릴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이 가난한자, 힘없는 서민들의 무력감만 키울 뿐이다. 그래서 더욱 허탈하고 주눅이 들고 맥이 빠지는 것이다.

청와대, 정부부처, 집권여당, 민노총, 친여시민사회 단체 등등에서 ‘권력 기생충’들은 오늘도 똬리 틀고 앉아 눈을 번득이며 먹잇감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 ‘권력 기생충‘을 박멸(撲滅)할 구충제(驅蟲劑)는 없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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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020-02-17 10:32:51
'기생충은 비열할 수는 있지만 탐욕스럽지는 않다.'나 '기생충은 먹을만큼만 먹는다.'는 기생충학자의 말에서 '생물학적 기생충이 그래도 인간 기생충보다는 조금은 양심적(?) 도덕적(?)이라는 빈정거림'이라는 의미를 찬아내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함의를 가진 영화를 만들어 낸 영화감독을 초청하여 만찬하는 분들이 그런 함의를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이 영화는 정말 오스카상 이상의 기쁨을 우리 국민들에게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