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제주시 연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주원씨(가명)가 손을 모으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14일 제주시 연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주원씨(가명)가 손을 모으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교육감 이석문)에서 낯 부끄러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주일 만에 중등 체육교사 임용시험 합격자 명단 번복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것. 이 같은 일이 일어난 배경과 제주도 교육행정에 대한 불신, 중등 체육교사 시험의 문제점, 개선 방안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저 말고 다른 응시생들도 다시는 제주도에 (응시원서를) 안 내겠다고 해요. 제주도교육청이 실기시험 때부터 지금 이 사달이 나고 수습하기까지 보여준 모습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거든요.”

지난 14일 오후 제주시 연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주원씨(가명·20대)는 중등학교 체육교사 임용시험을 5년째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응시원서를 낼 때만 해도 제주에서 근무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설렜던 마음은 이제 상처로 가득하다. 

육지부에서 사는 이씨는 이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도교육청으로부터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실기시험을 치를 때부터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지만 ‘설마, 아닐거다’라며 의문을 억눌러왔다. 

#"수험생은 '을'…'이건 아니다' 싶어도 아무 말 못해"

하지만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두 차례에 걸친 체육교사 최종합격자 명단 변경 사태를 지켜보며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불합격의 원인이 자신의 부족한 실력 때문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합당치 않은 기준에 따른 것이라면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올해 같이 시험을 본 다른 응시생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실기평가 때부터 문제가 많았어요. 공고문과 아예 다르게 시험이 진행된다거나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할 정도로 체계가 없이 이뤄져서 대부분의 응시생이 의아해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우린 ‘을’이에요.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이상해도 그 자리에선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더 억울하고 분해요.”

이씨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치러진 실기평가는 도교육청이 사전에 공고한 내용과 다르게 진행된 점이 많았다. 이 공고문엔 지난해 12월31일 1차 시험 합격자 및 2차 시험 응시자 유의사항 등의 내용이 담겼다. 

체육 실기시험 응시 유의사항 안내문. 점심시간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빨간 상자). (사진=제주도교육청 홈페이지)
체육 실기시험 응시 유의사항 안내문. 실기평가는 점심시간 없이 진행한다고 명시돼 있다(빨간 상자). (사진=제주도교육청 홈페이지)

 

#"시험 당일 일정에 없던 점심기간 갑자기 주어져…응시생들 당황"

해당 공고문에선 “실기평가는 점심시간 없이 진행하니 식수, 간식 등은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험 당일 도교육청 측에서 오전에 네 종목을 진행한 뒤 수영 한 종목만을 남겨놓고 1시간 20여분간 점심시간을 가지겠다고 변경했다. 

점심시간의 유무는 응시자들의 시험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체육 실기시험을 보는 응시생들은 다음 종목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치르기 위해 쉬는 시간에 몸을 푼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도 또 부족해도 안 되기 때문에 예상되는 일정에 맞춰 실기 준비를 한다. 그러므로 갑작스러운 쉬는 시간 또는 점심시간 일정 변경은 응시생들에게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갑자기 1시간이 넘게 시간이 뜬다고 하니까 그날 같이 있던 응시생들도 크게 당황했다”며 “분명히 공고에선 점심시간이 없으니 간식 정도만 준비하라고 했는데 일부 응시생들은 도시락을 싸왔더라.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31일 제주도교육청이 공고한 체육 실기시험 응시 유의사항 내 평가항목 세부내역. 체조를 제외한 모든 종목은 기록(양적) 및 자세(질적)평가가 이뤄진다고 명시돼 있다. (사진=제주도교육청 홈페이지) 

#"질적평가, 가이드라인 알 수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

또 시험 당일 평가 기준이 달라진 종목도 있었다. 체육 실기시험 평가는 크게 기록(양적평가)과 자세(질적평가)로 나눠진다. 제주도교육청 공고문에 따르면 체조를 제외한 모든 종목은 기록과 자세 모두가 평가 기준이다. 

이씨는 “육상 종목인 허들을 시험 보는데 기록은 측정하지 않고 자세만 측정했다”며 “자세와 기록 모두 신경 쓰다보니 자세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자세만 본다는 걸) 미리 알려줬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른 지역 교육청과 달리 제주도교육청이 실기평가 시 전문성과 체계를 갖추지 못한 점도 언급했다. 누구나 신뢰할만한 평가 기준이 나오기 어려운 여건이란 것이다. 

이씨는 “자세 평가가 들어가는 종목은 만점 기준을 알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며 “이전에 시험을 본 교육청과 달리 제주에선 시범을 보여주지 않아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고 떠올렸다.  

특히 자세로만 평가하는 체조 종목조차도 “물구나무 서서 앞구르기, 다음에 무릎 펴 앞구르기, 다음에 무릎 펴 뒤구르기 하시면 된다”는 말만 듣고 시험을 치러야 했다.  

지난 14일 이주원씨(가명)가 제주도교육청의 중등 체육교사 실기시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14일 이주원씨(가명)가 제주도교육청의 중등 체육교사 실기시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터질 게 터졌다…제주 체육 실기평가 문제 어제오늘 일 아냐"

또 “시험장에 평가위원(5명)과 보조요원(10여명)이 20명 가까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혼잡스러웠다”며 “배구나 구기 종목을 제외한 종목은 보조요원이 많이 필요없는데도 다 한 공간에 있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도교육청 기자회견에서 만난 응시생 A씨는 “다른 지역은 선수 출신 전문가들이 평가위원인데 비해 제주의 경우 그렇지 않아 평가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특히 질적 평가는 채점자의 주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데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평가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다른 응시생 B씨는 이 같은 문제점을 제기하기 위해 국민신문고 등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제주지역 중등학교 체육교사 C씨는 “터질 게 터졌다. 제주지역의 체육 실기시험과 관련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며 “이번 합격자 번복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불거졌을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체육 부문 실기를 평가할 때 전문가가 시범을 보인 후 시험을 치른다. 또 평가위원엔 선수 출신 전문가가 포함된다. 

보조요원은 종목별로 필요에 따라 수가 조정된다. 공을 줍는 등 손이 많이 필요한 배구 등 구기 종목엔 많게는 10명까지 들어가지만 체조 등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은 종목은 2~3명 정도만 시험장에 들어간다. 

#도교육청 "지역마다 여건에 따라 실기시험 운영 방법 다른 점 이해해야"

이와 관련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제주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인력풀이 제한돼 있어 평가위원에 선수 출신 교사를 섭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시험장 시설이나 평가 시스템, 인력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 지역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제주를 포함해 대부분의 지역이 한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고문과 다르게 진행된 실기시험 일정과 관련해선 “외부 유출 문제 때문에 시험 일정을 사전에 논의하지 않고 당일 확정하는 부분이 있다”며 “다만 공고문에도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보다 조금 더 시험 체계가 잡힌 지역과 비교하면 (제주가)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지역마다 여건에 따라 운영 방법이 다를 수 있다”며 “직원의 단순 실수로 인해 (합격자 번복)사고가 났지만 이를 두고 전체가 잘못됐다고 몰고 가는 건 너무 하지 않느냐. 감사를 통해 개선 방향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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