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 KBS2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하는 모습. (사진=KBS2 방송 화면 갈무리)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KBS2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사진=KBS2 방송 화면 갈무리)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도가 대구-제주 항공노선 운항 일시 중단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데 대해 논란이 일자 대구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원 지사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대구시민 여러분의 마음을 다치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원 지사는 “긴장상태에서 진행된 회의와 실무부서의 조치를 제가 미처 깊이 살피지 못했다.”고 밝혔다. 관련 회의 내용과 결재 문서를 살피긴 살피고 판단한 모양이다. 자신이 결재까지 한 사안을 ‘깊이 살피지 못했다’며 사실상 실무부서에 책임을 돌린 모양새다. 그렇지 않고 문서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같은 중대한 조치가 이뤄졌다면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라 볼 수밖에 없다. 원 지사는 이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 원 지사는 뒤이어 “이는 그 누구도 아닌 제가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다. 도정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자신의 판단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아선 안 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정치인의 품격이다. 그러나 원 지사는 실무부서의 조치 운운하며 변명을 먼저 내세웠다. ‘참 못났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릇이 작아도 너무나 작다.

만약 국가 간에 발생한 일이었다면 끔찍한 외교 참사로 기록됐을 것이다. 자신의 판단력 부재로 외교 참사를 저지르고서, 정부 부처의 조치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고 타국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대통령을 상상하는 일은 아찔하다. 그보다 한심한 대통령이 어디 있을까. 전세계적인 웃음거리이자 초유의 국가적인 수치일 것이다. 정부 부처의 사기는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원희룡 대통령’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제주도민으로서는 부끄러움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런 정치인을 수장으로 '모시고 있는' 공무원들의 기분은 또 어떨 것인가.

원 지사는 자신의 정확한 판단력 상실에 따른 문제를 실무부서에 책임인 듯 언급하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수고에 찬물을 끼얹었다. 보수진영의 예민한 콧털인 ‘대구’를 건드려서는 자신의 중앙정치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뒤늦게 판단한 것은 아닌가? 정상적인 행정 프로세스라면 페이스북이 아니라, 대구-제주 항공 일시 중단 조치 건의 취소 발표라는 공식적인 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원희룡 지사는 이런 과정를 거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도정 참사'는 원희룡 지사가 도지사직과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직 두 정체성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간보기 정치’ 행보를 이어가다 초래한 결과로 봐야 한다. 원 지사는 자신의 ‘미래’를 통합하기 전에 당장 제주 도정의 통합을 더욱 골몰해야 한다. 단언컨대 원 지사는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노릇을 하기 위해 연차 휴가를 내며 제주도를 비울 때가 아니다.  원 지사 자신이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제주도의 행정력을 총동원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서 정작 자신은 연차 휴가를 쓰고 제주도를 비워서야 될까? 원 지사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중앙정치 행보를 위한 연차 휴가를 쓰지 않고 제주도정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도민들은 원 지사가 도정에 충실하기 위해 최고위원직을 내려놓겠다는 선언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원희룡이라는 정치인이 그런 배포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P.S. 원 지사는 이번 문제에 대해 대구시민만이 아니라, 제주도민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보수진영 표밭인 대구 시민들에게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도 사과를 할 수 있지만, 제주도민에게 사과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가? 제주도민은 제주도지사에게 사과받을 자격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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